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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90] 세기의 컬렉션, 세기의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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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우에노에 위치한 ‘국립서양미술관’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미술관이다. 모네, 고흐, 르누아르 등 교과서급 거장의 작품을 다수 소장한 이곳은 건물도 하나의 작품으로 이름이 높다. 프랑스의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이곳은 시대를 앞선 기능미와 조형미로 1959년 개관 당시부터 화제를 불러 모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 공간이 되었다.

국립서양미술관 탄생 배경에는 아트 컬렉터 마쓰카타 고지로(松方幸次郞·1865~1950)가 있다. 가와사키 조선소의 경영자로 1차 대전 당시 조선업 호황으로 거부를 모은 그는 열정적으로 미술품을 수집하였다. 유럽 화랑가의 큰손으로 그가 미술품 구입에 쓴 금액이 물경(勿驚) 1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의 컬렉션은 사연이 많다. 일본에 들여온 일부 작품들은 회사 경영 악화로 반강제 매각되어 뿔뿔이 흩어졌고, 런던과 파리에 보관된 컬렉션은 2차 대전의 발발로 런던 컬렉션은 소실(燒失)되고 파리 컬렉션은 프랑스 정부에 의해 적국 재산으로 몰수되는 우여곡절을 겪는다.

종전 후 파리 컬렉션의 일부인 365점을 프랑스 정부로부터 기증 형식으로 어렵사리 돌려받을 수 있었는데, 이때 프랑스 정부는 일본이 미술관을 지어 이 작품들을 전시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일본의 국립 미술관이 르코르뷔지에 설계로 지어진 것은 이러한 연유이다. 국립서양미술관에는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영욕(榮辱)의 일본 근현대사가 오롯이 담겨있다.

얼마 전 ‘이건희 컬렉션’의 사회 기증 뉴스가 화제가 되었다. 마쓰카타 컬렉션을 능가하는 세기의 컬렉션이 개인 소유를 넘어 한국의 문화 자산이 된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평생을 바쳐 일군 기업의 생명력은 유한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수집한 예술품의 가치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할 것이다. 국가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개인의 위업을 어떻게 남기고 어떻게 기리는가가 그 사회의 문화 수준과 역량을 보여주는 척도일 것이다.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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