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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녹색세상] 잘 있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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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파랑새를 찾아 모험을 떠난 남매의 이야기가 있다. 원래 동화가 아니라 희곡이라는 원작을 읽지 않았어도, 멀리서 찾아 헤매던 파랑새를 자기 집 새장 속에서 발견한다는 유명한 결말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에 읽어서 내가 어렴풋하게 기억하는 내용은 조금 다르다. 집에 있던 파랑새를 알아보긴 했지만, 새장에서 꺼낸 새를 그만 놓쳐 버린다는 결말이었던 것 같다. 행복은 먼 곳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다는 교훈보다 파랑새처럼 한순간에 휘리릭 날아가 버린다는 안타까움이 더 짙게 남았다.

경향신문

부희령 작가


얼마 전에 자신들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음성학습자라고 주장하는 푸에르토리코 앵무새의 독백을 읽었다. 우주는 워낙 넓고 늙었으므로 수없이 많은 지적 존재가 탄생하여 문명을 건설했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지구 이외에 다른 어느 곳에서도 지성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이를 ‘페르미 역설’ 혹은 ‘거대한 침묵’이라고 부른다. 외계의 지성을 찾기 위해 인간은 전파망원경을 설치한다. 우주를 향해 메시지를 보내고 응답을 기다린다. 테드 창의 단편소설 ‘거대한 침묵’은 앵무새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관계를 맺으려는 인간의 욕구는 우주 건너편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귀를 만들어냈을 정도로 강하다. 하지만 나와 동료 앵무새들은 이렇게 인간 가까이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도 왜 인간은 우리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우주에 있는 지적 존재가 응답하지 않는 것은 적대적 침략자들의 표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가설이 있다. 인간에 의해 멸종 직전으로 내몰린 종의 일원으로서 앵무새는 그것이 현명한 전략이라고 단언한다. 눈앞에 있는 지적 존재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수백 광년 떨어진 우주의 소리를 엿듣고자 하는 인간은 다른 종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하지 않을 테니까.

테드 창의 소설은 아레시보에 설치된 전파망원경을 찍은 영상과 근처의 숲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의 푸에르토리코 앵무새의 영상을 병치하는 예술 작품에 자막으로 들어간 텍스트였다고 한다. 소설 속 앵무새는 자신들이 멸종하는 것은 한 무리 새들의 목소리와 언어, 신화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한다. 천명을 다하지 못하고 ‘거대한 침묵’에 합류하게 될 앵무새들은, 그러나 떠나기 전, 전파망원경이 들을지도 모를 마지막 메시지를 보낸다. “잘 있어, 사랑해.”

세상의 중심은 자연과 분리된 인간이며 인간은 계속 진보한다는 인간만의 신화를 떠올린다. 푸에르토리코의 열대 우림에서 지난 40년 동안 곤충의 숫자가 60분의 1로 줄었고, 그 결과 새와 도마뱀이 3분의 1 이상 감소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집 안 구석구석에 내가 뿌려댄 살충제의 양을 가늠해 본다). 오래전 들판과 바람의 향기가 제거된 채 시장의 운반 수레 속으로 들어간 과일들을 떠올린다. 태어난 뒤 사육장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보지 못하고 산 채로 땅에 파묻힌 돼지와 닭들을 떠올린다. 멀리서 찾아 헤맸으나 언제나 남매 곁에 있던 파랑새를 떠올린다. 그들도 거대한 침묵 속으로 사라지면서 자신들의 신화가 담긴 언어로 마지막 인사를 했을까? 잘 있어, 사랑해, 라고.

부희령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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