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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38년 韓영화 위해"…故이춘연 대표를 추모하며 #세일즈맨 #맏형[Oh!쎈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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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

영화 포스터


[OSEN=김보라 기자] 영화를 위해 바쳐온 삶이었다.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성실함으로 삶을 채웠다. 70여 년의 인생을 뒤로하고 이달 11일 이춘연 씨네2000 대표가 영면했다. 향년 70세. 집에 도착해 심장마비로 쓰러진 이 대표를 가족이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제 오후 이 대표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그를 향한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1951년생인 이 대표는 중앙대 연극영화과 출신. 상업 연극계를 거쳐 1983년부터 영화계에서 일했다. 1994년 성연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고, 공포영화 ‘손톱’(1995)을 제작해 흥행에 성공했다. 유인택씨와 씨네2000을 공동으로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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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


이후 독립채산제로 유인택씨와 분리된 뒤 제작한 코믹 액션영화 ‘3인조’(1997)가 그에게 새로운 전기가 됐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1990) 등을 기획했고, 1998년 공포물 ‘여고괴담’을 제작하며 한국형 학원 공포물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또한 ‘돌려차기’(2004) ‘황진이’(2007)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2007) ‘거북이 달린다’(2009) ‘체포왕’(2011) ‘시체가 돌아왔다’(2012) ‘더 테러 라이브’(2013) 등을 제작하며 영화계에 높은 주목을 받았다.

특히 김병우 감독이 연출한 재난영화 ‘더 테러 라이브’는 558만 관객을 돌파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걸죽한 입담과 대인 친화력은 그의 중요한 자산으로 꼽혔다. 그는 영화계에서 ‘신구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인품을 가졌다는 평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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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영화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외 협상력이 출중하며, 영화계를 위해서는 어디든지 달려가는 '세일즈맨'으로도 불렸다.

생전 고인은 한국영화 제작활성화 및 시장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고인은 영화인회의 이사장, 한국영화단체연대회의 대표 등을 역임하며 한국 영화계 ‘맏형’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영화계 관계자들, 배우들에게는 작품 곳곳에 스며들어 따뜻한 온기로 기억될 터다.

/ purplish@osen.co.kr

[사진] OSEN DB,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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