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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이건희 컬렉션엔 ‘수월관음도’ 등 한 번도 공개 안 된 유물 상당수”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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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

[경향신문]

경향신문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지난 7일 관장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이건희 컬렉션 기증품에 대한 연구 과정에서 의미 있는 학술적 성과가 나올 것”이라며 “기증이 더 활성화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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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 32년째 몸담고 있는 불교미술 전문가다. 학예연구사로 박물관에 들어갔으며 지난해 11월 관장에 취임했다. 서울대 학부에서 고고미술사학을, 대학원에서 불교조각사를 전공했다. 전시과장·연구기획부장·학예연구실장·국립경주박물관장을 지냈다. 화제를 모은 ‘고려불화대전’을 비롯해 ‘고대불교조각대전’ ‘한·일 국보 반가사유상의 만남’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논문으로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 본 초기 불교미술 연구’ ‘반가사유상의 성립과 전개’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불교조각>(전2권) 등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대표·상징하는 공간이다. 5000여년에 걸쳐 만들어진 문화재 43만여점을 보존·연구하고,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찾아내 전시를 통해 소개한다. 문화가 경쟁력인 시대에 중앙박물관의 역할은 더 중요하다. 중앙박물관은 얼마 전 경사도 맞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미술소장품인 ‘이건희 컬렉션’의 상당수를 기증받았다. 1946년 개관 이래 최대 규모다.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55)을 지난 7일 박물관에서 만났다. 취임 6개월을 맞은 민 관장으로부터 이 시대 중앙박물관의 의미와 역할, 향후 운영 방안 등을 들어봤다. 이건희 컬렉션의 연구와 활용 방안도 짚어봤다.

민 관장은 “박물관이 다루는 대상은 옛것이지만 연구 성과와 첨단 디지털 기술을 접목시킨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만족감과 영감을 얻고, 삶을 고양시키는 문화향유의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또 “문화유산은 그 특성상 세밀한 학술적 조사와 연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건희 컬렉션도 체계적인 조사·연구를 바탕으로 다양한 방식의 전시로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기증품 세밀한 연구가 중요
제대로 된 조사에만 최소 5년
학술 정보·이미지 DB화 통해
‘온라인 감상 시스템’ 만들 것

- 박물관에서 30여년 일해왔지만 관장으로서의 지난 6개월은 어떠했나.

“코로나19로 휴관과 재개관을 반복하는 상황이라 기쁨보다는 긴장과 책임감으로 관장직을 시작했다. 여전히 조심스럽고 운영하는 데 제약이 있어 아쉬운 점도 많다. 얼마 전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출품된 특별전을 열어 큰 관심을 받았다. 관람객의 진지한 태도를 보면서 박물관의 역할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손창근 선생님이 귀한 보물을 기증해주셔서 가능한 전시였다.”

- 최근 이건희 컬렉션의 소장품 2만여점이 기증됐다.

“구체적으로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보물 60건을 포함해 9797건 2만1693점이다.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국미술의 전 시기를 아우른다. 귀한 작품이 많아 질적 수준이 높고 양적으로도 방대하다. 참 감사한 일이다.”

- 인계와 이송 과정도 만만치 않을 텐데, 현재 상황은.

“기증 협의는 공식 발표 한 달 전쯤부터 진행됐다. 발표 전에 이미 국가지정문화재 등 일부는 이송을 시작했다. 현재 대형 석조물 500여점 외에는 모두 박물관 수장고에 왔다. 호암미술관과 삼성미술관 리움 측에서 포장과 이송 등 준비를 잘해줬다. 임시 보관된 기증품은 앞으로 훈증 작업과 소장품 등록 절차를 거쳐 각 수장고로 옮겨진다. 소장품 등록 절차는 재질이나 정확한 크기, 특성 파악 등 상당히 까다로운 작업이다. 등록에만 2년여가 걸릴 것 같다.”

- 기증품의 활용 계획은 마련됐나.

“국민과 함께 나누고자 한 기증의 큰 뜻을 살려야 한다. 조사·연구와 더불어 특별전·상설전·해외전시·지방박물관 순회전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국민들께 공개할 방침이다. 우선 6월에 이미 조사·연구가 이뤄져 있는 국가지정문화재 등 주요 작품을 공개한다. 내년 10월에는 더 깊은 연구를 바탕으로 명품 특별전을 열 예정이다. 물론 제대로 된 연구에는 최소 5년 정도가 걸릴 것 같다.”

- 문화재는 특성상 조사와 연구가 중요한데, 향후 연구 방안은.

“그렇다. 문화재의 가치와 의미를 밝혀내는 연구가 가장 중요하다. 전시도 연구 성과가 반영된 게 좋은 전시다. 연차 연구계획을 수립 중이다. 분야별 전공자의 체계적인 조사·연구를 통해 기증품 각각의 학술적인 의미를 찾아나갈 것이다. 연구 과정에서의 학술 정보, 고화질 촬영 이미지 등은 데이터베이스(DB)화해 누구나 자유롭게 열람·활용할 수 있도록 온라인으로 공개할 것이다.”

- 기증품 대다수가 지정문화재와 달리 연구가 미흡하고 알려지지 않은 비지정문화재로 알고 있다. 전적(典籍)만도 1만2000여점이다. 외부 전문가들은 박물관 내부의 연구 역량을 우려하기도 한다.

“절대다수가 비지정문화재이고, 특히 지금껏 공개된 적이 없는 미공개 유물도 상당수 있는 것 같다. 전적의 경우가 그렇다. 학술적으로 얼마나 큰 가치, 의미가 있는지는 조사를 해봐야 안다. 전적류는 별도의 연구 용역이나 외부 전문가들의 광범위한 활용 등도 생각 중이다.”

- 조사·연구가 본격 시작되진 않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 소위 ‘물건이네’ 하는 감이 오는 유물도 있지 않나.

“(웃음). 포장도 모두 뜯지 않아 조심스럽긴 한데…. 기증품 중에 보물로 지정된 고려 불화 외에 지정되지 않은 ‘수월관음도’가 있어 주목된다. 분청사기들도 좋다. 박물관 소장품 중 완형은 100여점에 불과한데 400여점이 기증됐다. 조선 목가구도 아주 괜찮다. 조사·연구가 본격 진행되면 전적 가운데서 의미 있는 성과들이 나올 것으로 본다.”

경향신문

국립중앙박물관 민병찬 관장이 7일 본사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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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품 구입 1년 예산 약 40억
고가 문화재 구입하기 어려워
기증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 문화예술계가 늘 지적하듯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구입 예산이 비현실적으로 적다. 그래서 기증은 더 각별할 것 같다.

“올해 박물관 소장품 구입 예산은 39억7900만원이다. 고가로 거래되는 문화재를 구입하기 어렵다. 손창근 선생님의 ‘세한도’도 그렇고, 이번 컬렉션 기증으로 확보하기 힘든 작품들을 소장품화했다. 이번 기증으로 문화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진 것 같다. 기증이 더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 기증을 개인의 선의에만 기댈 수는 없다. 더 많은 기증을 유도하는 정부나 각 기관의 대책들이 필요한데.

“중앙박물관은 ‘조건 없는 기증’이 원칙이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에서도 아무런 조건이 없었고, 유족분들도 어떤 요청도 하지 않았다. 박물관이 기증자의 뜻을 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증품을 전시·연구에 잘 활용하는 것이다. 기증자의 이름을 딴 기증실 마련, 기증 특별전 개최, 박물관 행사 초대 등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기관이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한계가 있어 국가적 차원에서 대폭적 세제 혜택 등 관련 법·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 올해 초 기증자를 예우하는 ‘기증자의 전당’을 만들겠다는 뜻을 밝혀 관심을 모았다.

“현재 박물관 2층에 기증자별 기명 전시실이 16년째 운영 중인데 과감한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기증자의 뜻을 널리 알리고 기증 문화재의 가치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에 더해 기증자 삶의 동영상 상영, 기증품 검색과 활용 편의성 확대 등을 위한 기증자의 전당을 추진 중이다.”

내년 문화유산과학센터 착공
어린이박물관 공간 재편 확장
‘반가사유상’ 브랜드화 목표

- 취임 이후 여러 사업계획을 밝혔다. 문화유산과학센터 신축, 어린이박물관 확장, 삼국시대 걸작인 ‘금동반가사유상’(국보 78호·83호) 브랜드화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진척 상황은.

“문화유산과학센터는 중앙박물관뿐 아니라 전국 국·공·사립박물관, 외국 박물관에 소장된 우리 문화재 전체(200만여점)의 보존·관리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것이다. 내년에 착공해 2024년 완공 목표다. 어린이박물관은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확장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했다. 오는 12월 상설전시실을 재개관하고, 이후 공간 재편을 통한 확장을 한다. 두 반가사유상은 함께가 아니라 늘 번갈아 전시되면서 세계적 명작으로서의 예술성과 가치를 조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전용 공간을 마련해 함께 상설전시한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처럼 우리 박물관을 상징하는 작품, 반드시 찾아야 할 공간으로 만드는 게 취지다. 오는 11월 공개한다.”

- 디지털 시대 중앙박물관의 역할과 기능은 무엇일까.

“박물관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과 기술이 반영된 물질문화를 담고 있는 그릇이다. 과거의 문화가 현재의 문명 안에서 조우하는 현장이다. 가속화되는 과학기술 진화 속에서 박물관 역할을 향상시킬 수 있는 다양한 기술 적용이 중요하다. 문화유산을 매개로 대중과 소통하는 곳이 박물관인데, 시공간의 물리적 제약을 초월해 서로를 연결시켜주는 디지털 기술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 과거와 현재, 직접 갈 수 없는 지역과 공간, 다른 연령과 배경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이어주는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 그렇지만 디지털 기술은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다. 박물관은 쾌적한 환경과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다루는 대상은 옛것이지만 그것을 전시하는 개념과 방법은 최첨단이어야 한다고 본다. 관람객에게 깊이 있는 만족감과 영감을 줌으로써 또 찾아오는 박물관이 돼야 한다.”

- 박물관의 여러 역할 중 연구와 전시가 중요하다.

“소장품의 조사·연구 기능을 강화할 방침이다. 적극적 연구를 통해 소장품에 숨겨진 의미를 밝혀내고 그 가치를 재발견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직원들의 역량 강화와 전문성 함양이 필수적이다. 전시는 쉽고, 재미있고, 확실한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직원들에게 횟수보다 내용이 충실한 전시를 만들자고 강조했다. 그 노력은 관람객의 만족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지역 국립박물관 활성화 추진
해외 각국에 ‘한국실 운영’ 등
활발한 국제 교류전도 준비 중

- 지역 국립박물관 활성화는 오래된 숙제다.

“국립경주박물관 등 전국에 13개가 있다. 개선을 위해 박물관마다 대표 소장품의 브랜드화·특성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경주박물관은 ‘신라문화’, 공주박물관은 ‘웅진 백제문화’, 부여박물관은 ‘사비 백제문화’, 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과 같은 주제를 선정했다. 올해는 예산도 확보돼 특별전 개최와 아카이브 구축, 지역 내 공사립·대학박물관들과의 협력망 사업도 추진 중이다.”

- 문화예술계는 남북 문화교류가 정치적 측면과 별개로 이뤄지기를 고대한다. 특히 문화재는 남북 간 동질성도 있어 가능성이 높지 않나.

“안타깝다. 박물관이 소장 중인 북한 문화재들의 지속적인 조사와 연구, 향후 박물관 간 교류를 위한 실질적인 사업 등을 모색·준비하고 있다. 강연회 등 북한 문화재에 관한 이해 증진을 위한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 글로벌 시대에 맞는 중앙박물관의 국제교류 활성화, 우리 문화재의 해외 소개와 해외 문화재의 국내 소개도 필요하다.

“우리 문화재의 외국 소개는 해외 박물관에서의 우리 문화재 특별전이나 외국 박물관의 한국실 운영을 활성화하는 방식이 있다. 우리 문화재에 관심을 갖는 외국 박물관이 점차 늘고 있다. 올해 10월과 내년에는 네덜란드 프린세스호프국립도자박물관과 콜롬비아 황금박물관에서 각각 전시가 예정돼 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프리어&새클러박물관과도 전시 일정을 협의 중이다. 내년에는 특히 세계 유수의 박물관인 러시아 예르미타시박물관에 한국실을 신설한다. 현재 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영국 국립초상화박물관 특별전 ‘시대의 얼굴-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처럼 더 활발한 국제교류전도 준비 중이다.”

진품의 아우라는 ‘대체 불가’
관객들에게 삶의 영감 제공해
이게 박물관이 존재하는 이유

- 현대사회는 볼거리, 즐길거리가 넘쳐난다. 중앙박물관을 굳이 찾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은 오늘날 외국인들에게 최첨단 IT강국, 또 BTS(방탄소년단) 같은 대중문화의 강국으로 인식된다. 그 원동력은 우리의 유구하고 찬란한 문화적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박물관에서 그 원형질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도서관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제도가 없듯이 인류의 모든 역사와 문화를 실물로 간직하고 있는 박물관을 대신하는 시스템도 아직 없다. 이미지가 넘쳐나지만 진품이 지니는 고유한 아우라가 있다. 오직 하나뿐인 진품을 소장·전시하는 게 박물관의 존재 이유다. 박물관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곳이다. 잠시 쉬어 뒤를 한번쯤 돌아봐도 되는 곳,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휴식의 공간이다. 우리의 삶을 고양시키고 영감을 얻는 곳이 바로 박물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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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재기 논설위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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