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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조선업계, 역대급 수주 호황에도 웃지 못하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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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업 호황에 선박 발주 급증

수주-매출 시차에 조선사 실적은 뒷걸음질

현장에선 철판값 뛰어 수익 악화 걱정


한겨레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 컨테이너선 ‘HMM(에이치엠엠) 상트페테르부르크호’가 정박해 있다. HM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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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산업이 몰락의 위기에서 압도적 세계 1위로 부활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4주년 연설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한때 수주 절벽을 맞았던 국내 조선사가 다시 살아났다는 얘기다.

그러나 숫자로 나타나는 기업 실적이나 업계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현장에서도 아직 훈풍을 체감하지 못한다고 토로한다.

수주(일감)만 놓고 보면 조선업의 부활을 말할 만하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국내 조선사의 수주량은 532만CGT(선박 건조량 지표인 ’표준 화물선 환산 톤수’)로 지난해 1분기에 견줘 86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신규 수주액도 119억 달러로 753% 늘었다. 조선소마다 배 만드는 작업장(독, Dock)이 들어차며 각 조선사는 2년 치 일감(수주 잔고)을 쌓았다.

이는 전방 산업인 해운업 호황 덕분이다. 코로나19 이후 물류가 증가하고 해운 운임도 껑충 뛰며 해운회사가 그동안 미뤘던 컨테이너선 발주를 대폭 늘린 것이다. 실제로 삼성중공업은 지난 3월 대만 해운사인 에버그린으로부터 단일 계약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컨테이너선 20척을 한꺼번에 수주했다.

뱃값도 뛴다.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 업체 클락슨 리서치 자료를 보면, 세계 시장의 새로 만든 선박값을 지수로 환산한 신조 선가 지수는 이달 현재 134로 2015년 2월 이후 6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조선소 독의 빈자리가 사라지며 조선사의 협상력이 커진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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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실적은 이런 흐름과는 확연히 다르다. 연초 수주 대박을 터뜨린 삼성중공업은 올해 1분기에만 무려 5천억원대 영업적자를 냈다. 악성 재고로 떠안은 해양 시추선(드릴십)의 평가 손실 2100억원과 신규 수주 물량의 추가 손실 예상액(공사 손실 충당금) 1200억원 등이 반영됐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수주 직후에 예상 공사 원가가 대폭 늘었다는 것은 지난해 수주 절벽을 맞고 독을 우선 채우기 위해 저가 수주를 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회사 쪽은 내후년에야 영업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중공업 주가는 1분기 실적 발표(5월4일) 후 19% 곤두박질했다.

세계 1·2위 조선사인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도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다. 한국조선해양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675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에 견줘 45% 감소했다. 시장에서는 아직 실적을 공개하지 않은 대우조선도 1분기에 간신히 영업흑자를 냈으리라 추산한다.

이처럼 수주와 실적 간 괴리가 생기는 것은 수주 산업인 조선업의 특징 때문이다. 선박의 경우 수주에서 설계, 건조, 인도까지 1∼2년이 걸리는 만큼 현재 조선사 매출과 이익으로 잡히는 것은 대부분 수주 가뭄을 겪던 과거의 계약 물량이다. 당시 수주한 선가도 높지 않았던 탓에 당분간 이익률 개선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조선사는 선박 건조 기간 중 발주처로부터 도급비를 나눠서 지급받고, 회계 역시 공사 진행률에 따라 매출과 이익을 쪼개서 반영한다.

최근 선박 제조에 들어가는 후판(두꺼운 철판) 가격이 철광석 품귀 여파로 크게 오르고 있는 상황도 조선사로선 달갑지 않은 흐름이다. 수익성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수주한 마진이 좋은 공사 수익은 1∼2년 뒤부터 본격적으로 반영되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은 당장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중공업과 한국조선해양이 올해 1분기에 선박 제조에 쓰는 강재 가격 인상 여파로 추가 반영한 비용은 각각 1천억원이 넘는다.

한 대형 조선사 관계자는 “내부적으론 지금의 수주 호황이 최소한 올해 하반기까지는 이어져야 내년 이후 매출과 이익이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유승우 SK증권 연구원도 “지난해 코로나 여파로 지연됐던 선박 발주 물량이 연초 한꺼번에 밀려 나오며 조선 업황이 브이(V)자로 반등하는 듯한 착시 효과가 생긴 것”이라며 “2004∼2008년 같은 조선업 호황이 다시 찾아오는 것은 최소한 이전 호황기에 발주했던 선박이 대거 교체 시기를 맞는 2024년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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