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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기고] 백신 전쟁, 특허에 의한 살인을 방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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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코로나19로 지구 곳곳이 처참하다. 인도에서는 화장장이 부족해 수십구의 시신을 동시에 화장하고, 브라질에서는 묘지 부족으로 기존 공동묘지를 재활용하는 등 참상이 뉴스로 전해지고 있다. 떠나는 이에 대한 예의는 사치가 된 지 오래다.

경향신문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식재산권법


그런 가운데 백신 접종이 원활한 일부 국가의 코로나 확산 기세는 확실히 꺾이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은 코로나 이전으로 회복됐음을 선포하기에 이르렀고, 코로나 최대 피해국이었던 미국도 상황이 나아져 야구장이나 뉴욕 타임스스퀘어 광장에 예전처럼 군중이 모여 있는 사진이 언론을 통해 전송되고 있다. 백신이 남북문제로 될 것이라는, 믿고 싶지 않은 예언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백신의 효과가 검증되자 사람들의 눈초리는 특허권을 향하고 있다. 세계적인 오피니언 리더들을 중심으로 특허 보호를 한시 유예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백신 공동 개발에 진보적이었던 빌 게이츠가 뜻밖에도 반대 입장을 발표해 논란이 되고 있다. 게이츠는 특허를 풀 경우 백신 품질이 저하될 것이란 우려를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백신 특허를 보유한 제약회사나 일부 선진국의 입장과 궤를 같이한다. 지식재산권으로 흥한 마이크로소프트사 창업자의 한계가 아닌가 한다.

특허권은 지식재산권의 일종으로 재산권이다. 그런데 이는 인류에게 혜택이 될 만한 발명을 공개하는 대가로 국가가 부여한 권리로서 경우에 따라 제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한국 특허법도 국가 비상사태, 극도의 긴급 상황이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 비상업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자국민 다수의 보건을 위협하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약품의 경우 특허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다.

지금까지 코로나 사망자가 330만명을 넘어섰고 매일 수천, 수만명이 더해지고 있다. 누적 사망자 수가 제2차 세계대전 희생자 숫자를 향할 가능성도 있다. 한때 지식재산권의 과도한 보호에 반대하는 운동가들 사이에, 고가의 치료제를 구하지 못해 죽어가는 저개발국가의 에이즈와 백혈병 환자들이 “특허 때문에 죽는다(Death under Patent)”는 말이 있었다. 코로나로 인한 피해는 이보다 훨씬 빠르고 광범위하다. 백신 공급이 특허권 때문에 제약을 받아 매일 살릴 수 있는 수천 명의 생명을 꺼지게 방치한다면 이는 ‘특허에 의한 살인’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사람을 위해 고안된 특허제도에 가로막혀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죽도록 방치한다면 본말전도의 극치라 할 것이다.

다행히 최근 바이든 미국 정부가 백신 특허권 한시 유예에 관해 세계무역기구(WTO)와 논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특허권을 유예해도 원료 공급이 원활하지 않거나 노하우까지 공개되지 않으면 백신 공급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수 없다는 논거로 독일 등 몇몇 나라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벌써부터 최종 합의에 이르기까지 오래 걸릴 것이라는 뉴스가 잇따르는 것을 보면 특허권 보유 제약회사의 로비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백신 특허권 유예 논의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하루에도 수천명이 사망하고 있는 가운데 사람을 살리고자 논의를 서두르는 자세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시간을 끌겠다는 자세는 확연히 차원이 다르다. 한국은 미국 특허청 기준 매년 특허 출원 및 등록 건수가 미국을 제외하고 2, 3위를 차지하는 특허 강국이다. 제약 쪽도 이미 상당한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 백신 특허권 유예에 관한 국제적 논의에 여야가 있을 수 없다. 차제에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국제무대에서 이에 관한 전향적 논의에 앞장선다면, 분단국가나 K팝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넘어 인도주의 차원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갖게 될 것이다.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식재산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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