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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이한우의 간신열전] [83] ‘광대 정치’의 末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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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오대(五代) 시대 후당(後唐)을 세운 황제 장종(莊宗·885~926년)은 즉위 초에는 사방의 적들과 싸워 영토를 크게 넓히는 등 상당한 치적을 세웠다. 그러나 뒤에는 교만에 빠져 놀이를 일삼았는데 특이하게도 연극배우인 영인(伶人), 광대들을 정치에 끌어들였다. 장종은 그냥 연극 구경을 좋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연기도 하며 오늘날의 예명(藝名)에 해당하는 우명(優名)을 지어 스스로 ‘이천하(李天下)’라고 불렀다.

장종은 관리나 환관도 아닌 광대들에게 민심을 탐지하는 일을 맡겼다. 광대 중에 경진(景進)이란 자가 민간 시찰을 마치고 돌아오면 조정 신하들을 모두 물러가게 하고 나라의 중요 업무들을 모두 경진하고만 의논해 결정했다. 심지어 장종은 우리의 관찰사에 해당하는 자사(刺史)직에 광대를 앉히기도 했다.

결국 장종은 곽종겸(郭從謙)이라는 광대의 화살에 맞아 죽었고 좌우의 측근들이 모두 달아나자 광대 한 사람이 그나마 충심을 발휘해 공연에 쓰던 악기들을 긁어모아 그의 시신을 불태워주었다. 그리고 10년 후에 후당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후당의 존속 기간이 14년이니 장종은 불과 4년 만에 자기가 세운 나라를 멸망의 길로 몰아넣은 것이다.

“오늘로만 평가받는다고 해서 오늘만을 위해 일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막강한 의전비서관 탁현민씨가 했다는 말이다. ‘의전’비서관이 도대체 무슨 비상한 업무를 하고 있길래 이런 말을 대통령 4주년 특별 연설을 앞둔 하루 전날 내뱉은 것일까? 이를 보면 드는 생각은 하나다. 어쩌면 그는 ‘의전’을 넘어 ‘진짜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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