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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녹화강의 버젓이 재탕…학생들 "학자금 대출 받아 대학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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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격수업의 그늘 ◆

매일경제

2년째 원격수업이 진행되면서 대학 캠퍼스는 텅 비어 있다. 서울 한 대학 강의실에 `온라인 강의 녹화 중`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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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한 사립대학에 재학 중인 17학번 A씨(24)는 1학기 비대면수업을 듣다 충격을 받았다. 수업 마지막에 교수가 '추석 연휴 잘 보내라'고 인사했기 때문이다. 녹화수업이었지만 교수가 해당 학기에 강의를 촬영했다고 믿고 있던 A씨는 기분이 상했다. 교수가 보완된 수업을 내놓는 최소한의 성의는커녕 작년 녹화수업을 그대로 가져와 '재탕'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2. 서울의 또 다른 대학 16학번인 B씨(25)는 올해 1학기 등록을 위해 수백만 원의 학자금 대출을 받으며 '돈'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수업 중에 서버가 터지는 등 온라인 강의의 만족도가 떨어지고 정상적인 학교 생활도 못 하는데 등록금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대학 비대면수업이 2년째 지속되는 가운데 녹화 영상강의와 시험문제 등 이전 학기 수업자료를 재탕하는 교수가 상당수 있어 학생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비대면교육으로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받는 상황에서 교수들이 교육 준비에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이 불만의 근거다.

11일 대학가에 따르면 일부 교수는 이전 학기에 사용한 녹화 영상강의를 그대로 재사용해 등록금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서울 성북구 소재 대학 21학번 C씨는 "역사 교양과목에서 교수가 바쁘다고 녹화강의를 올려준다고 했는데 화면에 강의 연도가 2020년이라고 적혀 있었다"며 "내용이 같은 건 상관없는데 교수가 수업 준비를 안 하는 것 같아 특히 신입생들이 실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소재 대학 16학번 D씨는 "코로나19 이전 일부 시행되던 사이버강의에서도 제기된 바 있던 문제"라며 "영화 한 편 찍으면 저작권료가 계속 나오듯이 강의 하나 찍고 계속 강의료를 받으려는 뻔뻔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녹화 강의를 재활용하며 교수가 실시간 수업에 참여하는 시간이 5분에 불과한 사례도 있었다. 서울 관악구 소재 대학 14학번 E씨는 "교수가 유튜브에 자신의 강의를 올려놨으니 수업시간에는 질문만 받겠다고 했다"며 "출석체크도 안 해 줌 강의에 접속한 학생이 적었고 5분 남짓 질문을 받고 끝났다. 이번 학기에는 조교가 30분 이상은 접속해야 한다고 해 수업시간이 조금 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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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재탕에 이어 과거에 출제했던 시험문제를 그대로 재출제하는 교수들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교육평가 개선에 대한 노력이 없고 예전 시험문제인 '족보'를 구한 학생에게만 유리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서울 성북구 소재 대학에 다니는 16학번 F씨는 "비대면수업이라 부정행위 통제가 안 되고 시험 방식도 한정적"이라며 "강의 내용도 지난 학기와 동일하기 때문에 족보만 있으면 다른 학생보다 시험 준비를 수월하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학 비대면수업이 만족스럽지 않아 휴학을 강행하는 학생들도 나온다. 직장인 대학원생 H씨(37)는 "낮에는 회사일을 하고 저녁에 대학원 수업을 들어도 강의 중에 집중력이 떨어진 적이 없었는데 집에서 줌 수업을 들을 때는 자꾸 졸게 돼 휴학계를 냈다"고 말했다.

반면 교수들은 비대면수업 본질상 학생들의 수업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학습에는 같은 공간에 있는 '실재감'이란 요소가 중요한데 비대면수업에서는 이런 실재감을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현우 상명대 교수는 "교수와 학우들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실재감이 있어야 학습효과가 높아지는데 단순 강의식 수업으로는 이런 실재감을 구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모 서강대 교수는 "교수와 학생이 눈을 맞추고 소통하지 않는 교육은 대학교육이라고 보기 힘들다"며 "줌 수업에 출석만 하고 화면을 꺼놓는 학생도 있어 혼자 떠드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또 학생들이 수업 불만은 제기하고 있지만 막상 설문조사를 해보면 등교 어려움이나 개인시간 확보를 들어 대면수업보다 동영상 강의수업을 선호하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이는 것도 대학의 고민이다.

서울 소재 한 대학교수는 "한 교수가 한 학기에 맡는 수업이 18학점(1주 18시간)으로 외국에 비해 많은데 매 학기 새롭게 수업 내용을 바꾸고 연구까지 하려면 시간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각 대학 학생회는 학교에 등록금 반환·코로나19 특별장학금 지급 등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총학생회가 구성되지 않은 이화여대 학생들도 지난달 30일 1840명이 참여한 등록금 반환 요구 서명을 총장실에 전달했다.

[김제림 기자 / 김형주 기자 / 명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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