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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6 (목)

계엄군이 함부로 못 부른 이름 ‘전○○’…“최고실권자 누군지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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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상황 보고하면서 전두환을 ‘전○○’ 익명 처리

전씨 ‘유공자 명예훼손’ 항소심 불참…재판 2주 연기

[경향신문]

경향신문

1980년 5월24일 505보안대의 목포 상황 보고 문건.


“전○○ 물러가라” “전○○ 팟쇼”.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상황을 보고한 계엄군 문건에는 이처럼 가려진 한 사람의 이름이 여러 곳에 등장한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90)다. 5·18 당시 국군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였던 전씨가 군이 문건에 함부로 이름을 적지도 못할 정도의 ‘최고실력자’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10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5·18 당시 계엄군이 광주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한 여러 문건에서 전씨의 이름만 익명으로 처리됐다. 전씨가 사령관이었던 보안사령부는 보고에서 전씨의 이름을 대부분 표기하지 않았다. 보안사의 5월20일자 ‘광주 시내 시외 동향’ 상황보고에서는 “1000명으로 증가한 시민 학생이 계엄군과 대치하면서 ‘계엄군 물러가라’ ‘전○○, 신현확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 중”이라고 쓰여 있다. 전씨의 이름은 익명 처리됐지만 당시 신현확 국무총리의 이름은 그대로 표기됐다.

1980년 5월23일 당시 505보안대의 문건에는 시민들이 외친 구호가 적혀 있는데, 최규하 대통령에 대해서는 ‘최규하 대통령 물러가라’라고 시민들이 외친 구호를 그대로 옮겼다. 하지만 이날과 그 다음날 505보안대의 문건에서 전씨에 대해서는 ‘전○○ 물러가라’로 역시 익명 처리했다. 전씨의 이름을 알아볼 수 있는 ‘전○○’으로 보고된 문건에 볼펜으로 두 줄을 그어 이를 삭제한 것도 있다.

당시 계엄사령부도 전씨의 이름을 문건에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계엄사 치안처가 작성한 5월22일 치안상황보고에는 학생 대표의 6가지 요구사항이 적혀있는데 ‘○○○ 물러가라, 계엄해제’라고 기록됐다. ‘광주지역 동향’ 문건에도 서울에서 발견된 전단의 내용을 기록하면서 ‘○○○ 팟쇼’라고 기록했다. 두 문건의 ○○○은 모두 ‘전두환’이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교수는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의 이름은 밝히면서 전두환씨의 이름만 제대로 적지 않은 것은 당시 군 내부에서는 이미 전씨를 최고 통수권자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5·18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전씨의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5·18유공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씨는 이날 광주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첫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2주 뒤인 오는 24일 오후 2시 재판을 다시 열겠다고 했지만 전씨 측은 “다음 기일에도 출석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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