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분점 국회관례 깬 민주당
국회서 독주하다 재보선 참패
여야 협치 없이 민주주의 못해
김정하 정치디렉터 |
결론부터 말해 법사위원장은 야당이 맡는 게 순리라고 본다. 왜 그런가. 첫째, 권력 분점 취지에 입각한 국회 관례를 존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16대 국회부터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은 여야가 나눠 맡아왔다. 국회의장은 모든 국회 운영의 실권을 쥔 입법부의 수장이다. 법사위원장은 법안 처리의 길목을 장악한 요직이다. 모든 법안은 소관 상임위 심사를 거쳐 법사위에 모이는데 법사위원장은 특정 법안을 본회의에 올릴 건지, 아니면 법사위에 계속 묶어둘지를 결정한다. 의전서열은 국회 부의장보다 아래지만 실질적 권한은 오히려 위다.
그래서 권력서열 1, 2위인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의 당적을 분리해 특정 당의 독주를 막자는 게 지난 20여 년간 이어진 한국 의회민주주의의 전통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민주당이 “총선에서 180석을 만들어준 민의를 받들겠다”며 관례를 깨 파란을 일으킨 것이다. 총선 지역구 득표율이 49%였던 민주당이 국회 권력을 100% 차지하는 게 과연 합당한지 의문이거니와, 그런 식이라면 민주당이 참패한 이번 4ㆍ7 재ㆍ보선 민의는 어쩔 셈인가? 이처럼 민의는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여야가 적절히 국회 권력을 분점하는 관례가 성립된 것이다. 민주당이 진지하게 여야 협치를 생각한다면 무너트린 권력 분점의 정신을 복구하는 게 옳다.
둘째, 법사위원장을 야당에 넘겨줘도 민주당이 실질적으로 피해 볼 건 별로 없다. 민주당은 열린민주당과 친여 성향 무소속을 합치면 야당 법사위원장의 저항을 무력화할 수 있는 패스트트랙 정족수(180석)를 확보하고 있다. 선거법ㆍ공수처법의 사례처럼 민주당은 야당 법사위원장이 아무리 제동을 걸어도 4~5개월이면 충분히 쟁점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야당이 결사 반대하면 다수 여당이라도 적어도 4~5개월은 기다려주는 게 민주주의다.
2012년 6월13일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통합당의 우원식 원내대변인은 “법사위를 야당에 주는 것은 대화와 타협 그리고 견제와 균형을 위한 것”이라며 “법사위는 야당의 것이 돼야 한다. 양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뉴시스] |
셋째, 민주당이 국회 독주를 해 봤는데 그 결과가 좋았냐는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야당 반대의견을 깡그리 무시하고 밀어붙인 대표적 법안이 임대차3법(전ㆍ월세계약 2+2년, 인상률 5% 제한)이다. 상임위에서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 처리까지 고작 3일이 걸렸다. 과거처럼 야당 법사위원장이었으면 상상도 못 할 속도전이었다. 그렇게 밀어붙여서 어떻게 됐나?
2020년 7월29일 국회 법사위에서 여당인 윤호중 법사위원장(왼편 의석에 앉은 사람, 현 민주당 원내대표)이 임대차 3법을 상정하려 하자, 김도읍 간사(맨 오른쪽) 등 야당 의원들이 "독단적으로 전체회의를 여는 것은 안된다"며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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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새 임대차법 시행 이전 9개월과 이후 9개월을 비교했을 때 반전세ㆍ월세 거래 비중은 28.4%에서 34.1%로 증가했고, 순수 전세 비중은 71.6%에서 65.9%로 감소했다. 새 임대차법이 전세를 소멸시킬 것이란 야당의 경고가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재ㆍ보선 참패는 ‘1당 국회’의 저주로 볼 수 있다. 일이 잘못돼도 야당이 발목 잡았다는 변명조차 불가능해진 것이다.
과거 통합민주당은 18대 국회에서 81석으로도 법사위원장을 차지했다. 현재 101석인 국민의힘이 법사위원장을 맡지 못할 이유가 없다.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죽어도 못 내놓겠다면 앞으로 국회 관례는 ‘권력 독식’으로 바뀌는 것이고, 필연적으로 언젠가 보수정당이 국회를 싹쓸이하는 날도 온다고 봐야 한다. 그 또한 막대한 부작용이 생길 게 뻔하다. 민주당 지도부가 법사위원장 문제는 의회민주주의의 미래라는 관점에서 심사숙고해 주길 바란다.
정치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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