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하던 프랑스·이탈리아도 회의적 입장
8일(현지시간) 포르투갈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정상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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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정상들이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지재권) 유예에 회의적 반응을 보이며 미국을 향해 "백신 수출부터 늘리라"고 촉구했다. 7~8일(현지시간) 이틀간 포르투갈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다. 지재권 유예에 긍정적이었던 프랑스와 이탈리아조차 유보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8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 지도자들이 지재권 유예가 백신 공급 부족의 해결책이 아니라며 대신 백악관이 백신과 주요 성분의 수출 규제를 풀어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앞서 5일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코로나19 백신의 독점적인 특허를 풀어 여러 나라가 백신을 만들자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제안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지재권을 유예하려면 164개 WTO 회원국들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해 EU 정상회의 내용에 관심이 쏠렸다. 그런데 EU 주요 정상들이 반대 의견을 내면서 지재권 유예 실현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8일 EU 정상회의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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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재권 유예에 반대 입장을 고수해 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EU 정상회의를 마친 뒤 "나는 특허권 포기가 더 많은 사람이 백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거듭 반대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메르켈 총리는 백신 품질 하락 가능성과 미 화이자와 백신을 공동 개발한 자국 기업 바이오엔테크 등 기업의 이익 침해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는 "만약 특허권을 그냥 제공하고 품질이 더 통제되지 않는다면 나는 기회보다 위험성이 더 클 것이라고 본다"면서 "기업의 혁신과 창의성을 위해 특허 보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특허권을 둘러싼 논쟁은 유효하다"면서도 "단기적으로 백신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선 다른 조치들이 더 도움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백신뿐만 아니라 백신 원료에 대한 수출 금지를 중단할 것을 매우 분명하게 미국에 촉구한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재권 유예가 가능은 하지만 제한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고, 이는 EU 정상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고 FT는 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8일 EU 정상회의가 끝난 후 기자회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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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도 "백신 자유화(지재권 유예) 전에 미국과 영국이 수출 규제를 없애는 등의 더욱 단순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면서 "일시적으로 특허를 푸는 게 백신 생산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다. FT에 따르면 EU는 지금까지 자국민에게 보급한 백신 수량과 비슷한 2억회 분의 백신을 수출했지만, 미국은 해외에 수출한 백신이 거의 없다.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는 EU 정상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정상회의에서 백신 특허권 유예 문제에 관해 대체로 주저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특허권 유예가 역설을 부를 수 있다"면서 "기존의 백신 글로벌 공급망에 차질을 불러와 생산에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화이자·모더나 같은 mRNA 방식의 백신은 생산 노하우가 공유돼도 실제 생산이 가능한 나라는 제한적이라고 설명한다. 280가지에 달하는 원료를 구하기 어렵고 생산 시설, 전문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EU 정상회의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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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의장도 "백신 특허권 유예가 가난한 나라들의 백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마법 총탄(magic bullet)'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EU는 백신 지재권에 관한 미국의 구체적인 제안을 기꺼이 논의할 것"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FT는 미국이 5일 지재권 유예 제안을 공개하기 직전에 EU에 알렸지만 사전 논의는 없었다고 전했다.
앞서 화이자의 앨버트 불라 최고경영자(CEO)도 7일 지재권 유예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고 CNBC 등이 보도했다. 불라 CEO는 사원들에게 보내는 서한을 통해 "지재권 보호가 없어지면 백신 제조 경험이 없거나 부족한 기업들이 백신 원재료를 찾아 나서면서 쟁탈전이 벌어지고, 기존 기업들이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원재료를 구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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