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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 (토)

“게임기 사려고 모은 용돈으로 어려운 이웃 도울 수 있어 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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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8일 경북 칠곡군 왜관읍사무소 앞에서 육지승 군과 아버지 육정근 씨가 이웃에게 나눠줄 물품 옆에 서서 미소짓고 있다. 칠곡=명민준기자 mmj8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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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기 사려고 한참 모은 돈이에요. 게임기는 못 사지만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어 너무 뿌듯해요.”

경북 칠곡에 사는 육지승 군(9·왜관초3)이 돈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3년 전인 2018년. 아버지 육정근 씨(44)가 지인의 자동차 정비소에 갔다가 얻은 에어컨 가스통에 손바닥만한 구멍을 뚫어 지승 군의 몸집만한 커다란 저금통을 만들어주면서부터다.

“지승이가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저금통을 빤히 쳐다보더라구요. 혹시나 부담스러워할까봐 ‘아빠도 같이 저금 할 테니 걱정마라’고 이야기 했는데 그때부터 돈을 모으는데 관심을 보였어요.”

지승 군은 이때부터 갖고 싶은 물건이 생길 때까지 돈을 모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무렵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지승 군의 주변에는 호주머니 속 동전을 노리는 유혹거리가 가득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장난감도 사고 싶었고 친구들과 군것질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승 군은 이런 유혹을 참아내며 저금통에 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푼 두푼 모은 동전과 지폐가 어느 덧 저금통의 절반만큼 쌓였다.

지승 군은 그렇게 3년간 모은 어느 날, 어린이날 꼭 사고 싶은 물건이 생겼다. 50만 원 정도하는 가정용 게임기였다. 지승 군은 아빠를 졸라 저금통 속 동전과 지폐를 방바닥에 쏟아 부었다. 온 가족이 달라붙어 돈을 세어보니 딱 게임기 살 만큼의 돈이었다.

이 때 아버지 육 씨의 장난끼가 발동했다. “아들이 기특하다는 생각에 농담반 진담반으로 ‘힘들게 돈을 모았으니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게 어떠냐’고 물었어요. 그런데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어요.”

지승 군이 “내가 좋아하는 계란을 사서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고 싶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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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씨는 개인 사업을 하면서 오래전부터 봉사단체에 가입해 이웃사랑을 실천해왔다. 지승 군이 5살이 되던 해부터는 연탄나눔봉사와 집짓기봉사 등을 같이 다녔다.

이렇게 지승 군이 모은 돈 50만 원으로 계란 30판과 라면 10박스, 두유 10박스를 구입했다. 지승 군의 착한 마음이 가득 담긴 이 물품은 8일 어버이날을 맞아 왜관읍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통해 지역 복지사각지대 이웃들에게 전달됐다.

지승 군은 “힘들게 돈을 모았지만 갖고 싶은 게임기를 포기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서 기분은 좋다”며 수줍어 했다.

하지만 아버지 육 씨는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지승이가 ‘아빠가 대신 게임기를 사줄거지?’라며 말하더라”며 껄걸 웃었다.

칠곡=명민준기자 mmj8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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