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파업 카드를 꺼낸 것은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에서 택배 차량의 지상 진입을 금지하면서 촉발된 갈등 탓이 크다. 5천 가구 규모인 이 아파트는 지난달 1일부터 택배차의 지상 출입을 막았다. 주민 안전사고와 보도블록 등 시설물 훼손 우려가 있다는 게 이유다. 이 사실이 언론 보도로 퍼지자 아파트 갑질 시비가 일었고 택배 노동자들은 단지 입구에 택배 물품을 쌓아둬 '택배 산성' 논란을 불러왔다. 이후 택배 노동자들은 사비로 저상차량을 확보해 지하주차장을 이용하거나 종전 차량을 그대로 쓰며 단지 밖에서 손수레를 끌고 배송을 이어가고 있지만, 근본 갈등은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지상공원형으로 지어진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층고는 2.3m인데 택배 탑차로 불리는 기존 차량의 높이는 2.5∼2.7m이므로 지하주차장을 쓰려면 저상차량 확보는 필수다. 택배 노동자는 또한 본사-대리점-택배 노동자 구조 하 개인사업자이자 노동자라는 이중적 성격을 갖기에 차량 확보 전부가 자부담이다. 저상차량이 없다면 손수레로 옮겨야 한다. 같은 택배비로 이 아파트에서만 왜 이런 희생을 견뎌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울며 겨자 먹기다. 노조는 파업 계획을 발표하면서 택배사에 책임 있는 해결책을 촉구했다. 노동부에는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하는 저상차량을 산업안전 유해 요인으로 지정하고 운행정지를 명령할 것을 요구했고, 국토부에는 당사자들 간 대화의 장을 마련하라고 요청했다. 택배사와 당국은 경청하고,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
한 아파트 단지에서 시작된 이번 갈등을 지켜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상생의 지혜를 내면 해결될 것도 같은 문제가 풀리지 않아서다. 저마다 자기만 합리적이라며 버틴다. 2018년 말 관련 규정이 층고를 높이기 전까지 이 아파트처럼 지하주차장 높이가 낮게 지어진 아파트 일부에서는 택배차의 지상공간 출입시간 지정, 전동카트 활용 등의 방법으로 탈출구를 찾은 사례가 있다고 한다. 택배차 전용 주차면을 만든 경기도 공공기관들도 참고할 만하다. 물론 지상 차량 금지를 전제로 건설된 아파트를 탓해야지 왜 자기들이 비난을 받아야 하느냐는 주민들의 하소연도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코로나19 시대 필수 서비스가 된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 대비 저소득, 과노동, 과로사 실태를 알고 저상차량 노동의 위험을 이해한다면 그것을 말하는 데서 머무는 것이 과연 합리적이긴 한 것인지 되짚어 봐야 한다. 같은 택배비를 받고 단지 입구에 물품을 쌓아 놓은 것이 부당하다고 성토하는 주민들에게 1층과 5층의 집 앞 배송비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하고 누가 물으면 뭐라고 답할지 궁금하다. 5층이 수고가 더 드니 대가 또한 더 치러야 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어서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는 그렇게 합리 또는 효율로만 돌아가지 않으며 그리 돼서도 안 된다. 왜 이 아파트를 위해 시급으로 따지면 1만 원이 안 되는 택배 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치는 저상차량을 써야만 하며 그 확보 비용을 전부 그들이 부담해야 하는가 하는 항변은 그래서 훨씬 크게 들린다. 파업 계획에 대해 택배 기사들이 일을 못 해 손해를 보고 소비자들에게도 피해가 가서야 하겠느냐는 말만 반복하는 것이 택배사들의 태도여서는 안 된다. 택배 기사와 주민 간 대화가 막혀 있다면 뚫어야 하고, 저상차량 노동이 위험한 것이 분명한 이상 배격해야 하며, 다른 방안을 강구하는 데 비용이 든다면 부담할 궁리를 해야 한다. 자율 해결 노력을 촉진하며 정부도 관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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