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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랑의 범죄 속으로] 서예지의 위험한 데이트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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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범죄는 왜 발생하는가. 그는 왜 범죄자가 되었을까. 범죄를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곁에 존재하는 범죄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본다.

한국일보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서예지.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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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범죄의 원인과 대책을 가르치다 보면 강력 범죄자에 대한 학생들의 분노와 타자화를 쉽게 경험한다. 2008년 한국에서 데이트 폭력의 개념을 범죄의 속성과 연결지어 설명했을 때,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아닌 “뭐 그런 것도 범죄라고 하는가?”라는 항의에 직면했다. 몇 년이 지나고 뉴스에서 데이트 폭력 사건이 보도되었고, 사람들은 데이트 폭력의 위험성을 인지하는 것은 물론 가해자를 처벌하는 입법요구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1년 봄, 배우 서예지의 데이트 폭력 사건이 새롭게 조명을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 뉴스를 통해 접했던 가해자의 모습과 달리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남성이 그 폭력 안에서 지배당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그녀가 남자 배우에게 행한 행동을 '가스라이팅'(gas lighting)이라 부르고 있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적, 경제적 의존성을 이용한 심리적 조작을 통해 지배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말한다. 사실 범죄학에서도, 심리학에서도 사용하는 정확한 학술용어는 아니다. 그 유래는 1948년 영화 '가스등'에서 찾을 수 있다. 깜박이는 가스등을 보고 있으면서도 가스등이 깜빡이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하는 남편의 말을 믿고, 오히려 스스로의 정신상태를 의심하는 여자주인공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가스라이팅을 인용하게 되었다.

한국에 가스라이팅 단어를 유행시키고 있는 여자 배우는 ‘나로 인해 행복하지, 날 그러니 더 행복하게 만들어’라는 문장을 남겼고, 사랑에 빠진 그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남자 배우는 시키는 대로 행할 수밖에 없었다. 부당함을 인지했건 안했건, 사랑에 눈먼 그는 최선을 다해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서 점점 고립되어가고, 더욱 강해지는 그녀에 대한 의존성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들은 서예지의 말과 행동에 놀랐고, 지배당한 남자 배우의 행동도 함께 비난했다. 이러한 사람들의 반응과 달리, 범죄학자에게 이 사건은 교육자료로서 매우 유용한 의미가 있다. 과거 데이트 폭력이 소개되었을 때 그 험한 폭력 피해의 영상을 시청한 일반인들은 연인 간 폭력의 위험함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심리적 폭력에 대해서는 둔감했다. 서예지는 연인 간의 심리적 폭력이 한 사람을 얼마나 황폐화시키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가스라이팅’ 단어는 이 시대의 또 다른 상식이 되었다.

가스라이팅은 데이트 폭력 중 심리적 폭력의 아주 부분적인 증상일 뿐이다. 즉, 가스라이팅을 당해야 심리적 폭력을 당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입술이 부르트고 온몸에 피멍이 들지 않아도 신체적 폭력인 것이고, 가스라이팅을 당하지 않아도 나를 존중하지 않고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연인 간의 모든 말들이 심리적 폭력이다. 데이트 폭력 연구에 따르면 가해자가 남성인 경우에는 신체적 폭력 비율이 높지만, 가해자가 여성인 경우는 언어적 폭력과 심리적 폭력의 비율이 높았다. 즉, 남성은 물리적 폭력으로 데이트 폭력을, 여성은 언어적이고 심리적인 데이트 폭력을 하는 경향을 갖는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폭력적 행위의 원인을 피해자의 잘못으로 돌리고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내 옆에 ‘네가 잘못해서’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사람이 애인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면, 서예지의 김정현 못지않게 스스로가 상당히 위험한 연인관계에 놓여있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대는 잘해줄 때도 있다는 생각과 그래도 우리는 행복하다는 위안은 나의 피해를 강화할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일보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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