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법 위반으로 보기엔 애매모호한 머스크의 행보
법조계 관계자 "머스크를 법정에 세우더라도 이길 자신 없다"
머스크가 남긴 것…쉽지 않은 규제·절실한 투자자 보호·가상화폐 시장의 모순
가상화폐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이른바 ‘광풍’으로까지 비견됩니다. 하지만 광풍이 불수록 잠시 멈춰 서서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로 지적해야 할 부분까지 함께 휩쓸려가면 언젠가 더 큰 문제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차분히 가상화폐 시장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 ‘비트코인 비틀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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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공병선 기자] 테슬라 주식을 비롯해 대표 가상화폐(암호화폐) 비트코인까지 광풍의 중심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있었다. 그는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논란이 되는 사안에도 적극 개입했다. 지난 1월말 공매도 세력에 개인투자자들이 결집해서 대항한 게임스톱 사태 때 머스크 CEO는 “공매도는 사기”라고 말했다.
비트코인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부터 비트코인을 사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한다던 머스크 CEO는 꾸준히 비트코인을 지지해왔다. 이에 테슬라와 비트코인은 운명공동체처럼 움직였다. 지난 2월9일 테슬라가 15억달러(약 1조6762억원) 가량의 비트코인을 매입했다고 공시하자 비트코인은 17.05% 올랐다. 그런가하면 비트코인으로 테슬라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결제시스템도 마련했다.
최근 머스크 CEO는 비트코인 투자자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테슬라가 보유하고 있던 비트코인의 10%를 매도했다고 올해 1분기 실적 발표에서 밝힌 것이다. 이에 테슬라는 1억100만달러의 시세차익을 거뒀지만 비트코인 투자자들은 머스크 CEO가 나서서 비트코인 시세를 끌어올리고 차익을 가져갔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믿었던 머스크 CEO로부터 발등을 찍힌 셈이다.
일부는 그의 행동이 가상화폐 시장에서 이뤄져서 망정이지 주식시장이었다면 처벌을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머스크 CEO가 올해 비트코인을 두고 했던 언행이 처벌 대상인지 판단하려면 주식 시세조종 혹은 부정거래를 규정하는 자본시장법을 살펴봐야 한다. 정말 비트코인을 주식으로 간주한다면 머스크 CEO는 자본시장법을 위반했을까.
자본시장법 제176조에 해당하려면 허위사실을 말해야 하는데…
먼저 자본시장법 제176조다. 176조에선 머스크 CEO가 가장 많이 받았던 비판 중 하나인 시세조종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머스크 CEO가 176조를 어기진 않았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176조에 해당하려면 허위사실을 전하거나 유포해야 하는데 머스크 CEO는 비트코인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비트코인이 아직 완전한 실체를 갖추지 못한 측면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법조계 관계자 A씨는 “머스크 CEO가 말한 것은 주장이지 사실적 부분에 있어 허위라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머스크 CEO는 자신을 “비트코인 지지자”라고 소개하거나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인 상황에선 법정화폐를 지니고 있는 것보다 비트코인을 보유하는 게 더 낫다”고 사실을 전한 게 아니라 주장을 했다.
그는 허위매매를 한 적도 없다. 15억달러를 매입한 사실을 공시를 통해 밝혔으며 최근 테슬라가 보유한 10% 규모의 비트코인을 매도한 것도 1분기 실적 발표에서 공개했다. A씨는 “머스크 CEO가 가상화폐 시장에 직접 개입해 존재하지 않는 물량을 풀거나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매입을 하는 등 허위주문을 한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더 포괄적인 자본시장법 제178조를 피해갈 수 있을까?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에서 관할하는 자본시장법 제178조는 광범위하게 규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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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본시장법 제176조보다 더 포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 바로 자본시장법 제178조다. 178조는 부정거래행위, 시장질서 교란행위, 불공정행위 등을 금지하며 일반규정에 가깝다. 쉽게 말하자면 증시에서 일어나는 부정한 행위를 178조가 광범위하게 규제한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머스크 CEO가 해온 행동과 비슷하면서 178조에 해당하는 판례가 있다. 2017년 4월 7일 판결이 난 ‘2015도760’ 판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증권방송전문가로 활동하던 피고인은 주식을 미리 사놓은 사실을 숨긴 채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그 종목을 추천했다. 종목을 추천할 땐 허위사실을 알리진 않았다. 이후 주가가 오르자 약 37억원의 차익을 실현했다. 대법원은 당시 유사투자자문업에 대해 선행매매를 금지하는 규정이 없었고 방송 시청자들이 스스로의 판단 하에 투자해야 한다는 점 등을 감안하더라도 유죄에 해당한다고 판결 내렸다. 이해관계를 표시하지 않고 매수를 추천하는 것은 178조에서 말하는 부정한 수단, 계획, 기교에 해당하며 증권방송전문가라는 지위를 활용해 객관적으로 종목을 추천한다는 인상을 줘 위계의 사용에도 해당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머스크 CEO 역시 비트코인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유포하지 않았지만 직간접적으로 비트코인 시세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가상화폐 시장에는 선행매매를 금지하는 규정이 따로 없고 투자자들도 머스크 CEO의 트위터를 보고 스스로 판단해서 투자했다. 이후 시세가 오르자 차익도 실현했다.
그럼에도 법조계에선 머스크 CEO가 178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선행 매매를 한 사실을 밝혔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 B씨는 “178조에서 규정하는 부정한 수단, 계획, 기교 등에 해당하려면 선행매매했다는 사실을 숨겨야 하는데 테슬라는 비트코인을 매입했다고 스스로 공시했기 때문에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위계의 사용에도 해당하지 않다는 게 법조계 설명이다. B씨는 “테슬라는 투자자문업을 운영하는 업체가 아니며 머스크 CEO는 유명세가 있는 인물이지 투자전문가도 아니다”며 “178조에서 한 단계 더 멀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B씨는 “이 사건으로 머스크 CEO를 법정에 세운다면 이길 자신이 없다”고 덧붙였다.
머스크가 가상화폐 시장에 남긴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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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머스크 CEO의 행보는 가상화폐 시장이 제도권에 들어오더라도 규제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판단하기 애매한 상황이 속출할 수 있으며 가상화폐 특성상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일일이 점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가상화폐가 생겨나기 때문에 정부의 모니터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미연에 방지하면 좋겠지만 처벌을 강력하게 하는 등 증시에 비견할 만한 사후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명인의 말에 피해자가 양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기 때문에 투자자 보호가 시급하다는 것도 시사한다. 시세조종이나 부정거래행위 등이 증시에서 발생한다면 잡아낼 수 있지만 가상화폐 시장은 현재 방치돼 있다. 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는 “다른 자산과 달리 가상화폐 시장은 증시처럼 장이 열리기 때문에 투자자 보호를 위해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머스크 CEO가 가상화폐의 모순을 드러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의 말에 가상화폐가 치솟거나 가라앉는다는 것 자체가 현재 가상화폐 시장의 나아가는 방향이 기술 발전 혹은 혁신보다 투기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도지코인의 급등세가 가상화폐 시장이 비정상적인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을 말한다”며 “머스크 CEO의 행보가 가상화폐 시장의 허실을 드러내는 촉발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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