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시중은행들은 당장 수탁 계약을 늘리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고객들이 사모펀드를 외면하는 데다, 수탁사의 책임은 갈수록 강화되는 데 반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당국이 먼저 수탁사의 감시 기준과 범위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은행권을 압박한다는 불만도 나온다.
29일 은행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부행장을 소집해 비공개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금융위 측은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사모펀드 수탁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취지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사모펀드 수탁과 관련해 업계 현황을 파악하는 한편 금융감독원이 마련하고 있는 수탁 가이드라인에 대한 수탁사들의 의견을 청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가 팔을 걷고 나선 것은 국내 사모펀드 시장이 고사 위기에 처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 들어 시중은행들이 사모펀드 수탁을 거부하면서, 상당수 자산운용사들이 펀드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설정액 100억원 미만의 소규모 사모펀드의 경우 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이 계약 자체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국민의힘 이영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은행권 펀드 수탁계약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내 8개 은행의 사모펀드 수탁계약은 지난해 2168건으로 전년 4567건보다 52% 줄었다. 금융투자협회가 집계한 지난해 말 은행권 사모펀드 판매 잔액 또한 전년 대비 27.3% 감소한 18조4294억원으로, 2017년 이후 처음으로 20조원 아래로 떨어졌다.
통상적으로 자산운용사가 먼저 펀드를 만들면, 은행과 증권사 등 판매사가 이를 판매한다. 이후 수탁은행이 펀드자산을 보관·관리하고, 환매대금과 이익금을 지급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 과정에서 수탁 계약을 맺은 은행은 자산운용사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일부 은행들은 "수탁 수수료는 턱없이 낮은데 책임은 무한대로 늘어나고 있다"며 불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라임과 옵티머스 펀드와 관련된 제재 절차가 아직도 진행 중"이라며 "요즘 같은 시기에 어떤 은행이 사모펀드를 적극적으로 수탁하겠느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금융당국이 은행에 사실상 '연대책임'을 요구하는데, 은행 입장에서는 수탁 자체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오는 10월 시행을 앞둔 자본시장법 개정안 또한 은행이 수탁을 기피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개정안은 사모펀드 운용 과정에서 수탁사의 감시 책임 의무를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문제는 수탁사가 어디까지 감시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과 범주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현재 금감원은 수탁사의 감시 의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시중은행과 자산운용사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데, 당국이 일방적으로 운용사에 힘을 실어준 격"이라며 "금융당국이 감시 의무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라도 서둘러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신한은행 라임펀드 피해자연대 회원들이 지난 2월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라임펀드 책임자 해임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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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준무 기자 jm100@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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