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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거산성에서 대구 지역 최초로 목간 11점 출토…7세기 초 전략적 거점으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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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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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팔거산성 목간이 출토된 집수지 2호의 전경.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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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목간(木簡) 보물창고가 될 수 있을까. 삼국의 격변기였던 7세기 초 신라의 전략적 요충지 팔거산성에서 목간 11점이 최초로 출토됐다.

문화재청은 대구 팔거산성에서 7세기 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 목간 11점이 대구 지역에서는 처음 출토됐다고 28일 밝혔다. 문자를 기록한 나무 조각인 목간은 문헌이 적은 고대사 연구에 결정적 도움이 되는 기록 유산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발굴 조사를 벌인 화랑문화재연구원으로부터 현재까지 발견된 목간 11점을 받아 기초 조사를 진행했다. 전체 11점 중 7점에서 글자 또는 글자의 흔적이 보이고, 그 중에는 제작 시점을 추정할 수 있는 간지(干支)와 곡식 이름도 등장한다. 4점의 목간에서 크게 3종류의 간지가 발견됐으며, 임술년(壬戌年)과 병인년(丙寅年) 그리고 글자 부분이 파손되어 간지 중 글자 일부와 세 번째 글자 년(年)만 보이는 사례가 확인했다. 여기서 임술년과 병인년은 각각 602년과 606년으로 추정되며, 목간을 작성한 시점으로 여겨진다. 또한 보리(麥의 속자)와 벼(稻), 콩(大豆)이라는 곡식 이름이 등장한다.

팔거산성은 금호강과 그 아래 낙동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대구 함지산 정상부에 축조됐다. 경주문화재연구소에선 팔거산성 역시 기존 목간이 나온 다른 지역처럼 군사적으로 중요하면서 물자가 집중된 거점으로 추정했다. 목간이 담고 있는 내용이 곡식과 관련되었고, 삼국시대 신라의 지방 거점이 대부분 산성이었기 때문이다. 대구 칠곡 지역을 중심으로 금호강 하류와 낙동강이 합류하는 지역을 통제하던 곳이 팔거산성이라는 점도 확실해졌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팔거리현(八居里縣)이 등장하는데, 그동안은 대구 칠곡 지역을 가리킨다고 막연히 추정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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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팔거산성 유적 전경. 문화재청 제공


팔거산성은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7세기 초반 무렵, 신라 왕경 서쪽을 방어하는 전초기지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진평왕 시절인 7세기 초반 백제 무왕은 본격적으로 신라를 침공하기 시작한다. 특히 642년 신라는 백제 의자왕의 침공으로 대야성(경남 합천)을 잃은 뒤 군사·행정 거점을 신라 왕경과 가까운 압량(경북 경산)으로 옮겼다. 신라 서쪽 지역에서 왕경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오늘날 낙동강을 통해 대구-경산-영천을 거친다. 이러한 경로에서 가장 서쪽에 있던 팔거산성은 수로와 육로를 동시에 통제하는 중요 거점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관심이 모이는 것은 목간의 내용이다. 목간에는 ‘왕사(王私)’와 ‘하맥(下+麥의 속자)’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의미 해석은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여기서 왕사의 경우 기존 경남 함안 성산산성 출토 목간에 보이는 왕송(王松)과 동일한 표현으로 추정됐으나, 두 차례 판독조사를 거쳐 ‘송(松)’을 ‘사(私)’로 수정해야 함을 밝혀냈다.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이번 목간은 다른 데서 볼 수 없을 정도로 간지가 많이 쓰여 있고, 일반적으로 연월일이 나오는 것과는 달리 연도만 나오는 것도 특이하다”면서 “현재 반 정도 발굴이 됐기 때문에 더 많은 목간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왕사’라는 글씨가 확인되면서 함안 성산산성 목간에서 풀지 못한 수수께끼의 실마리를 찾았다”면서 “개인적 의견으로는 왕실 직속이라는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고, 역시 팔거산성의 중요도를 보여주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팔거산성은 대구 북구 노곡동 산1-1번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인근에는 2018년 사적으로 지정된 구암동 고분이 있다. 2015년 지표조사, 2018년 시굴조사를 거쳐 2020년 10월부터 학술발굴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번 조사에선 석축(石築) 7기, 추정 집수지(集水池) 2기, 수구(水口) 등이 발견됐다. 석축은 조사지역 북쪽 경사면에 조성되었으며, 일부 유구가 중복되어 있어 석축 사이에 축조 순서 또는 시기 차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집수지는 남반부 평탄면에 조성되었는데, 추정 집수지 1호는 돌, 2호는 목재를 사용하여 조성되었다. 목간이 출토된 집수지 2호는 길이 7.8m, 너비 4.5m, 높이 약 3m이다.

신라 지방 유적에서 목간이 출토된 사례는 인천 계양산성, 경기 하남 이성산성, 경남 함안 성산산성 유적 등이 있다. 2019년 11월 대구 인근 경산 소월리에서도 사람 얼굴 모양으로 화제를 모은 토기 아래에서 6세기 신라 토지 관련 목간이 발견됐다. 하지만 대구 소재 유적에서 목간이 출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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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간이 출토된 집수지 2호의 토층.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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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간 출토 상태.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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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간 1호.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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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간 3호.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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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간 7호.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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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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