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범죄 처벌 강화…22년 만에 국회 통과
반의사불벌죄 규정 여전…'반쪽짜리' 부실법안 지적도
전문가 "현재 법률안 피해자 보호 실효성 담보하기 어려워"
지난 9일 오전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이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나오다 마스크를 벗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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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김태현 살인사건'으로 스토킹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국회는 관련 법안을 개정하고 조처에 나섰지만 '뒷북 대응'이며 이마저도 '반쪽짜리' 부실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또한, 우리 속담인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말도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는 여론도 일고 있다. 사실상 '끔찍한 스토킹 범죄'에 해당하는 말을 가해자 중심으로 해석하는 등 그간 우리 사회가 스토킹을 일종의 로맨스로 보는 등 관대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이 사건과 관련해 강력 대응은 물론 후속 조처까지 주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공포된 스토킹 범죄 처벌법(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과 관련해 "충분한 스토킹 대책을 담고 있는지 추가로 점검해 달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세 모녀 피살사건을 생각하면 절실함을 느낀다. 스토킹 범죄가 철저히 예방 근절될 수 있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스토킹처벌법'은 이른바 '노원 세 모녀 피살사건'을 계기로 스토킹에 대한 처벌 강화 여론이 높아지면서 법안 발의 22년만인 지난달 국회를 통과했다.
그간 경범죄에 그치던 스토킹 범죄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고, 가해자에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내릴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또 경찰은 피해자·피해자 주거지 100m 이내 접근금지, 통신이용 접근금지 등의 조처를 내릴 수 있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해진다.
지난 9일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이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나와 무릎을 꿇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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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스토킹 신고 4515건...처벌은 10%…개정된 법 '반쪽짜리' 부실 법안 지적도
이런 가운데 지난해 경찰이 접수한 스토킹 범죄 신고 중 처벌에 이른 건은 1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행정안전위 소속 박완수 국민의힘 의원이 24일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경찰에 접수된 스토킹 범죄 신고 건수는 4515건이다. 처벌받은 건수는 총 488건뿐이다.
전체의 89.2%에 해당하는 4027건은 대부분 현장에서 사건이 종결됐다. 박 의원은 "최근 노원구 세 모녀 살인 사건도 스토킹에서 비롯했다. 스토킹은 그 자체로 피해자에게 정신적·물적 피해를 끼칠 뿐만 아니라 다른 강력 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 경찰이 더욱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사회가 스토킹 범죄에 대해 안일하게 인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30대 직장인 김 모씨는 "우리 속담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도 있지만, 그 말이 이제는, 틀린 말이 아닌가 싶다"면서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모든 것은 그냥 범죄 우려가 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20대 회사원 최 모씨는 "김태현 살인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스토킹 범죄가 얼마나 끔찍한지 잘 알게 됐다"면서 "앞으로 처벌을 더 강력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통과된 법안이 '반쪽짜리'라는 비판도 있다.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죄를 묻지 않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로서는 범죄 자체가 자신의 신상을 모두 알고 있을 수밖에 없는 스토킹 범죄이기 때문에 자칫 보복을 우려해 제대로 된 신고나 고발을 할 수 없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 결국 범죄는 더욱 잔혹해질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범행을 미리 막을 수 있는 일종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한 이 법은 '스토킹 행위'를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에 대하여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주는 행위'로 5가지만 요건으로 하고 있어 또 다른 범죄 수법 등 신종 스토킹 행위를 포괄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관련해 '한국여성의전화'는 논평을 내고 "피해자의 입을 막는 반의사불벌 조항의 존속, 피해자가 법원에 직접 신청할 수 있는 피해자보호명령의 부재, 피해자의 일상회복을 위한 지원제도 미비 등 현재 법률안으로는 피해자 보호와 인권 보장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법률안이 언뜻 동거인과 가족을 피해자의 범주에 포함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을 스토킹 '행위'의 대상으로만 규정할 뿐 실질적인 보호조치는 어디에도 없다"고 비판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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