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현대아파트 전경 [사진 = 한주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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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규제 완화를 약속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규제와 활성화, 두 가지 카드를 동시에 꺼내 들었다. 최근 가격 동향이 심상치 않은 압구정 등 4곳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은 반면,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은 개선을 요구했다.
2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 21일 서울시청에서 브리핑을 갖고 주요 대규모 재건축·재개발 사업지역 4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지정대상 구역은 압구정아파트지구 24개 단지, 여의도아파트지구 포함 인근 16개 단지, 목동택지개발사업지구 14개 단지, 성수전략정비구역 4개 지구 총 4.57㎢다. 오는 27일 발효되며 지정기간은 1년이다.
최근 일부 재건축 단지와 한강변 재개발 구역 일대에서 비정상적인 거래가 포착되고 매물 소진과 호가 급등이 나타나는 등 투기 수요가 유입될 우려가 높다고 판단했다. 실제 이달 초 압구정동 현대7차 전용 245㎡는 역대 최고가인 80억원에 매매거래됐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이 되면 실거주자가 아닌 사람의 주택 거래가 제한된다. 일각에선 투기 수요 유입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지만, 인근 동네로 수요가 몰리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같은 날 서울시는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개정을 위한 개선 건의안 공문을 국토교통부에 발송했다. 오세훈 시장은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오찬 자리에서도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개정을 건의했다.
오 시장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중앙정부는 재건축을 억제하는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그 수단으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강화를 활용했다"며 "장관 부임 전이므로 국토교통부가 안전진단 문제를 풀어줬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말씀을 드렸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신속한 주택공급을 위해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 변경에 협조해줄 것을 시의회에 요청했으며, 자체적으로 추진 가능한 아파트 단지들의 지구단위계획 결정 고시, 도시계획위에 계류된 정비계획 등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일정규모 이상의 주택·상가·토지 등을 거래할 때는 해당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 없이 토지거래계약을 체결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토지가격의 30% 상당 금액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주거용 토지의 경우 2년 간 실거주용으로만 이용 가능하며, 매매나 임대가 금지된다.
서울시는 허가를 받아야 하는 토지면적도 법령상 기준면적의 10% 수준으로 하향했다. 주거지역은 18㎡, 상업지역은 20㎡를 초과할 경우가 대상이다. 아울러 지정기간 만료시점에서 연장 여부 등도 종합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다.
오 "문 대통령 여의도 시범아파트 직접 방문 바라"
오 시장은 청와대와 정부를 향해서는 안전진단 기준 등 재건축 규제 완화를 주문했다. 오 시장은 "중앙 정부의 입장은 재건축 억제책을 펴왔고, 그 수단으로 재건축 안전진단기준 강화를 활용했다"며 "그 부분을 완화해달라는 서울시 입장을 국토교통부에 통보했고, 대통령에 여의도 시범아파트트를 특정해 꼭 한 번 직접 방문해달라는 취지의 건의를 드렸다"고 말했다.
투기 수요는 수요대로 억제하되, 재건축 활성화를 통한 주택공급 확대 정책은 그대로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사진 = 연합뉴스] |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놓고는 오세훈 시장이 부동산 규제를 본격적으로 풀기 위해 포석이란 분석도 나온다. 허가구역 지정과 동시에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개선 요구한 점이 이를 방증한다는 것이다.
2018년 2월 강화된 안전진단 기준은 구조 안전성 배점을 기존 20%에서 50%로 높여 안전성 평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시설이 아무리 노후하고 환경이 열악해도 건물 구조적으로 안전에 큰 문제가 없다면 안전진단 문턱을 넘기가 사실상 어렵다.
정부의 고민도 깊어 질 것으로 보인다. 민간 개발이 활성화되면 상대적으로 정부의 2·4 대책에서 제시된 공공 주도 개발사업의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압구정이나 목동 등 이번에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곳의 조합 등은 공공 주도 사업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다만, 노형욱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오 시장의 민간 재건축 규제 완화 방안에 대해 "공공 주도든 민간 주도든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다"라며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정부는 일단 민간 재건축 규제 완화가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워낙 커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안전진단 제도를 운용하는 것은 안전에 큰 문제가 있는 아파트만 재건축을 하라는 취지"라면서 "안전진단 요건을 개선한 것이 2018년으로 몇 년 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울시가 시장이 불안해지지 않도록 하는 보완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전제하며 "시장에 큰 영향을 주는 사안이라 신중히 고려해야 하며, 최근 안전진단 제도를 개선한 측면도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가 토지거래허가제 외에 추가로 더 확실한 시장 안정 방안을 내놓는다면 신중히 검토해볼 수 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가격 안정 효과는 제한적 의견도
일각에선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재건축·재개발 단지가 모인 지역 위주로 제한적으로 지정되다 보니 그 외 지역으로 주택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와 서울시는 작년 5월 용산역세권 개발예정지 인근을, 6월에는 송파구 잠실동, 강남구 삼성동·청담동·대치동 등 4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강남·송파구 4개 동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후 두 달간 아파트 거래가 예년의 7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지만, 매매가격은 계속 올랐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서울시가 재건축 규제 완화에 앞서 집값 급등을 막기 위해 고육지책을 쓴 것 같다"며 "규제를 풀어주면 집값이 급등할 수 있는데, 이걸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지금은 워낙 집값이 많이 오른 상황이어서 이전처럼 풍선효과로 인근 지역 집값이 크게 튀어 오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도 "오세훈 시장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양면 작전을 쓰는 것 같다"며 "한편으로는 규제 완화를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집값이 오르면 언제든 규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가 서울시의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 요구에 호응할지에 대한 전망은 분분하다.
권대중 교수는 "중앙 정부가 서울시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토부가 서울에서 추진하는 공공 재건축 등 사업도 사실 사업승인권자가 서울시장이다. 서울시도 권한의 한계로 중앙정부의 협조가 필요하지만, 오세훈 시장 역시 중앙정부에 쓸 수 있는 카드가 있는 것으로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추진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반면, 심교언 교수는 정부와 서울시의 부동산 정책 기조의 차이가 커 좁혀지기 어려울 것이라며 "마찰이 더 커지고 갈등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서울시 직권으로 가능한 35층 층고 규제 완화나 토지 용도변경, 공공기여 비율 축소 등 규제 완화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안전진단 기준이나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은 손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는 풍선효과를 우려하면서 "정책 효과가 나려면 임팩트 있게 구역 지정을 더 넓게 했었어야 한다"며 "2·4 대책 때처럼 현금청산 카드를 꺼냈다면 효과가 더 강력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 robgud@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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