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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하필 文 "곤혹" 뒤 재판부 교체…그리고 위안부판결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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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2월 법원 인사는 판결 기류 변화와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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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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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위안부 동원과 관련해 현 시점의 국제 규범상으로는 한국 법원이 일본 정부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 21일)

“위안부 동원은 중대한 불법행위로 예외적으로 일본 정부에 국가면제를 적용하면 안 된다. 피해자들에 1억원씩 지급해야 한다.”(중앙지법 민사34부, 1월 8일).

일본군 위안부 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해 불과 석 달 간격으로 하급심 법원의 상반된 판결이 나와 논란이 커졌다. 2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부장 민성철)는 고(故) 곽예남, 이용수 할머니 등 20명이 제기한 손배소에 대해 “현 시점에서 국제관습법으로 확립된 국가면제 이론에 따라 일본 정부를 한국 사법부가 재판할 수 없다”며 각하했다.

지난 1월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부장 김정곤ㆍ옛 재판부)가 “위안부 문제와 같은 중대한 인권 침해는 국제법상 최고규범인 강행규범 위반에 해당하기 때문에 일본 정부에 예외적으로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며 원고 손을 들어준 것을 뒤집은 판단이다.

이날 민사15부의 원고 패소 판결은 위안부 피해의 불법성과는 관계없이 국제법상 국가면제에 따라 소송 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게 요지다. 제2차 세계대전 독일 나치 정부의 강제노역 사건과 관련해 2012년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독일 정부의 주권적 행위는 이탈리아 법원이 판단할 수 없다”며 국가면제 쪽에 손을 들어준 국제 판례를 따른 취지다. “한 국가의 공권력 행사 등 주권적 행위에 관해서는 국가면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1998년 한국 대법원 판례와도 일치한다.

이날 재판부는 “무력분쟁 하의 국가 행위는 자국의 이익과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군대 등 무력을 동원하는 것으로, 타국 법정에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ICJ 판례 등 국제관습법을 한국 법원이 변경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도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등 양국 간 조약과 합의도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번 선고는 당초 1월 13일에 나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닷새 전 1월 8일 또 다른 재판부(민사34부)가 “예외적으로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며 원고 승소 취지로 판결했다. 위안부 피해소송에서 처음으로 일본 정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긴 했지만, 기존 ICJ 판례와 대법원 판례와 배치되는 첫 판결이라 법원 안팎에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판결은 일본 정부가 항소하지 않아 1심 판결로 확정됐다.

그러자 2차 위안부 손배소를 맡고 있던 민사15부는 예정됐던 선고 일정을 미루고 “국가면제론에 대한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며 한 차례 더 변론기일을 연 끝에 3개월 뒤 '소 각하'라는 정반대 선고를 했다. 법조계 일각에선 민사15부 재판장을 맡은 민성철 부장판사가 기존 판례를 따르려 했는데, 다른 재판부가 이를 크게 벗어난 선고를 하자 여론의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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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이용수 할머니가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눈을 감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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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판결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한 2017년 9월 이후 일제 강점기 과거사 소송에서 처음으로 피해자 측이 패소한 판결이기도 하다.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신일본제철·미쓰비시)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받아들인 이후 원고들에게 유리한 판단을 해왔던 사법부의 흐름이 바뀐 것이다. 강제징용 판결 이후 대전·대구지법 포항지원 등 전국 법원에선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일본 기업의 국내자산 명시·압류 절차가 꾸준히 진행됐다.

일본 정부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크게 반발하면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하는 등 경제보복으로 대응했다.

여기다 지난해 5월엔 장기간 묵혀오던 일본 국가 상대 위안부 피해소송이 소 제기 3년 만에 공시송달로 재개되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결국 올해 초 첫 원고 승소 판결로 이어졌고, 파격적인 판결을 해왔던 ‘김명수 대법원’의 과거사 사건 선고에 정점을 찍은 것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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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일본상대 1·2차 손해배상 청구소송 주요 일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 같은 사법부 기류에 모종의 변화가 생긴 건 불과 한 두 달 전부터다. 국제관습법 국가면제 원칙을 깬 1차 위안부 손배소 승소 판결 이후 법원 안팎에선 외교적 파장은 물론 사법부의 국제 신뢰 문제를 제기하는 법원 안팎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1월 18일 신년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솔직히 조금 곤혹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강제집행의 방식으로 판결이 실현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관해서도 “한국 정부는 그 합의가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문 대통령의 발언 2주 가량 뒤 2월 초 정기 법관인사가 있었고, 위안부 승소 판결을 했던 중앙지법 민사34부는 재판부 전원이 교체됐다. 재판장인 김정곤(49·사법연수원 28기) 부장판사는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로 발령났고, 김경선(43·35기) 판사는 전주지법 부장판사로, 전경세(40·41기) 판사는 서울동부지법으로 발령이 났다.

반대로 같은 위안부 2차 손배소 재판을 맡은 민사15부의 재판장인 민성철(48ㆍ29기) 부장판사는 유임됐고, 두 달 뒤 원고 패소로 재판을 마무리했다.

재판부가 전원 교체된 민사34부는 김양호(51·27) 중앙지법 민사4단독 부장판사가 재판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해당 재판부는 인사이동이 마무리된 후 한 달여 만인 지난달 29일 직권으로 “일본 정부에 소송비용을 강제집행해선 안 된다”는 결정을 추가로 내렸다. 당사자가 소송비용 결정신청을 하지도 않았는데 법원이 직권 결정을 내리면서 “외국정부에 대한 강제집행의 위법성”을 상세히 설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전임 재판부가 한 본안 판결 취지에 제동을 거는 내용은 더더욱 흔치 않다. 김양호 부장판사는 2010년 베를린자유대 방문학자로 근무한 경력이 있고, 독일 민사소송 하급심에 관한 논문을 기고하는 등 국제 감각을 갖춘 인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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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기억연대 출신 더불어시민당 윤미향 당선인에 대한 수요집회 기부금과 한일 위안부 합의 관련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10일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빗물이 맺혀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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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상 법원의 정기인사 이후 기존 위안부 배상 판결의 강제집행에 제동이 걸리고(3월 29일) 이를 뒤집는 본안 판결(21일)이 잇따르면서 외교적 파장을 완화하는 사법부 판단이 잇따른 셈이다. 문 정부가 임기 말 일본 정부와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데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이번 판결로 인해 과거사 문제가 사법의 문제에서 외교적 이슈로 복귀했다고 볼 수 있다”며 “정부로선 외교 공간이 넓어질 수 있어 반색할 만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법관 정기인사와 이번 판결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며 “1월 확정판결을 한 김정곤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에서 3년의 임기를 채웠기 때문에 다른 법원으로 이동한 것이고, 민성철 부장판사는 올해가 3년 차로 아직 이동할 시기가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강제집행 제동'을 건 김양호 부장판사는 대법원이 아닌 중앙지법 자체 사무분담으로 이동한 경우라고도 했다,

21일 판결에 대해 원고인 위안부 할머니 측 대리인들은 항소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당분간 상반된 하급심 판결이 공존하게 되면서 ‘사법적 혼란’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만약 공이 대법원까지 넘어간다면, 2018년 강제징용 판결로 한일관계 경색의 시작점이 됐던 대법원 판결로 결자해지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질 수 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그간 ‘내수용 판결’을 해왔던 김명수 사법부가 이제서야 제 길로 들어선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이유정ㆍ이수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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