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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단독]경찰 내 갑질 30% 그냥 접었다…극단선택에도 경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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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순경은 지난해 유산의 아픔을 겪었다. 같은 경찰서에서 근무하던 상사의 강압적인 언행 등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청문감사실에 피해를 신고했지만, 2개월 뒤 돌아온 건 “갑질이 아니다”라는 통보였다. A순경은 지방청 청문감사실에 이의제기를 해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하지만, 가해 경찰에게 어떤 징계가 내려졌는지 알 수 없었다. A순경은 현재 휴직을 하고 손해배상 청구 등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2. B경장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진단받았다. 공개적 면박, 욕설 등을 하는 상사의 갑질 때문이라고 B경장은 주장한다.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지방청 감사실에 피해 증거자료를 제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해자는 징계가 아닌 ‘주의’ 조처를 받았다. B경장은 "경찰서와 지방청은 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하거나 문제 해결에 대한 노력이 없다. 제2, 제3의 피해자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갑질·괴롭힘 신고 중 3분의 1은 ‘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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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내부비리신고센터 접수 및 처리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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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지부지 처리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일선 경찰관들의 괴롭힘 신고 내용이다. 실체적 진실을 입증하기 어렵지만, 피해 경찰관들은 지금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2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경찰 조직 내 갑질과 괴롭힘 관련 접수 및 처리 현황)에 따르면, 2018년 11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접수된 106건 중 34건이 ‘불문’ 처리됐다. 불문은 진정을 올린 비위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징계나 주의·경고 조처 없이 종결된 것을 말한다.

나머지 72건 중 대다수가 경징계에도 못 미치는 주의·경고 수준에 머물렀다. 취하 17건, 경고 14건, 확인 중 9건, 주의 8건, 직권경고 7건, 소관기능 통보 3건, 불문경고 2건, 조치완료·제도개선·부서장 교육·불수용이 각 1건이었다. 경징계에 속하는 견책이 5건, 중징계인 정직은 3건이었다.

권 의원은 "100여건의 갑질 신고 중 불문과 경징계에도 못 미치는 조처가 대다수라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찰이 일반 기업과 달리 가볍게 처벌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갑질 의혹에 대한 사실 관계를 면밀히 파악하는 한편, 폭언·갑질 등 월권적 위력 행위 방지를 위해 경찰 조직 내 괴롭힘에 대한 예방 교육을 확대하고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상담 및 신고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갑질 피해 경찰관 "공정성 투명성 부족"



경찰청에서 운영하는 갑질신고센터는 2018년 11월부터 운영 중이다. 경찰 조직 내 괴롭힘과 갑질 문화 근절을 위해 개설됐다. 지난해 금품수수 등 비위를 포함해 내부비리신고센터로 확장됐다. 경찰청 관계자에 따르면 내부비리신고센터는 본청에서 관리한다. 피신고자의 직급이나 신고 내용에 따라 조사하는 곳은 달라질 수 있다. 지방청이나 경찰서의 감찰부서로 배당되기도 하고, 비위 정도가 강하거나 경정 이상일 경우 경찰청 감사관실에서 처리한다.

하지만, 피해 경찰 직원들은 조사와 징계 조처 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A순경은 “어떤 징계가 내려졌는지, 이유가 무엇인지 듣지 못했다. 근무하던 경찰서에서 사과를 종용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또 "청문이 별개 독립기관으로서 감찰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했다. B경장은 “조직 내에서 문제 제기가 쉽지 않다. 또 경찰서 내에서 감찰부서와 가해자가 다 아는데 제대로 조사하겠나. 갑질 피해자를 돕지 못할 거면 차라리 경찰서, 지방청, 본청의 감찰부서가 없는 게 낫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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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일러스트. 사진 대한법률구조공단 노동조합





"갑질 스펙트럼 넓어 판단 어려워"



경찰청 내부비리신고센터 내에서 '갑질'을 담당하는 경찰 관계자는 “국가공무원법에 따른 공무원 징계령과 경찰공무원 징계양정기준을 고려해 판단을 내린다"며 "‘갑질’ 관련 문제는 요건이 광범위해 판단이 쉽지 않다. 행위가 부적절해 보여도 수위를 어느 정도로 봐야 할지, 갑질로 보더라도 어디까지를 징계해야 할지 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피해자에게 징계 종류와 이유 등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대해선 "징계 결과를 통보하려면 공무원 징계령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 현재로썬 성 비위 말고는 규정이 없다. 인사혁신처에 개정 의사를 전달한 적도 있으나 아직 바뀌지 않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직장 내 괴롭힘' 경찰에게는 적용 안 된다?



괴롭힘 금지법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근로자를 위한 법이다. 하지만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공무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내렸다. 공무원 행동강령(제13조의3 직무권한 등을 행사한 부당 행위의 금지) 만으로는 갑질 피해를 막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또 권익위는 2019년에 '폭행·갑질 공무원 징계처분은 피해자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폐쇄적인 경찰 조직, 독립성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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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완장 경찰로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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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호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은 “경찰 조직이 폐쇄적이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을 경우 외부 중재가 필요할 것"이라면서도 “경찰을 비롯한 공무원에 대한 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행정 해석은 독소적 행정해석”이라고 비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찰 문화에 자리 잡고 있는 갑질에 대한 통념도 바뀌어야 한다”며 “갑질과 관련한 양정기준이 명확하게 만들어져야 하고, 적극적인 교육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바뀌지 않는다면 신고센터가 있다고 할지라도 문턱을 넘는 사건 중 태반은 불문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경찰도 사람, 인권의식 높여야"



피해 경찰관들은 인권의식을 강조했다. B경장은 "경찰도 사람이다. 가해자 인권만 인권인가. 제 식구 감싸기 식의 솜방망이 처벌로 사과는커녕 고통만 받았다"고 비판했다. A순경은 "경찰 조직 내 인권 의식이 정말 낮은 것 같다. 피해를 수사하는 게 경찰인데, 경찰이 조직 내에서 더 심한 갑질을 하고 있다면 민원인을 제대로 조사할 수 있을까. 복귀를 생각하면 두렵다"고 했다.

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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