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위안부 피해자 일본 상대 2차 소송 '각하'… 법원 "국가면제 인정"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시아경제

2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가 끝난 뒤 이용수 할머니가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던 중 눈을 감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조성필 기자] 우리 법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배상 책임을 인정한 지난 1월 다른 재판부의 판단과 상반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판사 민성철)는 21일 오전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청구가 부적법하거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내리는 결정이다. 앞서 이 법원 민사합의34부(당시 부장판사 김정곤)는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같은 소송에서 승소 판결했으나, 재판마다 독립적으로 판단한 것이 원칙인 만큼 다른 결론이 나온 것이다.


소송의 쟁점은 '주권 면제'였다. 주권 면제란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재판 관할권으로부터 면제된다는 원칙이다. 앞선 재판부는 주권 면제 이론을 선택적으로 적용했으나, 이날 재판부는 이에 대해 "주권 면제 이론은 인정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우리 법원이 따라야 할 의무는 없지만 국제사법재판소(ICJ)는 그동안 '주권 면제'에 입각한 판결을 해왔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군수공장에서 강제 노역을 했던 이탈리아인 루이키 페리니가 독일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경우, 이탈리아 대법원은 독일 정부 책임을 인정했지만 ICJ는 2012년 주권 면제론에 따라 독일의 손을 들어줬다. 이날 재판부 역시 해당 판결을 언급하면서 "우리 법원이 당연 해석을 통해 국제관습법 일부를 부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국제 관습법에 대해 외국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하는 게 허용된다 볼 수 없고 이런 결과가 대한민국 헌법에 반한다 볼 수도 없다"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2015년 이뤄진 위안부 합의에 대해 "외교적인 요건을 구비하고 있고 권리구제의 성격을 갖고 있다"며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등 내용과 절차에서 문제가 있지만 이 같은 사정만으로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합의에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반영할 수 없다"며 "비록 합의안에 대해 피해자들의 동의를 얻지는 않았지만, 피해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는 거쳤고 일부 피해자는 화해·치유재단에서 현금을 수령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선고 말미 "피해자들이 많은 고통을 겪었고, 대한민국이 기울인 노력과 성과가 피해자들의 고통과 피해를 회복하는 데는 미흡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피해 회복 등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은 외교적 교섭을 포함한 노력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그동안 국가면제를 근거로 소송에 무대응으로 일관해왔다. 이 때문에 재판은 수년 동안 공전을 거듭하다가 법원의 공시송달 결정으로 2016년 12월 소송이 제기됐다. 공시 송달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송달이 이뤄지지 않을 때 공개적으로 송달 사유를 게시하면 송달이 이뤄진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이 사건은 당초 지난 1월 13일 선고가 예정돼 있었으나 재판부는 추가 심리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변론을 재개했다. 재판부는 이후 지난달 한 차례 변론기일을 열어 원고 측 대리인의 입장을 청취했고 이날 결론을 내렸다.


한편 일본 정부는 지난 1월 판결에 대해 "한국의 재판권을 인정할 수 없기에 항소할 생각도 없다"며 무대응해 그대로 확정됐다. 일본 정부는 이날 판결에 대해서도 같은 원칙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날 법정에 나온 이용수 할머니는 판결 후 "국제사법재판소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할머니는 한일 양국에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