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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전 백제 시대 금동신발 2건, 보물 지정…"가장 완전한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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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 및 복장유물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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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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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윤슬빈 기자 = 문화재청은 고창 봉덕리 1호분과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 '금동신발' 2건을 비롯해 '장성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 및 복장유물' 등 총 3건을 보물로 지정했다고 21일 밝혔다.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1500여 년 전 한국 고대인들의 '상장례' 문화를,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은 5~6세기 백제 금속공예 기술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둘 다 각각 한 쌍으로 출토된 이들 금동신발들은 모두 백제 5세기에 제작됐으며, 삼국 시대 고분 출토 금동신발 중 가장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 보기 드문 사례다. 그동안 삼국 시대 고분 출토 유물 중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은 국보나 보물로 상당수 지정됐지만 '금동신발'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금동신발은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 삼국 시대 유적에서만 발견되는 우리나라 고유의 고대 금속공예품 중 하나"라며 "비슷한 시기의 중국 유적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일본의 고분에서는 유사한 형태의 신발이 출토된 사례가 있으나, 이는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전라북도 고창 봉덕리에 자리한 4기의 대형 분구묘 중 규모가 가장 큰 1호분의 제4호 석실에서 2009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발굴했다.

4호 석실은 전혀 도굴되지 않은 무덤으로, 여기에서 금동신발 한 쌍이 무덤 주인공의 양쪽 발에 신겨져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출토된 것이다. 이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장례 때 의례용으로 사용된 신발로 백제 시대의 전형적인 형태와 문양을 보여주는 금속공예품이다.

금동신발의 전체 형태를 보면, 발목깃을 갖추어 앞쪽은 뾰족하면서 약간 위로 들렸고, 중간 바닥이 편평하며, 뒤쪽은 약간 좁아져 둥근 편이어서 흡사 배 모양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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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의 측면 세부.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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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각(재료의 면을 도려내거나 깎아서 원하는 무늬를 나타내는 조각 기법)의 육각형으로 구획된 형태 안에 용, 인면조신(사람얼굴에 새 몸통을 가진 상상의 동물), 쌍조문, 괴수, 연꽃 등 각종 문양이 화려하게 장식됐다. 신발 바닥에는 1.7㎝ 높이의 뾰족한 못 18개를 규칙적으로 붙였고, 내부에는 비단 재질의 직물을 발라 마감했다.

고창 봉덕리 1호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현재까지 백제 시대 고분에서 나온 약 19점의 금동신발 중 가장 완벽한 형태다.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과 비교했을 때 어자무늬(물고기 알 문양) 등 삼국 시대 초기 문양이 확인돼 시기적으로 앞서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무령왕릉의 왕과 왕비의 신발과 마찬가지로 바닥판과 좌우측판, 발목깃판으로 구성되고 바닥에 징(스파이크)을 박은 백제 금동신발의 전형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어 백제의 중앙 권력자가 제작해 왕의 힘을 과시하고 지방 수장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지방 유력 지배층에게 내려준 '위세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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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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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은 삼국 시대 대형 분구묘인 정촌고분의 1호 석실에서 2014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것이다.

5~6세기 무렵 영산강유역에는 복암리고분군, 정촌고분, 영동리고분군 등 대형 고분이 축조됐는데, 그중 도굴 피해를 당하지 않은 정촌고분은 1500여 년 전 백제·마한 문화를 가장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고분이다.

정촌고분 1호 석실 제3목관에서 발견된 금동신발은 좌우 신발 한 쌍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완벽한 모습으로 출토됐으며, 특히, 발등 부분에 부착된 용머리 장식은 현존 삼국 시대 금동신발 중 유일한 사례로 주목을 받아 왔다. 국립나주문문화재연구소의 최근 과학적 분석 결과에 따르면 신발의 주인은 40대 여성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보물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은 고창 봉덕리 금동신발에 비해 조금 늦은 5세기 후반경에 제작돼 6세기 무령왕릉 출토 금동신발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단계를 보여주는 공예품으로, 5~6세기 백제의 사상과 미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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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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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신발들과 함께 지정된 보물 '장성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 및 복장유물'은 호남을 대표하는 고찰 백양사에서 300년 넘게 전래된 불교문화재다. 1994년 9월 도난됐으나, 2006년 9월 지금의 제자리로 환수됐다.

본존 아미타불이 여러 제자들에게 불교의 교리를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1775년(영조 51) 백양사 극락전 아미타불상을 중수하면서 새롭게 조성한 불화다.

본존인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8대 보살과 6위의 제자, 사천왕, 2위의 팔부중(불법을 수호하는 8명의 신)을 배치했으며, 안정되고 짜임새 있는 구도, 간결한 필치와 중후한 색감, 원만한 인물 표현 등 수화승 색민의 화풍을 잘 반영하고 있는 조선 후기 대표적 불화다.

문화재청은 "불화의 조성시기, 참여자 명단 등을 알려주는 발원문과 복장낭(불화를 조성한 뒤 불경 등 복장품을 넣는 주머니) 등 복장유물 6건도 온전하게 잘 남아 있다"며 "18세기 후반 불화 복장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주므로, 복장유물 역시 함께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seulb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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