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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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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시대엔 못 보던 광경”…스가의 외교, 대중국 강경 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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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함께 ‘중국 견제’ 거침없는 행보

한겨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16일(현지시각)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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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미국의 대중국 견제 노선에 합류해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호주)·인도 4개국의 모임인 ‘쿼드’ 정상회의, 미·일 외교‧국방 장관이 참여하는 안전보장협의위원회(2+2)에 이어 미·일 정상회담까지 조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 압박’ 최전선에 일본이 서 있는 모양새다.

미·일은 지난 16일 정상회담에서 세계 질서를 이끌어가는 글로벌 동맹임을 재차 강조했다. 두 정상은 ‘새 시대를 위한 미‧일 글로벌 파트너십’이라는 공동성명을 통해 외교, 안보, 경제, 인권 등 다방면에서 중국을 겨냥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 공동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중국의 도전에 함께 대응할 것”이라며 “21세기에도 민주주의가 경쟁에서 이길 것임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특히 두 정상은 성명에서 “우리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양안(중국-대만)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장려한다”고 밝혔다. 미·일 정상회담에서 대만 문제가 들어간 것은 1969년 이후 52년 만이다. 대만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중국이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이익’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이다.

이전에 미·일 고위급 회담에서 대만이 언급된 적이 있긴 하다. 지난 2005년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2+2)에서 발표한 성명에는 “대만해협을 둘러싼 문제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고 적혀 있다. <아사히신문>은 “제3자의 입장에서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는 것과 ‘평화와 안정’을 위해 미·일이 협력해 행동하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대만 문제에 있어 중국에 대척점에 서게 된 셈이다. 가네하라 노부카쓰 전 관방 부장관보은 20일 <니혼게이자이신문> 기고에서 “미국이 대만 주변에서 기댈 곳은 일본밖에 없다”며 “한국의 문재인 정부는 미·중 모두에게 우호적으로 대하고 있고, 타이와 필리핀 등은 군사력이 작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너무 멀다”고 강조했다.

실제 대만 문제는 미국 쪽의 강한 요구가 있었으며, 일본 정부는 상당히 부담스러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미우리신문>은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일본 쪽이 중국 정부의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공동성명을 사전에 외교 경로를 통해 중국 쪽에 설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은 그동안 마지노선이라 생각했던 대만 문제까지 미국과 보조를 맞췄다.

스가 총리는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선 것일까. 일본은 영토 분쟁이 진행 중인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 홍콩과 신장위구르의 인권 탄압 등 중국과 부딪히는 지점이 많다. 특히 지난 2월 시행된 중국의 해경법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해경법은 주권을 침해당했다고 중국이 판단할 경우 중국 해경이 무기 사용, 선박 검사 등 주권을 지키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일본은 해경법이 센카쿠열도를 겨냥한 것으로 보고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 견제’라는 측면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춰야 하고, 미국의 협조가 절실한 과제도 많았다. 스가 총리는 바이든 대통령과 첫 대면 회담을 하는 외국 정상이 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개최가 불안한 도쿄올림픽 지지, 백신 문제, 후쿠시마원전 오염수까지 미국은 일본을 특별하게 대우했다. 이런 배경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미·일 정상회담을 두고 일본에서는 다양한 평가가 나온다. 미국에 끌려가는 ‘수동적인 외교’라는 비판부터 경제적 의존관계가 큰 중국에 대해 구체적인 전략을 세워두고 있는 것이냐는 목소리도 많다. 반면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미·일이 중국을 상대로 패권주의적 행동을 하지 말도록 촉구하는 것은 적절했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다.

일본 외교 ‘관저 중심’에서 외무성·자민당으로 조금씩 이동


스가 총리 취임 뒤 일본 외교의 분위기가 바뀐 것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외교에 취약하다고 평가를 받는 스가 총리는 취임 전부터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노선을 계승하겠다고 밝혀왔다. 미·일 동맹을 기본 축으로 한다는 점에선 연장선에 있지만 국내외적 요인으로 ‘스가의 외교’가 아베 전 총리 때와는 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를 주도하는 주체의 변화다. ‘총리 관저’보다 외무성, 자민당 외교부회의 권한과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베 정부 7년8개월 동안 일본 외교의 중심은 ‘총리 관저’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엔 미·일 관계가 ‘톱 외교’만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요미우리신문>이 지난달 스가 정부 외교정책을 평가하면서 “(아베 정부에선) 미·일 관계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영유권 분쟁이 있는 쿠릴열도 남단 섬들 문제, 북한 문제도 이마이 다카야 총리비서관 등이 물밑에서 진행했다”고 전했다. 외무성 간부들은 “우리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불만이 나왔다고 한다.

아베 전 총리와 스가 총리의 차이는 숫자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 신문은 아베 전 총리의 경우 사퇴 직전 반년 동안 외교‧안보 담당 간부와 약 670회 만났지만 스가 총리는 최근 6개월 동안 190여 차례에 그쳤다고 한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아베 전 총리는 한 달에 두 번 열었지만, 스가 총리는 취임 두 달이 지나서야 처음 개최했다.

외교가 취약한 스가 총리가 취임하고, 현장 외교에 권한을 상당 부분 위임하는 ‘바텀 업’(Bottom Up) 방식을 추구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특성이 반영되면서 외무성의 입김이 커지고 있다. 외무성이 스가 총리의 인정을 받기 위해 이번 미·일 정상회담에 굉장히 공을 들였다고 전해진다. “무조건 1번이다” 외무성은 주미 일본대사관에 바이든 대통령이 만나는 첫 외국 정상은 스가 총리가 돼야 한다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일본은 왜 그렇게 1번을 고집하느냐”고 놀랄 정도였다는 뒷얘기도 있다. 미국이 일본을 첫 정상회담 상대국으로 선택한 배경에는 국제정세가 중요한 영향을 줬겠지만 외무성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또 다른 곳은 자민당의 외교부회다. 자민당 안에서 “스가 총리는 외교‧안보에 취약하다. 우리가 주도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알려졌다. 특히 스가 총리는 자민당 내 파벌에 속해 있지 않아 당내 기반도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자민당 외교부회는 중국에 대해 강경하다. 일본 정부가 중국의 인권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교부회는 지난달 25일에도 일본에 있는 위구르협회 회장을 초대해 중국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를 논의했다. 사토 마사히사 외교부회장은 “주요 7개국(G7)에서 위구르 인권 문제로 (대중국) 제재를 가하지 않은 나라는 일본뿐”이라며 “오는 6월 열리는 주요7개국 정상회의 전까지 의견을 정리해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일본은 대만 문제와 함께 신장위구르 인권 탄압에 대한 제재는 “일본의 현행 법률에 인권 문제만을 직접 또는 명시적인 이유로 제재를 가할 규정이 없다”는 명분으로 주저하고 있다.

당 외교부회의는 중국의 해경법 시행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지지통신>은 외무성이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국제법 위반’이라고 판단하는 것을 피하고 있었는데, 당 외교부회의 비판이 계속되자 “(국제법에) 적합하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에 따른 긴급사태 선언으로 지난 1월 중국·한국 등 비즈니스 목적의 일본 입국이 금지된 것도 스가 총리는 반대했지만 외교부회 등을 중심으로 강하게 주장해 관철됐다. <요미우리신문>은 “아베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광경”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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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8년 10월26일 베이징에서 정상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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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정부의 ‘동맹과 함께 중국 견제’라는 외교 기조가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지만 일본 내부의 이런 움직임이 맞물리면서 대중국 외교가 점점 강경 모드로 흐르고 있는 것도 아베 정부 후반기 때와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8년 7년 만에 중국을 방문한 데 이어 2019년 6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막을 앞두고 일본 오사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중일 관계의 신시대를 열자”는 인식을 공유했다. 아베 총리는 시진핑 주석의 국빈 방일을 요청했고, 지난해 봄 예정돼 있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취소됐다. 당시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되자 중국이 일본에 접근해 왔고, 아베 전 총리도 경제 부분의 중요성을 생각해 협조 분위기가 형성됐다.

스가 정부에서 대중국 관계가 계속 악화되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다케우치 유키오 전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지난 18일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스가 총리가 각오가 있었는지는 불명확하지만 미일 정상회담에서 중국에 대한 의사 표명은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할 수 있다”며 “앞으로 중국의 ‘보복 조치’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이니치신문>은 18일치 사설에서 “인권이나 법의 지배, 무역의 룰을 지켜야 한다고 호소하는 것은 중요하다”며 “이는 중국과 공존하기 위한 것이지 배제를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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