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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4월19일 샴푸 대신 '도브' 비누로 머리 감은 이유 [오래 전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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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6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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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4월19일 샴푸 대신 ‘도브’ 비누로 머리 감은 이유

30년 전 오늘 경향신문에는 ‘샴푸 파동에 미제(美製) 비누 불티’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샴푸·린스 안 쓰기 운동이 확산되면서 수입 비누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내용인데요. 이 운동은 왜 벌어진 것일까요?

일주일 전으로 돌아가봅니다. 그 달 12일 환경처(지금의 환경부)는 샴푸·린스에 전인산염과 납·비소 등 중금속 성분이 다량으로 검출됐다고 발표했습니다. 환경처가 국립환경연구원에 의뢰해 국내 시장 점유율이 높은 샴푸·린스 3종을 성분 분석한 결과, 전인산염이 샴푸류에서 600~1700ppm, 린스류에서 100~200ppm 검출됐습니다.

전인산염은 ‘부영양화’ 현상을 일으킵니다. 부영양화는 강·하천·바다 등에 유기물과 영양소의 유입으로 영양분이 많아지는 현상을 의미하는데요. 물 속 영양분이 많아지면 식물플랑크톤과 같은 부유생물이 과다 증식하게 됩니다. 부유생물은 물 속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차단하고 산소도 고갈해 물을 썩게 하고 물고기도 죽게 만들죠.

당시 업계는 샴푸·린스는 거품만 많을 뿐 수질오염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는데요. 연구 결과로 이 주장이 거짓임이 드러났습니다.

납과 비소 성분도 검출됐습니다. 성분 분석 결과 납 성분은 샴푸에서 10.31~18.16ppm, 린스에서 7.67~16.68ppm이 나왔습니다. 비소 성분은 샴푸에서 0.14~0.39ppm, 린스에서 0.35~1.56ppm 검출됐습니다. 당시 보건사회부가 정한 납과 비소의 화장품 안전기준인 20ppm과 10ppm에는 미치지 않아 인체에는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수질의 중금속 오염을 가중시킬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샴푸에서 거품을 내는 계면활성제 성분이 물 속에서 하루 만에 분해된다는 업계 주장과 달리 일주일이 지나도 완전 분해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경향신문

1991년 4월19일자 경향신문


환경처의 발표 이후 각계각층에서 환경보전운동을 펼쳤습니다. 대중 목욕탕에선 샴푸와 린스가 추방됐습니다. 목욕업중앙회와 온천협의회가 5월부터 모든 목욕탕에 샴푸와 린스를 비치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전국백화점협회는 주 1회를 ‘포장 없는 날’로 정해 쓰레기를 줄여나가기로 했습니다. 골프장사업협회는 상수원의 오염을 막기 위해 독성 농약을 쓰지 않기로 했고, 요식업협회는 일회용 제품 사용을 줄여나가기로 했습니다.

샴푸·린스 안 쓰기 운동도 이에 발맞춰 벌어졌습니다. 소비자들은 샴푸·린스 대신 비누로 머리를 감았습니다. 기사가 “외제 수입 비누는 생산국은 물론 제3국에서도 순수 세면용 비누로 팔리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두발 청결용’으로 둔갑돼 팔리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한 업계 관계자는 경향신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세면력이 강한 ‘아이보리’ 비누의 경우 여드름이 많이 나는 체질의 사람이 사용하고, ‘도브’ 비누는 건성 피부를 지닌 사람들이 쓰고 있다. 한국에서 이들 제품이 샴푸·린스 대용품으로 호평 받고 있는 걸 이해할 수 없다.”

서울 강남 지역에선 국내 비누보다 2~5배 비쌌던 수입 비누의 판매가 두드러지게 늘었다고 합니다. 수입 비누는 원래 백화점이나 쇼핑센터, 종합 화장품 코너 등에서 살 수 있었는데 파동 이후 방문·통신 판매도 급증했다고 하네요.

샴푸·린스 안 쓰기 운동 등이 벌어진 뒤 샴푸 시장이 위축됐다는 통계가 이듬해 나왔습니다. 1992년 2월2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럭키, 태평양화학, 애경산업 등 샴푸업체의 1991년 전체 매출이 1020억원에 그쳤던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전년도(1990년) 대비 7.3% 감소한 수치였습니다. 당시 업계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중금속 검출 시비 이후 3개월 동안 매출이 30%까지 떨어지는 부진을 보여 전체 시장이 위축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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