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얀마 총선 후 설문조사 프로그램을 운영한 EAI의 미얀마 시민사회 역량강화팀과 국내 미얀마 및 동남아 전문가가 한 데 모여 미얀마 민주화의 미래에 관한 토론을 펼쳤다. 컨퍼런스에는 배진석 경상대 교수와 박은홍 성공회대 교수,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헌준 고려대 교수, 이현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이 발표자로 참여했다.
토론은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본부 전문위원을 비롯해 장준영 한국외대 교수, 웨 노에 흐닌 쏘 행동하는미얀마청년연대 리더, 배현진 외교부 동남아2과장이 맡았으며, 사회는 손열 EAI 원장과 이숙종 EAI 시니어 펠로우(성균관대 교수)가 맡았다.
미얀마 쿠데타 발발 후 시민 불복종이 확산되고 이에 항의하는 시위 관련 보도가 많은 가운데, 군부는 쿠데타의 명분으로 '선거 부정'을 내세웠다. 이번 컨퍼러스에서는 미얀마 시민들의 여론을 살펴보기 위해 EAI와 미얀마 현지 파트너 기관들과의 여론조사에 주목했다. EAI는 쿠데타 발발 전 2020년 총선 직후 만달레이 지역(Mandalay Region)과 카친 주(Kachin State)에서 실시한 선거 여론조사에서 '2020년 미얀마 총선이 공정했는지' 그리고 '수지 집권 시, 미얀마가 민주주의 방향으로 진전하고 있었는지'를 물었다. 선거 조사로 확인한 미얀마 여론은 군부의 부정선거 주장과 대립하고 있었다. 절대 다수의 미얀마 시민들이 2020년 총선의 정통성을 인정했고 미얀마 민주화가 진전해 왔다고 인식했다.
EAI의 이번 컨퍼런스에 따르면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미얀마 민주화에 상당히 많은 기여를 해왔다. 하지만 NLD가 고수해 왔던 민주화 세력과 군부 세력 간의 '불안정한 동거'에도 분명히 한계가 있다. 군부 쿠데타가 현실화된 현재 상황에서 '협약에 의한 민주화(pacted transition)'로 불리는 미얀마식 점진적·부분적 민주화 모델은 지속가능성을 점검받아야 한다고 EAI 컨퍼런스에서 주장됐다. EAI와 현지 파트너기관의 여론조사가 쿠데타 징후가 없던 시점에 실시한 조사란 점에서 특별히 '미얀마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은 시사하는 바가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NLD 지지가 강한 만달레이 지역에서 대다수(85%)가 미얀마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에 소수인종, 비불교도 비중이 큰 카친 주 조사에서는 미얀마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이 44.3%에 불과했고, '모르겠다'라며 답변을 유보한 비율이 41.9%에 달했다. 새 정부(NLD 정부 2기)의 전망에 관해 물어보는 질문에서 NLD 정부 1기가 소수인종이나 반대파에 대해 민주적인 대화와 설득, 조정 작업에 소극적이었다는 여론의 비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제약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2008년 헌법을 NLD 정부가 성공적으로 개정할 거라고 보는 여론이 39.3%에 불과했다. 군부의 정치개입이 줄어들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상대적으로 소수에 그쳤다.
민주화 이행 과정에서 많은 미얀마 민주화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시대정신으로 내면화하고 신념화하길 주장했지만, 미얀마 군부 땃마도는 '군부에 의한 규율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No discipline, no democracy)'면서 NLD 문민정부 세력과의 충돌을 피하지 않았다. 결국 미얀마 군부는 지난 2월 1일 쿠데타로 NLD와 군부 간의 이중권력체제에 마침표를 찍으면서 헌법 보장 하에 땃마도 군부가 부분적 퇴각을 결정(2011)했던 '협약에 의한 민주화'에 종언을 고했다. 당시 협약의 핵심은 NLD가 군부의 지속적 정치개입을 보장한 2008년 헌법을 수용하는 대신, 군부가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진 선거 결과를 수용하는 것이었다.
2008년 헌법은 군정기(1988~2011)에 만들어진 것으로, 선거 참패로 군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를 예방하기 위한 차원에서 등장했다. 이번 쿠데타에서 민아웅훌라잉(Min Aung Hlaing) 군부세력은 '합법 쿠데타' 조항(11장 417조)을 근거로 쿠데타가 합법적 조치임을 주장했다. 이에 2020년 총선에서 당선된 의원 298명은 긴급히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를 구성하고 소수민족을 포함하는 연방제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2008년 헌법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 CRPH는 쿠데타 군부세력을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규정하면서 국제사회가 군부 세력을 인정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미얀마 이웃 국가들이 쿠데타에 내정불간섭과 주권존중이라는 '아세안 방식(ASEAN Way)' 뒤에 숨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한편, 자타 공히 민주화의 모범사례로 거론되고 있는 한국은 다양한 방식으로 미얀마 쿠데타에 반응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네 차례에 걸쳐 성명을 발표하는 등 정부 차원의 실질적 대응(△국방 및 치안 분야 신규 교류 및 협력 중단, △군용물자 수출 불허 및 산업용 전략물자 수출 엄격 심사, △개발 협력 사업 재검토(인도 사업 제외), △체류 중인 미얀마인에 대한 인도적 특별 체류 조치 계획) 모색에 나섰다. 한국 시민사회단체들 또한 광주시와 인플루엔서, 종교기관, 대학, 인권단체 등과 연대하며 조직적으로 연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만, 미얀마 쿠데타 상황이 별 진전 없이 장기화 될 경우, 한국의 신남방정책에 적신호가 켜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한편에서는 민주화 경험을 떠올리며 쿠데타 상황에 (적극) 반응하는 한국이 군부와 연결된 자국 기업의 사업을 중단하면 어떨까 하는 바람을 품은 의견도 나왔다. 이에 대해 '한국기업과의 사업 중단이 미얀마의 중국 의존도를 더 높이는 건 아닐까'하고 사업 중단이 단순한 민주화 연대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컨퍼런스에서는 미얀마 쿠데타가 장기화 될 경우, 한국의 인권과 민주주의 외교는 새로운 도전과제를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높아졌다. 시리아 내전이 그러했듯이, 미얀마 쿠데타 또한 기존 내전의 연장선이 될 가능성이 큰데, 그렇게 될 경우, 국제적 지원 세력은 약화되는 반면, 민주화 문제 자체보다 난민 지원에 국제사회가 더 집중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번 미얀마 사태를 통해 한국 인권과 민주주의 외교는 다음과 같은 성찰의 시간을 갖는 한편, 지원 가능성을 다각도로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구체적으로 컨퍼런스에 따르면 로힝야족의 인권 침해에 침묵하며 경제적 이해 중심의 외교를 펼쳤던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단기적 경제적 이익을 넘어서는 외교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북한과 홍콩, 신장-위구르 자치구 등 인권 침해에 대한 공통된 기준을 설정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환경 속에서 나고 자란 미얀마 Z세대가 불복종시위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Z세대와의 연대를 조직화하는 방법과 한국 그리고 미얀마 현지 시민사회와 언론, 학계, 종교계 간의 교류 증진 등 다양한 방법이 소개됐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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