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채석장 전망대에서 바라본 창신동 일대 전경. [사진 = 김정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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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이라면 이 동네에 살고 싶으세요?"
조금만 올라도 숨이 차오르는 가파른 계단엔 조각조각 금이 가 있다. 사람 한 명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구불구불한 골목들. 창신동 토박이조차 헷갈리는 길이었다. 벽화들은 흐릿하게 흔적들만 남아있다.
15일 찾은 종로구 창신동의 풍경이다.
창신동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11년 뉴타운 해제와 동시에 추진한 도시재생사업 1호 지역이다. 당시 서울시는 창신동을 뉴타운 지구에서 해제했다.
전면적으로 도시를 갈아엎는 재개발 대신 기존 도시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고 원주민과 상생할 수 있도록 하는 도시재생사업은 박 전 시장의 역점 사업으로 꼽힌다. 10년이 지난 지금 도시재생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박원순표 도시재생'을 갈아엎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창신동에는 재개발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이 어지럽게 공존하고 있었다.
창신동 골목 벽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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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도시재생 10년 동안 좋아진 것은 환경미화"
창신 재개발추진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강대선 창신공공재개발 추진위원장은 "박원순 전 시장 10년 동안 동네가 좋아진 거라고는 환경 미화 수준"이라며 "노화된 건물에 냄새나는 거리, 젊은 사람들은 애초에 다 떠나고 있어 이 동네는 점점 '슬럼화' 되고 있다"고 말했다. 창신동 벽화와 채석 전망대를 보고 싶다는 요청에 선뜻 안내자를 자처한 강 위원장은 중간중간 멈춰 양 갈래로 펼쳐진 좁은 길 사이에서 여러번 헤매기도 했다.
굽이굽이 좁은 골목길 사이 있는 집들은 사람이 살고 있는지 빈집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골목엔 인기척이 드물었고 간혹 길고양이와 널브러진 쓰레기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채석장 전망대. 날씨가 좋아 풍경이 예쁘다는 기자의 말에 강 위원장은 "여기 안 사니까 그렇지, 실제 여기 사는 사람들은 잘 오지도 않는다. 45년 토박이 나조차도 여기 딱 2번 와봤다. 그것도 기자들과 온 게 전부"라고 한숨 지었다. 재개발위원회 사무실에는 주민들이 자주 방문하곤 했는데 주민들은 줄곧 "날씨가 궂으면 냄새나고, 골목길엔 가로등조차 없는 이 동네에 살고 싶겠느냐"고 물었다.
강대선 창신공공재개발 추진위원장이 15일 창신동 골목길을 안내하고 있다. 토박이인 그 역시 가끔 길을 헤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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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후 지역으로 부동산 시장에서도 찬밥신세
오 시장이 취임 후 본격적인 집무를 시작하면서 '박원순식 도시재생' 사업이 또 다른 변곡점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 시장은 후보시절 "박원순식 벽화마을 그리기 도시재생 사업부터 손보겠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강 위원장 역시 "오 시장이 후보 시절 창신동 일대에 와서 연설하는 것을 빠지지 않고 다 들었다"며 "오 시장이 당선됐으니 재개발 추진에 대한 기대감 역시 크다"라고 말했다. 박 전 시장 시절 서울시는 창신동에 1000억원이 넘는 세금을 투입해 백남준기념관, 봉제역사관, 채석장전망대, 벽화 그리기 등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했다.
주민들 사이에선 도시재생 사업에 대한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생활이 나아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작년 한 해 뜨거웠던 부동산 급등 분위기에서도 소외됐다는 상대적 박탈감도 한몫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8억8000만원이었는데, 종로구 창신동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약 5억8000만원 수준에 머물렀다. 60대 주민 B씨는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랑 거의 똑같다. 벽화 그리기 좀 해놓고, 무슨 기념관이다 뭐다 해놨다는데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많이 이용하는 시설도 아니다"라며 "아들이 하나 있는데 다른 동네 전세 살지 말고 여기서 자기 집 사서 거주하라니까 싫다고 하더라"라고 했다.
창신동 주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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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살 집도 지어놨는데…젊은 사람들, 다 떠나"
창신동에서 40년 경력의 봉제인 오모씨(65)는 "봉제역사관이 생긴다고 해서 봉제인들한테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들 별로 관심이 없다. 지금은 봉제 거리도 상권이 다 죽어서 다들 떠나고 있는 처지"라며 "날씨가 궂으면 냄새나는 이 동네에 누가 살려고 하겠느냐. 당장 제 자녀들만 해도 창신동을 다 떠났다"고 토로했다. 주민 C씨는 "창신동이 제 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아들도 여기서 키웠는데, 아들이 결혼하면 같이 살기 위해 2층 짜리 주택을 지어놨다"며 "손녀도 함께 봐주면서 살고 있었는데 손녀가 초등학교가 들어갈 나이가 되니까 아들 내외가 창신동을 떠나겠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쩌겠나"라고 밝혔다.
강 위원장은 "4년 전인 2016년과 비교했을 때 종로구 전체 인구가 3704명 줄었는데, 그 중 67%(2485명)이 창신동에서 유출된 인구"라고 설명했다.
창신동 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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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반대 목소리도…"다 늙어 다른 동네 가기엔 부담"
모두가 재개발에만 목을 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 사이에선 재개발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새로운 곳에서 삶의 터전을 잡기가 녹록치 않은 고령층 들의 반대가 크다. 또 재개발 과정에서 들어갈 비용도 문제다.
창신동에서 만난 주민 김모씨(75)는 "재개발에 반대한다"며 "재개발이 돼서 이 곳에 계속 살려면 돈도 있어야 할 텐데 나랑은 관계없는 얘기가 아니냐. 다 늙어서 또 어딘가로 이사가는 것도 부담스럽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마 나같은 사람들은 재개발 다 반대할 거다"라고 설명했다.
손경주 창신·숭인 도시재생 협동조합 상임이사 역시 "사실 지금 재개발을 추진하는 쪽은 동네 환경을 생각하기보다는 시세차익을 노리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며 "지금 여기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재개발하면 다들 어디로 가겠나"라고 반문했다.
손 이사는 "재개발을 추진하자는 쪽에서는 1000억 이상 들여 뭘 했느냐 비판하지만, 계단이나 엉망이 된 공원 등을 관리·보수하는 비용으로 들어간 것"이라며 "재개발이 아닌 도시재생을 계속해서 추진하면 아무도 쫓겨나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매경닷컴 기자 1derland@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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