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박형준 정치인생 부활
오, 무상급식 사퇴 ‘10년 악몽’ 끝내
“야권 위해 최선 다한 안철수에 감사”
박, 부산서 17년 만에 선출직 당선
“민심 따라 국정 대전환 계기 되길”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7일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각각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에게 승리했다. 오 후보가 8일 새벽 당사에서 당선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꽃다발을 들고 있다. 오종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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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에서 보수 몰락의 신호탄은 2011년 8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강행한 주민투표가 무산되자 오 시장은 자진사퇴했고, 뒤이은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체제가 들어서면서 이후 10년간 서울시는 진보 권력의 아성으로 자리매김했다.
바로 그 ‘오세훈 시장’이 사퇴 10년 만인 8일 서울시청으로 다시 출근한다. 공교롭게 이번에도 보궐선거가 서울시 권력을 바꿨다. 오세훈 후보가 극적으로 부활하기까진 긴 암흑기가 있었다. 보수 진영은 그를 “성급하게 시장직을 던져 당을 위기에 빠뜨렸다”고 비난했고, 진보 진영은 “애들 밥그릇을 빼앗으려 한 시장”으로 매도했다. 그의 한 측근은 “지난 10년은 오 후보에게 하루하루가 고통과 좌절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오 후보도 왕년에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정계 입문 전 알아주는 환경 전문 변호사였다. 1993년 인천 경남아파트의 일조권 소송대리인을 맡아 당시 경남기업을 상대로 13억원의 배상금을 받아내 이목을 끌었다. 이런 인지도를 바탕으로 MBC ‘생방송 오 변호사 배 변호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 진행을 맡는 등 방송 경력을 쌓았다.
그를 정치권으로 이끈 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였다. 오 후보는 2000년 총선에서 서울 강남을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그는 2004년 3월 국회 정개특위 간사로서 ‘오세훈법’이라 불린 정치개혁 3법 개정안 통과를 주도하며 정계에 족적을 남겼다.
2006년 4월 당시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왼쪽)이 오세훈 전 의원(오른쪽) 사무실을 방문해 서울시장 출마를 권유하고 있다. [연합뉴스] |
그는 2004년 총선에 불출마했지만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 혜성처럼 등장해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 강금실 후보를 꺾고 45세의 나이로 시장에 당선됐다. 2010년에는 민주당 한명숙 후보를 극적으로 누르고 재선 시장이란 날개를 달았다.
하지만 2011년 터진 무상급식 이슈가 그를 나락으로 몰아넣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시장직 사퇴를 결행한 후유증은 엄청났다. 그는 이후 수차례 재기를 노렸지만 번번이 쓴잔을 마셨다. 2016년 4월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에 출마했지만 정세균 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했고, 2019년 2월에는 자유한국당 대표 선거에 도전했지만 황교안 전 총리에게 밀렸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선 서울 광진을에서 고민정 민주당 후보와 맞붙었지만 2.4%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오세훈의 정치 유통기한이 끝난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도 나왔다.
오 후보는 이번 보선에서도 처음엔 삐걱거렸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겨냥해 ‘안철수 입당 시 불출마’ 카드를 꺼냈다가 철회했다. 하지만 이후엔 순풍에 돛을 단 듯 저력을 발휘했다. 당내 경선에서 나경원 전 의원을, 야권 단일화에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꺾더니 본 선거에서 박영선 민주당 후보를 압도적 격차로 눌렀다.
오 후보는 당선 소감에서 “박원순 전 시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오늘부터 업무에 편안히 복귀하도록 잘 챙기겠다. 저와 치열히 경쟁했지만 야권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주신 안철수 후보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가 7일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각각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후보에게 승리했다. 박 후보가 7일 당선이 유력해지자 브이를 그리고 있다. 송봉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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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장에 당선된 박형준 후보는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부산 수영구에 출마해 당선한 뒤 17년 만에 선출직 공직자가 됐다.
대표적인 친이계로 분류되는 그는 원래 진보 성향의 이론가였다. 80년대 후반 사회·정치 분야 논객으로 이름을 알렸고, 91년 동아대 교수로 임용돼 강단에 섰다.
정계와 인연이 닿은 건 90년대 초 이재오·김문수·장기표 등과 함께 진보정당을 표방한 민중당 창당에 참여하면서였다. 이후 김영삼 대통령의 정책자문기획의원으로 보수 진영에 합류했다.
2004년 17대 국회에 입성한 그는 이후 두 차례 총선에선 고배를 마셨다. 2008년 무소속으로 나선 친박계 유재중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고, 2012년에는 새누리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엔 청와대 홍보기획관, 정무수석, 대통령 사회특보 등을 거치며 MB계 핵심으로 활동했다. 2014년부터 2년간 국회 사무총장을 지내며 숨을 고른 그는 2017년부터 JTBC ‘썰전’ 등 정치·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중 인지도를 쌓았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선 혁신통합추진위원장을 맡아 보수 통합에 나섰지만 미래통합당의 총선 참패로 빛이 바랬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김영춘 민주당 후보에게 압승을 거두고 부산시장에 당선되면서 정치인생 2막을 맞게 됐다. 박 후보는 “이번 선거로 표출된 민심에 따라 국정을 대전환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일고, 고려대 동문인 두 후보의 인연도 각별하다. 오 후보가 박 후보의 1년 후배로, 박 후보는 78년 고려대 사회학과에 입학했고 오 후보는 79년 한국외대 법정대학에 입학했다가 이듬해 고려대 법대에 편입했다.
박 후보는 2006년 오 후보가 서울시장에 출마하도록 이끈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또 2011년 오 후보가 서울시장직을 사퇴할 때도 오세훈을 박근혜의 대항마로 키우려는 박 후보의 시나리오란 설이 여의도에 그럴듯하게 나돌았다.
손국희·김효성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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