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관 보호" 명목 中, 국경지대 추가 병력 배치
일상이 된 군부 수류탄 사용, 사망자 543명까지
1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한 시민이 유엔의 즉각적 개입을 요구하는 'R2P' 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만달레이=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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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이 미얀마 쿠데타를 규탄하는 성명을 또 내놨다. 벌써 네 번째지만 쿠데타 군부에 아무런 타격이 없는 ‘맹탕 성명’이다. “피바다(bloodbath)가 임박했다”는 국제사회의 간절한 호소에도 중국, 러시아 등 군부 우방 국가들의 반대를 여전히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유엔의 어정쩡한 모습에 군부는 폭주의 속도만 더 높이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일(현지시간) 미얀마 사태에 대해 “안보리 회원국들은 급속한 상황 악화에 깊은 우려를 표현하고 평화적 시위대를 겨냥한 폭력과 여성,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 수백명의 죽음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앞선 세 차례 성명과 마찬가지로 ‘쿠데타’라는 단어를 쓰지 못한 것은 물론 초안에 있던 제재 가능성에 대한 언급조차 빠졌다. 미얀마 시민들이 강력히 요구하는 유엔 보호책임원칙(R2P)과 관련한 내용 역시 없다. R2P는 특정 국가가 집단학살 등 4대 범죄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는 데 실패할 경우 국제사회가 강제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원칙이다.
장준 유엔주재 중국 대사. 로이터 연합뉴스 |
유명무실한 성명은 중국과 러시아의 강력한 반대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중국은 개회 직후부터 “유엔의 강압적 조치는 대립을 악화시킬 뿐”이라며 초안 추가 검토를 요청하는 등 시간을 끌었다. 중국은 “오해의 소지가 큰 ‘살해(killing)’라는 표현을 ‘죽음(death)'으로 바꿔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고, 결국 관철시켰다. 러시아도 “시위 진압 도중 숨진 군경 피해도 함께 규탄해야 한다”고 역공을 가하는 등 노골적으로 군부를 비호했다.
중국은 공동성명 발표에 맞춰 미얀마 접경지역인 윈난성 지에가오에 군병력을 집결하기도 했다. “미얀마에서 시작해 본토로 향하는 송유관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시위대가 중국 송유관 시설에 피해를 준 사례는 없으며, 군부와 교전을 시작한 소수민족 반군들도 “민간 거주지와 중국 송유관은 피해 공격하라”는 지침을 유지 중이다. 동남아 외교가 관계자는 “송유관은 핑계일 뿐, 중국과 국경을 접한 미얀마 북부에서 활동 중인 아라칸반군(AA) 등이 움직이자 향후 신속한 대응을 위해 전략적으로 부대를 결집시킨 것”이라며 “내전이 발발하면 중국군의 존재는 반군과 군부 모두에 큰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1일 미얀마 양곤 외곽 지역에서 군경 병력이 시민을 구타하고 있다. 양곤=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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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는 유엔의 공회전을 예견한 듯 한층 더 잔혹한 진압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말 양곤에서 처음 등장한 수류탄 공격은 이제 만달레이 지역 등에서도 빈번히 목격되고 있다. 반군의 근거지 중 하나인 사가잉주(州)에선 노인들이 사는 민가를 향한 무차별 사격도 이어졌다.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에 따르면 전날까지 반(反)군부 시위과정에서 사망한 시민은 543명에 달한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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