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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개입하고 있다"...미얀마 사태로 시험대 오른 아세안의 '내정 불간섭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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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얀마 군부 쿠데타 사태가 내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헌장의 핵심 조항인 ‘내정 불간섭 원칙’이 시험대에 올랐다. 미얀마가 가입한 유일한 역내 지역 공동체인 아세안은 쿠데타 발생 이후 줄곧 이 원칙을 내세우며 침묵을 지켜왔다. 하지만 미얀마 시민들의 인명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이제는 내정 불간섭 원칙이라는 스스로 만든 족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아세안 내부에서조차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군부 쿠데타를 지지하는 사실상의 개입 효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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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네 슈라너 부르게너 유엔 미얀마 특별대사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안전보장이사회 비공개 회의에서 “군부의 잔혹행위가 심각해지고 소수민족 무장단체 다수가 군부에 반대한다는 뜻을 명확히 밝히면서 전례없는 규모로 내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엑소더스(대탈출)로 대규모 난민이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내전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앞으로도 쿠데타 규탄 시위를 계속 강경진압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군부는 31일 쿠데타에 맞선 소수민족 무장단체에게 일방적으로 한달간 휴전을 선언하면서도 “안보와 행정을 훼손하는 (쿠데타 반대 시위) 행위는 예외”라고 밝혔다. 이에 맞서 미얀마 민주진영은 1일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을 법적으로 허용한 2008년 군부 헌법 폐기를 선언하고 소수민족 권익 보장 등을 담은 과도헌법을 선포했다. 소수민족 무장조직과의 연대를 공식화한 것이다.

아세안 내부에서도 ‘회원국끼리 서로의 내정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불간섭 원칙이 오히려 역내 평화와 안정을 해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필리핀 외교장관인 테오도로 록신 주니어는 지난달 1일 트위터를 통해 “아세안의 내정 불간섭 원칙이 잘못된 일을 저지르는 것에 대한 전면적 승인이나 암묵적 동의를 의미하지 않는다”면서 “각 나라마다 여러 내정 방식이 있을 수는 있지만, 자국민을 존엄하게 대해야 한다는 방식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캄보디아·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필리핀·태국의 야당 정치인과 전·현직 의원들 6명도 최근 공동성명을 내고 “지난 수십년 동안 아세안은 역내 분쟁에 제대로 대응하는데 실패해 왔다”면서 “이번에는 ‘내정 불간섭 원칙’이라는 스스로 만든 족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내정 불간섭 원칙은 아세안이 처음 결성될 때부터 아세안의 핵심 운영 원칙으로 자리잡은 조항이다. 그 배경에는 1960년대 말레이시아 독립을 둘러싸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사이 빚어진 분쟁이 자리하고 있다. 당시 보르네오섬의 사라와크주와 사바주가 말레이시아에 합병되는 데 강하게 반대한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시아와 무력충돌까지 일으켰다. 게다가 동남아시아는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생겨난 소수민족 갈등 문제가 국경을 넘나들며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태였다.

이에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싱가포르·태국은 1967년 아세안을 결성하면서, 더 이상의 분쟁을 막기 위해 아세안 헌장에 ‘내정 불간섭’ 원칙을 핵심 조항으로 집어넣었다. 50여년이 흐르는 동안 아세안 회원국이 5개국에서 10개국으로 늘어나고 지역공동체의 규모도 크게 성장했지만, 이 원칙만큼은 변함없이 고수돼 왔다.

하지만 이는 국제사회로부터 끊임없는 비판을 받아왔다. 세계화로 인해 ‘지역’과 ‘내정’의 범위가 모호해지고 있는데도, 아세안이 높아진 국제적 위상에 걸맞지 않게 역내 분쟁을 ‘나몰라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아세안의 ‘내정 불간섭’ 원칙이 도마에 오를 때마다 그 중심에는 늘 미얀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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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캠프에 수용돼 있는 로힝야 어린이. 2017년 미얀마의 로힝야 탄압으로 수천명이 사망하고 8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유엔난민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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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는 1997년 아세안에 가입할 때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 민주화 운동을 억압하고 아웅산 수치를 가택연금한 미얀마 군부 정권이 아세안 헌장의 인권 수호 조항에 정면으로 위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얀마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아세안은 결국 미얀마의 가입을 받아들였다. 이후 아세안은 2017년 미얀마 로힝야 사태 때도 내정 불간섭 원칙을 고수했다. 미얀마 군부가 무슬림인 로힝야족 수천명을 집단살해하면서 8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지만, 같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규탄 성명을 낸 것 외에 아세안 차원의 공동 대응은 없었다.

말레이시아타임스는 “미얀마 사태는 아세안이 더 이상 내정 불간섭 원칙에 얽매여선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이번 사태가 아세안에게 마지막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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