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부상자 치료하다 희생된 간호사
"용서하라"는 그들의 절절한 마지막 순간
현지 매체가 소개한 미얀마 시민 영웅들. 이들은 모두 자신보다 남을 먼저 돕다가 희생됐다. 이라와디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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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규환 암흑 속에서도 이타심은 빛났다. "친구 대신 나를 쏘라"고 외친 청년, 총탄이 난무하는 거리에서 부상자를 치료하다 숨진 의료진, 시위대들을 숨겨줬다가 총살당한 세 아이 엄마 등 나보다 남을 먼저 챙긴 미얀마 시민들이 영웅 반열에 올랐다. 31일 현지 매체 이라와디가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조명했다.
친구 대신 나를 쏘라고 외친 19세 청년. 이라와디 캡처 |
19세 청년 흐프리는 늘 가장 위험한 시위 선봉에 섰다. 매일 바리케이드 앞을 벗어나지 않았다. 27일 그는 군경을 향해 외쳤다. "내 친구를 쏘지 마라, 나를 쏴라". 총탄에 맞은 그는 죽기 직전 친구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고 당부했다.
시위대를 숨겨줬다가 총살당한 세 아이의 엄마. 오른쪽은 그의 주검. 이라와디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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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를 홀로 키우는 여성 다우 피온 피온(50)은 13일 만달레이 자신의 집으로 도망쳐 온 학생 시위대 24명을 숨겨줬다. 집으로 들이닥친 군경이 다그쳤지만 그는 강하게 항의했다. 군인 한 명이 조금 물러난 뒤 그의 머리에 총을 쏘았다. 무차별 발포가 시작되자 숨어 있던 학생들이 은신처에서 나와 체포됐다.
대규모 학살 다음날인 28일 거리에서 부상자를 치료하다 숨진 간호사. 오른쪽은 그의 주검. 이라와디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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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틴자 헤인(20)은 28일 사가잉주(州)에서 부상당한 시민을 치료하던 중 총격을 당했다. 100명 넘게 숨진 전날 대규모 학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로 나섰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나는 길을 걷고 있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불확실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적었다.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만들다 숨진 외과의사. 그의 시신을 군인들이 트럭에 싣고 있다. 이라와디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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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티하 틴 툰(27)은 27일 만달레이에서 머리와 팔에 총탄을 맞고 숨졌다. 전진하는 군경을 저지하고 시위대를 보호하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만들던 중이었다. 그는 가족에게 편지를 남겼다. "메스를 잡던 제 손은 피로 물들었습니다. 엄마, 제가 죽으면 저를 자랑스러워하되 너무 오래 슬퍼하지 마세요. 제 죽음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 마세요. 제 죽음은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너무 빨리 떠나야 해서 미안해요."
임신한 아내를 남겨두고 떠난 25세 가장. 이라와디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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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거리에서 부상자를 구조하거나 자원봉사자를 자처하며 남을 돕다가 숨진 청년들이 많다. 부상당한 여성을 돕다가 총탄에 맞은 20세 배달원, 엄마를 남겨둔 아들, 아내와 딸을 두고 떠난 가장도 있다. 아내가 임신한 25세 가장은 11일 양곤 시위 현장에서 다른 시위대를 보호하기 위해 임시 방패를 들고 있다가 총격을 당했다. 총탄은 방패를 뚫고 그의 머리에 박혔다. 그는 집을 나서기 전 아내에게 말했다. "용서하세요, 여보. 내가 오늘 나가지 않으면 우리는 민주주의를 되찾지 못할 거예요."
뱃속 아이는 아빠를 잃었지만 아빠가 그토록 소망하던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을까.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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