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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권재희 기자] 30일 일본 정부의 검정을 통과한 고교 역사교과서 중 일본군 위안부 동원 강제성이나 위안소 운영 과정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및 폭력에 대해 모호하게 기술한 책들이 대다수인 것으로 밝혀졌다.
다이이치가쿠슈샤는 역사 교과서 2종이 검정에 통과했는데 한반도 출신 여성을 위안부로 강제 동원한 것에 관해 "많은 여성이 위안부로 전지에 보내졌다", "여성이 위안부로 전지에 보내졌다"고만 기술했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1993년 8월 '고노담화'는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마련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는 점을 명시하고 모집에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한 적도 있었다"고 군과 정부 당국의 책임을 인정했다.
이에 비춰보면 다이이치가쿠슈샤의 교과서는 피해자를 동원한 주체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기술하지 않아 책임소재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이나 피해자가 겪은 인권 침해 및 고통 등에 대한 기술도 모호하게 표현했다.
도쿄서적의 역사총합 교과서는 "전시하에서는 위안소가 각지에 설치돼 많은 여성의 인권이 짓밟혔다", "일본인이나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 일본의 점령하에 있던 많은 사람이 위안부로서 종군하도록 (시킴을) 당했다"고 기술했다.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기술하지 않아 강요에 의한 선택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흐렸다.
또 종군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자발적으로 군을 따라간 것이라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짓쿄출판의 역사 교과서는 2종인데 그중 하나는 위안부 문제를 2차대전 말기에 벌어진 오키나와 전투를 기술하는 부분에서 한정적으로 다뤘다.
이 교과서는 "오키나와전에는 약 1∼2만의 조선인 군부가 동원됐고 130개소의 위안소에서는 적어도 160명의 조선인 '위안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에 등록한 위안부 피해자만 해도 240명인 점을 고려하면 오키나와로 지역을 한정해 '적어도 160명'이라는 숫자를 제시한 것은 전체 피해 규모를 보여주기에는 불충분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짓쿄출판의 일본사A교과서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전쟁 중 일본군의 성 상대를 강요당한 여성들이라고 소개하고 고노 담화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싣는 등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꽤 충실하게 다뤘다.
이에 비하면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짓쿄출판 교과서의 내용은 대폭 후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역사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뤘다가 우익세력들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된 후 출판사 측이 위축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메이세이샤 교과서는 아예 위안부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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