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77경보병사단 장교인 툰 미야트 아웅은 이달 초 페이스북을 통해 수많은 시민들이 사살되는 것을 보았다. 시민들은 그와 같은 군복을 입은 군인들에게 무참히 살해됐다.
국경지대에서 소수민족에 대한 잔혹한 소탕작전을 벌여 악명이 높던 그의 부대도 군부 쿠데타 이후 시위가 발생한 도시로 재배치됐다. 그에게는 시위대를 상대로 사용할 실탄이 지급됐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이달 초 부대를 탈영했다. 10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 늘 술에 취해있던 아버지를 대신해 그의 가족이 되어준 군대를 등진 것이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군대는 내게 가족이었다”며 “만약 국가와 군부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제발 국가를 선택해달라고 동료들에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미얀마 77경보병사단 소속 장교 툰 미야트 아웅은 이달 초 시위대 진압 임무를 맡고 부대에서 탈영했다. 툰 미야트 아웅 페이스북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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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는 28일(현지시간) 미얀마 군대에서 탈영했거나 지금도 일하고 있는 군인 4명을 인터뷰해 보도했다.
군부 쿠데타 이후 희생된 민간인 사망자 수는 400여명을 넘어섰다. 특히 군대의 잔혹성이 도드라졌다. 군인들은 무차별 총격으로 5세 어린이 등 약 30명의 미성년자를 사살하는가 하면, 비무장 시민을 산 채로 불 태우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최대 50만명의 병력을 가진 군부는 종종 사람을 죽이기 위해 키워진 살인병기로 묘사된다”고 지적했다.
전·현직 군인들은 미얀마 군대의 폐쇄성과 철저한 감시가 비인간적인 살육을 가능케했다고 말했다. 대다수 군인과 그들의 가족은 시민들의 거주지와 분리된 군 기지에 살고 있다. 사회와 차단돼 있을 뿐 아니라 군 기지에서의 모든 행동, 소셜미디어 활동 등을 감시 받는다. 쿠데타 이후에는 상부의 허가 없이 15분 이상 거주지를 떠날 수도 없다.
쿠데타 이후 탈영한 한 군인은 “나는 이런 상황을 현대의 노예제라고 부르고 싶다”며 “우리는 선임의 모든 명령을 따라야만 한다. 우리는 이것이 정당한지 부당한지 질문할 수 없다”고 했다.
양곤에서 근무하는 한 군의관은 “군 복무를 그만두고 싶지만 그만둘 수 없다. 내가 도망친다면 그들은 내 가족들을 고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얀마 군국의 날을 맞은 지난 27일 군인들이 수도 네피도 거리에서 행진하고 있다. 네피도|신화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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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거대한 가족과도 같다. 미얀마에서 군인의 자녀들은 또 다른 군인의 자녀들과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게 새로 태어난 아이들은 다음 세대의 군인이 된다. 미얀마 국경지대에 배치돼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전투를 벌이는 군 부대에서는 매년 수백명의 사망자가 나온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젊은 군인은 전사자의 미망인과 결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망인에게는 결혼 상대방을 선택할 권한이 없다. 한 군인은 뉴욕타임스에 “대부분의 군인은 세계와 단절돼 있다”며 “그들에게 군부는 유일한 세계”라고 말했다.
군인들은 훈련병 시절부터 ‘시민들보다 군인들이 우월적 지위에 있다’거나 ‘군대가 없다면 무너질 국가와 종교의 수호자’라는 정신교육을 지속적으로 받는다. 한국의 육군사관학교에 해당하는 국방대학을 졸업한 한 장교는 대학 1학년때 한 정신교육 영상을 봤다. 그 영상에서는 1988년 민주화 운동 시위대가 군인을 살해하는 짐승으로 묘사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군부가 당시 민주화 운동가 3000여명을 사살했다. 그는 “대부분의 군인들은 세뇌됐다”며 “지금 군인들은 다른 나라의 침공으로부터 국가를 지킨다는 마음가짐으로 시민들을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툰 미야트 아웅 역시 “군부에 복종하지 않거나 저항하는 사람을 범죄자로 취급해 왔기에 군인들은 시위대를 범죄자로 본다”며 “대부분의 군인은 그들의 일생에서 민주주의를 경험한 적이 없다. 여전히 그들은 어둠 속에 살고 있다”고 했다.
쿠데타를 전후해서는 군대의 심리전 전문가들이 군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페이스북을 통해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총선이 부정선거였고, 소수민족 무슬림들이 불교전통의 미얀마를 파괴하려 하고 있으며, 탐욕스러운 서구 국가들이 호시탐탐 미얀마를 정복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군인은 “미얀마 군부가 시위대 진압 작전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군인들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키 위해 최근 2주간 인터넷 접속을 차단했다”고 말했다.
한 현역 장교는 “나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 군에 입대했다. 시민들과 싸우기 위해 입대한 것이 아니다”라며 “군인들이 시민들을 사살하는 것을 보는 것이 너무 비침하다”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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