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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518 닮은꼴"? 미얀마 쿠데타에 中, 왜 회심의 미소 짓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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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이후 미얀마 국민들은 군부에 항의하고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하는 게시물들을 SNS에 잇따라 게재해왔다 [사진=파잉 탁콘(좌)·한 레이(우)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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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일 미얀마 쿠데타 발생 이후 두 달 가까이 지났지만, 유혈사태는 악화일로다. 미얀마 인권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쿠데타로 25일 기준 사망자가 320명에 달했고, 구금된 인원도 3000여 명에 달했다.

미얀마의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국민민주연맹(NLD)이 지난 총선에서 대승을 거뒀지만, 군부는 이를 부정하고 그녀를 구금한 뒤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미얀마 군부는 오래전인 1990년 총선에서도 NLD의 승리를 무시하고 정권 이양을 거부한 바 있다. 현재 군부는 1년간 비상사태 지속 이후 재선 결과에 따라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상황을 끌며 계속 강권정치를 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군부 독재에 맞서 지속된 민주화운동 등을 계기로 미얀마에서는 2011년 민정이관을 거쳐 2015년과 지난해 총선 결과에 따라 50여 년 만에 처음 문민정부 시대가 열리는 듯했다. 그러나 군부는 지금 역사의 시계추를 다시 과거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쿠데타 발생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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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아웅산 수치 여사(좌)와 이번 쿠데타를 주도한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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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얀마 상황의 배경에는 수십 년간 이어진 수지의 NLD와 군부 사이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수지가 이끄는 NLD는 군부의 특권을 인정하는 "비민주적 헌법의 개정"을 내걸고 최근 선거에서 압승했다. 해외 전문가들은 이로 인해 높아진 군 내부 위기의식이 쿠데타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한다. 2000년대 초 수지 여사와 군부 사이 대화를 주선한 적 있는 다나카 히토시(田中均) 일본 국제전략연구소 이사장은 "군부가 가장 우려하는 건 헌법 개정으로 인한 권한 상실"이라고 지적했다. 권력을 잃게 될 경우 숙청과 신변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는 것이다.

군부는 총선에 대규모 부정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조사 요구에 NLD가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쿠데타를 단행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얀마 소수민족 정당의 한 간부는 "선거는 쿠데타를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 군은 예전부터 복권 기회를 노려 왔다"고 반박했다.

다나카 이사장은 "군은 여러 기업을 통해 각종 수익사업에도 깊숙이 관여해 왔는데 이런 기득권을 잃는 것에 대한 저항감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수지가 로힝야 문제에 있어 미얀마 군이 과도한 무력을 행사했다고 인정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군은 큰 불만을 품고 있는 상황이다.


미얀마, 中 '일대일로' 핵심 거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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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일로의 일환으로 인도양을 통한 해양 수송로 확보를 위해 미얀마,파키스탄,방글라데시 등에 항만을 건설하는 진주 목걸이 전략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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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2200㎞나 되는 긴 국경을 맞댄 미얀마는 중국에게 여러 이웃들 중 하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시진핑 대외정책의 핵심인 '일대일로(一帶一路)'에 필요한 핵심국이기 때문이다. 벵골만에 인접한 최대 항구 차우퓨(Kyauk Phyu)는 중국이 '말라카해협'을 거치지 않고 중동의 석유를 육로로 운송하게 해주는 거점항이자, 인도양 진출을 가능케 해주는 출구다.

말라카해협은 해적 출몰이 잦고 국제 정세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는 데다, 무엇보다 미국 제해권 아래 있다는 점을 중국은 늘 우려해 왔다. 유사시 미국 제7함대가 해협을 봉쇄하면 에너지 보급로가 끊겨 버리기 때문이다. 중국이 말라카해협을 우회해 미국에 맞설 거점항을 절실히 필요로 했음은 물론이다.

이 같은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인해, 중국은 오래전부터 미얀마에 친중 정부를 세우는 데 각별한 공을 들여 왔다. 예컨데, 군부에 탱크와 전투기 등 수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무역액도 계속 늘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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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와 중국사이에 놓인 석유, 송유관과 `중국~미얀마 경제회랑` 구축계획 [그래픽=조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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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중국은 과거 소규모 어촌에 불과했던 차우퓨에 총 25억달러를 투자해 중국 쿤밍까지 연결되는 송유관과 가스관을 2014년 무렵 건설했다. 이를 통해 연간 2200만t의 원유와 120억㎥의 천연가스 운송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7년에는 송유관과 가스관이 지나는 길에 고속도로와 철도를 건설해 2025년을 목표로 '중국~미얀마 경제회랑'을 구축하기로 했다. '경제회랑'과 관련해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1월 첫 해외 순방지로 미얀마를 찾아 "포괄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심화해 운명공동체를 만들어가자"고 강조한 바 있다.

중국은 NLD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해 왔다. 2016년 4월 수지가 외무장관에 취임한 이후 첫 회담 상대로 맞은 이는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었다. 당시 왕이 부장은 양국관계를 '파욱파우(Paukphaw·동포)'에 빗대며 "중국은 미얀마에 좋은 친구이자 파트너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알리려고 왔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미얀마 정부의 후견국이자 제1우방이라고 할 만한 위치에 섰고, 미얀마 경제는 어느 때보다 중국 경제에 깊이 의존하게 됐다. 다만, 민주화와 수지의 전면 등장 이후 미얀마는 일대일로 사업에 있어 군부 시절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여 왔다.


끊이지 않는 쿠데타 '中 배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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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중국 왕이 외교부장(우)과 미얀마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의 회담 모습[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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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미얀마 군부에 대한 지지를 공식적으로 표명하고 있지는 않다. 쿠데타 이후 대변인을 통해 "갈등을 잘 해결하고 정치,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길 바란다"는 정도의 무미건조한 성명을 내고 있을 뿐이다. 이번 사태를 맞아 타국에 대한 '내정 불간섭'이라는 기존 입장을 강조함으로써 제재에 나선 나라들을 에둘러 비판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런데 쿠데타 2주 전 왕이 부장이 미얀마를 찾아 쿠데타 주역인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을 만난 사실이 알려지며 '중국 배후설'이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했다. 쿠데타와 관련해 군부가 중국과 접촉했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지만 SNS를 중심으로 중국이 미얀마 군부의 뒷배로 시위 진압 지원과 인터넷 검열을 위한 전문인력을 파견했다는 루머가 일었다.

그 결과 시민들 사이 반중감정이 격화됐다. 중국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났고, 지난주 미얀마 제1도시 양곤에서는 시위대가 중국계 공장 수십 곳을 불태우는 사건도 발생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자칫 불똥이 튈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배후설'에 대해 중국 측은 지난 18일 "중국과 미얀마의 관계를 이간질하려는 목적"이라고 반박한 이후 사태 진화에 매진하고 있다.


中, 미얀마 사태 말 아끼지만…속으론 회심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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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시진핑 주석과 아웅산 수지 국가자문역의 회담 모습 [사진=신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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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정치적 특수관계로 발전시켜 온 미얀마가 2015년 이후 민주화라는 서구식 정치를 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심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 국가의 정치체제가 큰 변화를 겪으면 주변국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인데, 미얀마는 인접국인 데다 일대일로 핵심 참여국이기 때문이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와 시진핑 사상 등을 내세우는 현재, 우방이라고 할 만한 나라가 거의 없는 와중에 귀중한 동료를 잃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는 홍콩, 대만, 위구르 문제 등이 서구에 의해 집중 거론되면서 인권, 언론, 종교 탄압에 대한 문제 제기도 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쿠데타가 발생한 것이다. 일본 경제 주간지 '다이아몬드'는 이번 미얀마 사태 이후 중국이 전략적 이익과 지정학적 우위 확보를 위해 대외적으론 "정치적 해결"을 호소하는 한편, 막후에서 영향력 확대에 진력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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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그래픽=조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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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얀마의 대(對)중국 무역·투자액은 전체 교역의 30%를 훌쩍 넘은 상태다. 미얀마 상무부에 따르면, 최근 6개월간 양국 교역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8% 늘어 30억달러에 육박했다. 미얀마 군부로서는 미국 등이 제재를 가해도 무역과 투자에 있어 그리 손해볼 일은 없어 보인다. 미국을 필두로 독일, 일본 등과의 교역이 정치적 이유로 중단되더라도 그 빈자리는 중국 기업들이 속속 메꾸게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규탄에도 중국만 흔들림 없이 지지해주기만 하면 큰 경제적 타격 없이 버틸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도 미얀마에서 영향력을 더 확대할 수 있으니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인 셈이다.


역사, 지정학 조건 등 닮은 양국…현지인 "한국 민주화가 롤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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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쿠데타 뒷배에 중국이 존재한다고 의심하는 시위대 모습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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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얀마는 일견 아무런 유사점도 없어 보이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여러 면에서 닮았다. 우선 역사적으로 양국 모두 쿠데타로 장기 1인 독재를 겪었다. 한국은 이 시기 결과적으로 경제발전이 이뤄진 반면, 한때 태국보다 부유했던 미얀마는 고립정책을 택한 결과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것이 차이다.

한국은 개발독재 시기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중산층이 두텁게 형성됐고, 역설적으로 이들은 1987년 민주화를 이끄는 주역이 됐다. 미얀마는 1988년 8월 8일, 소위 '8888세대'의 민주항쟁 27년 후인 2015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민주정부가 들어섰지만, 불과 5년여 만에 민주주의는 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현지 교민들에 따르면, 많은 미얀마인들이 5·18 등 한국의 민주화 역사를 알고 있고 한국을 롤모델로 생각하고 있다.

녹록지 않은 지정학적 조건에 있다는 점도 유사하다. 한국은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손꼽히는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다. 미얀마도 중국, 인도라는 거대국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패권경쟁중인 미국과 중국의 이권이 충돌하는 요충지이기도 하다. 특히 미얀마와 중국의 관계는 한국에도 시사점이 많다.

중국은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부터 많은 관여를 해왔다. 미국이 내버려 둔 30여 년간, 중국은 200억달러의 자금을 들여 130개 사업에 투자하는 등 미얀마와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고 미얀마 곳곳에서 온갖 이권을 챙겼다. 현재 미얀마 영토는 중국이 지어준 교량, 도로 등으로 가득하며 어느 곳이든 중국인이 없는 곳이 없다.

외교적으로도 미얀마는 과거엔 민주화 문제로, 최근엔 소수민족 문제로 국제사회에서 곤경에 처할 때마다 안보리 거부권이 있는 중국에 의지해 왔다. 미얀마 국민들은 물론 군부 역시 지나친 중국 경사를 경계해 왔다고 하나,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중국 자본, 시장, 상품에의 의존도는 중국의 압력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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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과의 첫 정상 통화에서 미얀마 문제를 비중있게 거론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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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 조 바이든 정부는 '쿼드'(미국·인도·일본·호주)를 중심으로 중국 견제의 고삐를 죌 태세다. 이에 따라 아세안 국가들의 동참도 촉구할 가능성이 높다. 미얀마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전임 도널드 트럼프와 달리 오바마 때처럼 미얀마를 중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미얀마가 직면한 상황은 고조되는 미·중 갈등 속에 안보 동맹국인 미국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최대 경제 파트너인 중국의 눈치를 보게 되는 한국의 입장과도 유사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과의 첫 정상 통화에서 산적한 현안에 앞서 미얀마 문제를 먼저 거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 사태의 향방은 어찌될 것인지,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 여러모로 한국의 외교적 역량도 시험대에 오른 국면이다.

[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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