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폭력, '친밀한 사이'에서 일어나
가해자 보복 두려워 합의하는 경우도
데이트 폭력의 특수성 다룰 수 있는 법 제·개정 필요
데이트폭력/사진=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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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주미 기자] # 2018년 서울 관악구에서 30대 남성이 함께 살던 연인을 살해했다. 이 남성은 이미 연인 A씨에 지속적으로 폭행을 가해 모두 4차례 경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또 살해 한 달 전에도 A씨를 폭행하고 집에 불을 지르려 한 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경찰은 남성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피해자인 A씨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남성은 풀려났고 한 달 뒤 결국 A씨를 흉기로 찔렀다.
일반적인 폭력 사건과 달리 데이트 폭력은 연인 사이 등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난다. 피해자가 폭행을 당하면서도 '가스라이팅'을 당해 합의는 물론 선처를 바라는 경우도 있다. 가스라이팅이란 지속적인 심리적 지배를 통해 상대방이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가해 행위로 심리학 용어다. 이 경우 가해자는 지속적인 폭행을 할 수 있고 결국 끔찍한 살인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친밀한 사이다 보니 가해자는 피해자의 집 주소 등 개인정보를 많이 알고 있어 피해자 처지에서는 보복이 두려워 선뜻 경찰에 신고할 수 없다. 이렇다 보니 데이트 폭력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처벌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관련 법 개정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형법)이 다루지 못하는 데이트 폭력의 특수성 중 하나는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친밀성'이다. 앞선 사례와 같이 데이트 폭력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폭행죄가 적용된다. 폭행죄는 '반의사불벌죄'로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을 할 수 없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연인 관계 또는 친밀한 사이인 상황이라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기가 쉽지 않고, 풀려난 가해자는 결국 더 끔찍한 폭행이나 살인까지 저지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또 다른 문제는 일반 폭행과 달리 데이트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이가 가까워 서로의 집, 직장 등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피해자는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운 마음에 합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의 합의로 제대로 처벌을 못 하게 되는 것이다.
제주KBS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제주지역 데이트 폭력 사건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31건 중 피해자의 절반 가량이 가해자와 합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제주여성상담소 소장은 이를 두고 "(가해자가) 피해자의 모든 신상을 다 알고 있어 제 2차(피해)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 2020년 11월10일 부산 북구 덕천동 덕천지하상가에서 젊은 남성이 쓰러진 여성을 발로 때리는 장면이 찍힌 영상. 사진=폐쇄회로(CC)TV 영상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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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보니 데이트 폭력은 같은 피해자를 상대로 반복되기 쉽고 폭행이 누적돼 살인 같은 더 큰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2018년 도입된 '데이트폭력 삼진아웃제'는 이 같은 데이트 폭력의 특성을 고려한 처벌 강화책이다.
삼진아웃제는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같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데이트 폭력을 3차례 이상 저지른 경우, 정식 기소를 원칙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제도다.
하지만 데이트 폭행을 현행법 안에서 계속 다루는 한 삼진아웃제 역시 처벌에 한계가 있다는 우려가 있다. 도입 당시 경찰대 교수 출신인 표창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삼진아웃제는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며 "단순 형법에 폭행죄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 보니까 유사범죄에 대한 형평성 때문에 첫 번째 범죄부터 구속하거나 징역형 등을 부과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데이트 폭행에 관한 법이 따로 없다 보니 처벌은 물론 예방도 쉽지 않다. 예컨대 데이트 폭력처럼 친밀한 사이인 부부 관계에서 폭력이 일어났을 경우 가정폭력 특별법에 따라 가해자에게 접근금지 명령을 내려 긴급 임시 조처를 할 수 있다. 이때 경찰 선에서 가정폭력이 재발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접근금지 조치 명령을 내리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가정폭력 특별법은 혼인 관계만 규정해 데이트 폭력은 해당하지 않는다. 데이트 폭력 피해자 역시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할 수 있다. 대신 법원의 판단이 필요한 탓에 최소 2개월이 소요돼 예방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0년 7월3일 열린 '젠더 폭력 살인 근절법'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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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열린 '젠더 폭력 살인 근절법' 토론회에서 심재국 법무법인 대륜 대표변호사는 "데이트 폭력이 갖는 특수성을 기존 형법과 성폭력특별법 등으로는 수용할 수 없다"면서 "접근금지가처분 신청에만 최소 2개월에 걸리고 있어 독자 법안 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법 사각지대가 있다 보니 이미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더 큰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2020년 7월 성관계를 강요하고 폭행을 일삼는 남자친구를 고소하고 이별을 통보한 여성 B 씨는 보복범죄를 당했다. 당시 가해 남성은 경찰에 연행됐지만 몇 시간 뒤 바로 풀려났고 며칠 뒤 전기충격기와 흉기를 들고 B 씨를 찾아가 흉기를 휘둘렀다.
당시 피해 여성은 경찰에게 신변 보호용 스마트 워치를 받았지만 도움이 전혀 안됐다고 울분을 터트린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를 가해자에게서 보호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하는 이유다.
전문가 역시 데이트 폭력의 특성을 고려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혜원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여성정책연구팀장은 "현재 가정폭력 특별법은 가족이라는 범위를 굉장히 협소하게 규정한다"며 "범위를 교제 관계 등 연인까지 확대해 처벌 뿐 아니라 피해자 지원까지 적극적으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더불어 "데이트 폭력 사건은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 데이트 폭력에 대한 사회적 정책이나 인식은 부족하다"며 "데이트 폭력이 살인이라는 더욱 심각한 범죄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정책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주미 기자 zoom_01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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