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응에 계속 실패하는 유럽 왜
폴 크루그먼 “몇몇 지도자 잘못보다 EU의 근본적 결함 탓”
성급한 백신 접종 중단에 “전형적인 관료주의적 결정” 지적
“관료주의, 보신주의, 타산주의, 정치적 책임 부재…. 이 모든 요소들이 한데 엉켜 유럽의 백신정책 대실패를 만들어냈다.”
혈전 부작용 우려를 이유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중단했던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유럽의약품청(EMA) 발표 후 뒤늦게 접종을 재개하자 유럽의 잇따른 판단 착오로 코로나19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그렉시트와 유로존 붕괴 위기 때부터 노출돼 온 유럽연합(EU)의 관료주의 폐해가 코로나19 백신정책 실패라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는 “유럽 국가들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재개했지만, 이미 백신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를 크게 훼손시킨 후였다”면서, 이는 영국(39%)과 미국(23%)의 백신 접종률에 비해 현저히 낮은 10%대에 머물고 있는 유럽의 백신 접종 계획을 더 악화시킬 것이 뻔하다고 내다봤다. 유럽은 백신 접종 속도가 느린 나라를 중심으로 이미 3차 대유행이 시작돼 잇따라 재봉쇄 조치에 돌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도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유럽의 백신 실패는 몇몇 나쁜 지도자가 내린 나쁜 결정 때문이 아니라, 유로존 위기 때부터 반복돼 온 EU의 관료주의와 경직성 등 근본적 결함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수많은 회원국의 의견을 하나하나 조율해야 하는 EU의 관료들은 위험 회피주의가 매우 강한데, 회피해선 안 되는 위험까지 회피하려 해서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됐다”고 비판했다.
EU의 위험 회피주의는 백신 구매 단계에서부터 노출됐다. 유럽 각 국가들은 대량 구매 이점을 누리기 위해 백신 계약을 EU에 일임했다. EU는 회원국들로부터 비싸게 샀다는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 가격을 깎으려고 백신 제조사들과 힘겨루기를 했다. 그 결과 영국이나 미국보다 계약 체결이 뒤처지면서, 연쇄적으로 EMA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사용 승인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용 승인이 난 후조차 독일 등이 65세 이상 고령층에 대한 효과에 의구심을 제기하면서 접종이 또다시 지연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65세 이상 효과 우려는 세계의 여러 실증을 통해 즉시 반박됐지만, 이런 경솔한 논란 때문에 이탈리아 등에서는 코로나19 취약층인 고령층보다 젊고 건강한 교사들에게 먼저 접종이 이뤄지는 등 우선접종순위가 엉클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EU의 문제점은 백신 안전성과 효과를 모니터링하는 주체가 없다는 점”이라며 “EMA가 그 역할을 하고 있지만, 회원국 전체의 동의를 얻어야 하다보니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결정을 내릴 때마다 50개 주 하나하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상상해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이 또다시 일부 접종자에게서 혈전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성급하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중단한 것 역시 비판을 받고 있다. 크루그먼 교수는 “일부 유럽 국가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중단하자, 다른 나라들은 혹시라도 일이 잘못될 경우 비판을 받을 것이 두려워 앞다퉈 그 결정을 따라갔다”며, 이는 백신 접종이 늦어져 더 많은 사망자가 나올 위험은 도외시한 전형적인 관료주의적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도 칼럼을 통해 “유럽 국가들의 성급한 접종 중단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자신들의 정책적 실수의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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