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고인이 살아서 사법절차를 밟고 스스로 방어권을 행사했다면 조금 더 사건의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었을 것"이라며 "고인의 방어권 포기에 따른 피해는 온전히 내 몫이 됐다"고 토로했다. 실체적 진실이 가려진 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사실이 왜곡되고 온라인 댓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난무하던 극심한 2차 피해 후폭풍을 감당해야 했던 억울한 심경을 고스란히 드러낸 셈이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여권이 사건 초기에 '피해 호소인'이라는 생경한 용어를 사용한 것도 정면으로 거론했다. "사실의 인정과 멀어지도록 만들었던 '피해 호소인' 명칭과 사건 왜곡, 당헌 개헌, 2차 가해를 묵인하는 상황은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었다"며 "잘못된 일들을 진심으로 인정하면 제 회복을 위해 용서하고 싶다"라고도 했다.
A씨는 박 전 시장 쪽 사람들의 상실과 고통에 공감하지만, 그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는 행위는 멈추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박 시장에 대한) 고소 결정이 끔찍한 오늘을 만든 것은 아닐까 봐 자책감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정치·사회적으로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온 사건의 중심에서 극심한 2차 피해를 감당하며 어찌 온갖 상념에 시달리지 않았겠는가. A씨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성희롱' 결정이 나온 뒤 이낙연 대표가 사과했다지만, 어떤 것에 대한 사과인지를 분명히 하고, 자신을 '피해 호소인'이라고 불렀던 소속 의원들에 대한 후속 조치를 내놓으라고 촉구했다.
A씨가 직접 언론 앞에 나서 심경을 토로한 것이 미묘한 시점 때문에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도 분명히 있다. 다음 달 7일로 예정된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박 전 시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실시되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를 1년가량 앞두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걸어야 하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여야 모두에 대선의 전초전이나 다름없이 중요하다. 이런 선거를 코앞에 두고 여권은 자기 쪽 후보에게 불리한 A씨의 기자회견이 달가울 리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하고 진심을 담아 사과해야 한다. 가능하면 후속 조치도 내놓기를 바란다. 이와는 별개로 여야를 떠나 이번 회견을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성범죄 관련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불쾌감이나 불이익을 주는 것이라면 모두 2차 가해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정파적 이익을 위해 악의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퍼뜨리는 행위는 말할 것도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월 박 전 시장이 A씨에게 한 행위를 '성희롱'으로 인정하고 서울시와 여성가족부 등 관련 기관에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피해자에게 다시는 공격의 화살을 돌리거나 2차 가해를 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