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대법원, 우에무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명예훼손' 인정 안 해
이는 자신이 쓴 기사가 날조된 것이라고 비방을 당한 우에무라 씨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가 사실에 부합하는 정확한 기사를 쓰지 않았다고 일본 대법원이 최종 판단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14일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일본 최고재판소 제1소법정(고이케 히로시·小池裕 재판장)은 11일 자로 우에무라 씨가 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 발행사인 분게이슌주(文藝春秋)와 레이타쿠(麗澤)대학의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객원교수를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고 요구한 소송에서 원고 측 상고를 기각했다.
이로써 우에무라 씨의 청구를 배척했던 1, 2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2014년 4월 27일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일본 법조기자클럽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1997년 타계)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한 1991년 8월 11일 자 아사히신문 기사 사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진보 성향 잡지인 '슈칸 긴요비'(週刊 金曜日) 발행인 겸 사장인 우에무라 씨는 아사히신문 기자 시절인 1991년 8월 11일 자 지면을 통해 최초로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1997년 타계)와 관련된 기사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폭로했다.
그가 쓴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전 조선인 종군위안부 전후 반세기 만에 무거운 입을 열다'라는 제목의 기사는 묻혀 있던 위안부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계기로 작용해 일본 정부가 위안소 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인정하고 사죄를 표명한 1993년 8월 4일의 '고노 담화'로 이어졌다.
김 할머니를 '하루코'(春子)라는 가명으로 거론한 이 기사는 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피해자 조사 과정에서 김 할머니가 증언한 녹음 내용을 토대로 작성됐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
그러나 니시오카 씨는 일제의 '여자정신대'(女子挺身隊)와 위안부를 혼동한 것 등을 문제 삼아 우에무라 씨의 기사가 날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고, 슈칸분슌은 2014년 이를 인용해 보도했다.
우에무라 씨는 이 논문의 내용 및 관련 보도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일으켰다.
1심을 맡았던 도쿄지방재판소(지법)는 2019년 6월 우에무라 씨가 취재 과정에서 여성(김 할머니)이 꾐에 넘어가 위안부가 됐다고 들었지만 "일본군에 의해 전장(戰場)에 연행돼(끌려가) 위안부가 됐다"는 취지로 보도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른 기사를 썼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이와 함께 니시오카 씨의 논문 기술 내용은 중요 부분에서 진실성이 증명된다면서 논문이나 주간지의 보도는 공익을 도모하는 목적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배상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 판결은 지난해 3월의 2심 판결에서 인용됐고, 원고인 우에무라 씨의 불복으로 진행된 상고심에서도 최고재판소는 피고 측 손을 들어줬다.
(도쿄 교도=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첫 보도를 한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자신이 쓴 기사 내용이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한 니시오카 쓰토무 레이타쿠대학 객원교수 등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손배소 상고심에서 패소 판결을 받은 것과 관련, 지난 12일 가스미가세키(霞ヶ關) 법조기자클럽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우에무라 씨는 이번 상고심 판결이 나온 뒤인 12일 일본 법조기자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취재를 토대로 쓴 기사인데, '날조'라고 단언하는 것은 저널리스트에게는 사형선고와 같다"며 "지극히 부당한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반면에 니시오카 씨는 "(내 주장이) 인정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앞으로 언론에서 논쟁을 벌였으면 한다"고 했고, 분게이슌주 측은 "당연한 결정으로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우에무라 씨는 우익 성향 언론인인 사쿠라이 요시코 씨 등을 상대로 제기한 같은 취지의 소송에서 작년 11월 최종 패소 판결을 받았다.
이 소송의 피고였던 사쿠라이 씨도 우에무라 씨가 '여자 정신대'와 위안부를 관련지어 보도하는 등 일부 사실을 왜곡했다고 비방해 왔다.
우에무라 씨는 2015년 사쿠라이 씨와 그의 주장을 다룬 주간 신초(新潮) 등 3개 출판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등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 내의 위안부 피해 부정론자들은 이들 판결이 강제 연행 성격의 위안부 실체를 일본 최고재판소가 인정하지 않은 것처럼 호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일본에서 SNS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작가로 알려진 가도타 류쇼(門田隆將) 씨는 13일 자신의 트위터에 "사쿠라이 씨에 이어 니시오카 씨도 위안부 소송에서 완전히 승리했다"며 우에무라 씨가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른 기사를 썼다"는 1심 판결을 최고재판소도 지지해 "(위안부) 강제 연행설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도쿄=연합뉴스) 작가인 가도타 류쇼 씨가 13일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명예훼손 손배소 패소 판결과 관련해 트위터에 올린 글. 그는 이 판결로 위안부 강제 연행설이 완전히 붕괴했다고 주장했다. |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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