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부의 총탄에 머리를 맞고 숨진 쩨 신(19)이 지난 3일 만달레이에서 “다 잘될 거야”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쿠데타 저항시위에 참여했다. 만달레이|Twitter(@Tostevin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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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만달레이에 살던 쩨 신(19)은 지난 3월 3일(현지시간) 군부 쿠데타 저항시위에 나갔다. 페이스북에 혈액형, 비상연락처, “만약 내가 죽으면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글귀를 올렸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는 군경이 쏜 총에 머리를 맞고 숨을 거뒀다. “다 잘될 거야(Everything will be OK)”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서.
이튿날 열린 장례식에 수백명이 추모했다. “다 잘될 거야”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현실은 가혹했다. 그날 하루에만 쩨 신을 비롯해 38명이 군부의 총탄에 희생됐다. 지난 2월 28일 ‘피의 일요일’ 이후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왔다. 지난 2월 1일 군부가 쿠데타를 단행한 이후 누적 사망자는 60여명으로 늘었다.
쩨 신은 무덤에서도 편히 쉬지 못했다. 미얀마 군인들은 3월 5일 만달레이의 공동묘지에 들이닥쳐 직원에게 총을 겨누고 쩨 신의 시신을 파헤쳤다. 군부가 묘에서 시신을 검시한 뒤 다시 매장하고 시멘트로 봉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장에는 고무장갑과 수술 가운 등이 널려 있었다.
미얀마 국영 MRTV는 고인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머리 뒤쪽에 1.2cm 크기의 납조각이 발견됐다면서 “경찰이 쓰는 총알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고인의 사인을 왜곡했다는 비판이 일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군부는 시위대를 체포하고 군부에 비판적인 언론사 5곳을 폐쇄했다.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을 비롯한 정치인들을 구금했다. 국회의원들에게 수배령을 내렸다.
시민은 여전히 저항하고 있다. 매일 수만명이 시위에 나간다. 노동조합은 3월 8일 총파업에 들어갔다. 인권단체 ‘미얀마를 위한 정의(Justice for Myanmar)’는 미얀마 군부와 결탁한 기업들을 상대로 불매운동을 했다.
■민주화의 걸림돌: 헌법·경제구조
미얀마는 1958년부터 50년 넘게 군사정권이 지배해왔다. 군부는 ‘미얀마식 사회주의’라는 명목으로 일당독재를 해왔다. 저항도 있었다. 1988년 8월 8일 민주화를 요구하는 ‘8888 항쟁’과 2007년 노란 승려복을 입은 승려들이 나선 ‘샤프론 항쟁’이 일어났으나, 군부가 유혈진압했다. 샤프론 항쟁 후 군부는 2008년 민주주의로 전환하겠다면서 ‘자체 개헌’에 나섰는데, 이 헌법이 민주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2008년 미얀마 헌법은 군부통치를 영속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헌법상 군부는 전체 국회의원 의석의 25%를 선거 없이 자동 할당받는다. 군 통수권은 대통령이 아닌 군 총사령관에게 있다. 비상사태 시 대통령이 군 수뇌부에 입법·행정·사법권을 넘길 수 있도록 했다. 헌법을 개정하려면 의석 75%의 동의가 필요하다. 사실상 군부 허락 없는 개헌을 막아놓은 것이다.
2011년 문민정부가 집권했다고는 했지만 반쪽짜리 민주화였다. 2015년 미얀마 역사상 최초로 실시된 다당제 선거에서도 소수민족은 투표에서 배제됐다. 1982년 시민권법에 따라 군부는 인종별로 시민권을 차별적으로 부여했다. 미얀마 국민으로 카친, 카야, 카렌, 친, 바마, 라카인, 샨족 등을 인정했다. 대대로 살아온 로힝야족, 중국계, 인도계, 네팔계 소수민족에는 투표권을 주지 않았다. 이는 아웅산 수지 고문이 이끄는 문민정부가 2016~2019년 군부의 대대적 학살을 묵인하는 결과를 낳았다.
군부는 지난 50여년간 정치권력뿐 아니라 경제권력도 장악했다. 군부는 1990년 미얀마경제홀딩스(MEHL)와 미얀마경제협력(MEC)이라는 일종의 재벌 기업을 만들고, 이들 기업에 이권을 몰아줬다. 특히 외국 회사들이 미얀마에 투자하려면 MEHL과 합작회사를 만들도록 장려했다. 그 결과 MEHL은 금융업, 섬유산업, 광업, 제조업, 담배산업, 관광업 등 문어발식 경영을 하는 대기업으로 거듭났다. 군부가 ‘삼성’이나 ‘아마존’을 만들고, 이들 기업이 하는 사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키워준 셈이다.
■한국은 책임 없나
문제는 군부대와 전·현직 군인이 이들 기업의 대주주로 있으면서 이익을 독점했다는 것이다. 국제앰네스티는 지난해 9월 MEHL의 소유주는 모두 전·현직 군인 38만1636명의 주주와 기타 기관주주 1803곳이라고 밝혔다. 쿠데타로 집권한 민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MEHL의 최대 주주로 매년 25만달러(약 2억8500만원)의 배당금을 챙겼다. 지난 20년간 전·현직 군인들이 받아간 배당금은 180억달러(약 20조5000억원)에 달한다.
MEHL의 배당금을 받는 주요 부대 중에는 ‘인종 학살’로 유명한 서부사령부(West Command)도 있다. 지난 2월부터 서부사령부 소속 33경보병 사단이 제2도시 만달레이에서 민주화 시위대 진압에 투입되고 있다. 제1도시 양곤에서는 2007년 샤프론 혁명을 유혈 진압한 서부사령부 77경보병 사단이 발견됐다. 95개 부대를 거느리는 서부사령부는 2016~2019년 카친주와 샨주에서 로힝야족 등 소수민족 학살을 총지휘했다. 이번 시위에서도 노련한 저격수들이 총으로 미얀마 시민의 머리를 저격했다고 현지매체들이 전했다.
미얀마 민주화 시위대가 지난 3월 3일 만달레이에서 경찰이 쏘는 총알을 피해 땅에 엎드려 있다. 이날 최소 38명의 시위대가 군경의 총에 맞고 숨졌다. 만달레이|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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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 폭주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이양희 전 유엔 미얀마 인권특별보고관은 “한국을 비롯해 미얀마와 교역 비중이 높은 국가들이 투자 철회를 압박한다면 군부도 압력을 받을 수 있다”면서 “국제사회가 적어도 군부와 연계된 기업들과는 협력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쿠데타 이후 군부와 손을 떼는 기업도 늘고 있다. 일본 맥주회사 기린은 최근 MEHL과 체결한 사업 계약 2건을 철회했다. 싱가포르 기업 림 칼링도 담배회사 설립 투자계획을 취소했다.
한국은 중국, 태국, 인도, 싱가포르, 일본 등과 함께 미얀마 10대 교역국 중 하나다. 유엔 진상조사위원회가 2019년 낸 보고서에서 미얀마 군부와 계약한 주요 14개 기업 중 6개가 한국 기업이었다. 포스코는 MEHL과 합작법인인 포스코강판(C&C)을 설립했다. 지난 1월엔 5000억원 규모의 미얀마 가스전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롯데호텔은 군부가 소유한 땅에서 70년간 호텔을 운영한 후 미얀마 국방부에 건물을 기부하기로 했다고 시민단체 세계시민선언이 전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미얀마 정부와 합작회사를 만들고, 양곤에 1300억원 규모의 경제협력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한국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포스코 강판은 “2017년 이후 군부 기업에 배당한 적이 없고, 현재 인권 이슈가 해소될 때까지 배당하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필요하면 사업 관계 재검토도 고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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