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달레이=AP/뉴시스]4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전날 미얀마 군경의 총탄에 숨진 19세 여성 키알 신의 장례식이 열려 장례 행렬을 따르는 한 오토바이 운전자가 고인의 사진을 들고 있다. 키알 신은 3일 미얀마 군부 쿠데타 반대 시위 도중 군경의 총탄에 머리를 맞고 숨졌다. 2021.03.04. |
군사쿠데타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과 폭압적인 진압으로 연일 사망자가 발생하는 미얀마. 그곳과 한국은 비슷한 점이 유달리 많다.
먼저 양국은 일본의 식민지배 등으로부터 벗어나 열강의 관여와 정부수립 과정의 혼란기를 거쳐 1948년에 나란히 건국된 점이 같다. 아시아에서는 드물게 UN(국제연합) 사무총장을 배출(1961 ~ 1971년 미얀마(당시에는 버마) 우탄트, 2007 ~ 2016년 대한민국 반기문)한 국가라는 점도 유사하다.
쿠데타가 이어졌다는 점과 민중들의 저항이 지속돼 왔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아버지 후광과 민주적 절차(선거 승리, 압도적 지지 등) 등을 바탕으로 여성 지도자(미얀마 아웅산 수치, 한국 박근혜)가 나란히 등장했다는 점도 그렇다. 미얀마와 한국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1991년의 아웅산 수치, 2000년의 김대중 전 대통령)가 배출됐다는 공통점도 있다.
여기까지가 역사책에 담겨있음직한 내용이다. 잊혀졌거나 애써 잊고 싶은 이야기들은 더 많다. 비동맹 국가의 선봉으로 미얀마가 북한에 기울어진 행보를 이어가다 마지못해 남북 등거리 외교 시늉을 보였던 것은 남한의 골칫거리였다. 미얀마가 남북한과 동시수교를 외부에 공표한날은 미국의 베트남 철수 (월남 패망으로도 불린다) 직후인1975년 5월16일이었다.
그로부터 8년 뒤 1983년 10월9일은 남북한과 미얀마의 관계를 전례없는 방향으로 이끌었던 날이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이끄는 순방단은 남남외교라는 명목 하에 미얀마에 들렀고 독립영웅인 아웅 산 묘소를 참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묘소에 북한 공작원이 설치한 폭탄이 터지면서 17명의 외교사절이 숨지는 최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북한의 잔악한 도발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규탄이 이어졌지만 수십년간 또다른 의심도 증폭됐다. 대통령 순방국에 경제교류 등과 무관한 미얀마가 포함될 이유가 있었냐는 것. 수십년 뒤 상당히 신빙성 있는 증언이 나왔다. 외무부 서남아과 서기관으로 순방 실무 작업을 했던 최병효 전 노르웨이 대사는 지난해 발간한 책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를 통해 전두환의 버마(미얀마) 방문 지시는 단임을 선언했지만 퇴임 뒤에도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사욕이 작용한 결과라고 했다. 당시 버마는 독재자 네윈이 1년 전에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막후 실력자로 계속 실권을 휘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7년 단임 뒤의 벤치마크 모델로 꼽기 적합했다는 것.
박종철, 이한열 같은 꽃다운 20대 청년들의 희생과 1987년 6월항쟁으로 상징되는 한국 국민들의 저항이 버마식 핵심 아이디어를 차용한 독재자의 계획을 백지화시켰지만 말이다. 미얀마와 한국은 군사정권의 강압에서 민주화를 향해 한발짝씩 나아간 공통점이 있다.
닮지 않았어도 좋을 한국의 비극은 미얀마에서 34년뒤 판박이처럼 나타났다. '다 잘 될거야'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시위에 참가했던 19살 소녀 치알 신이 지난 3일 총탄에 머리를 맞아 숨진 것. 시위 참여에 앞서 시신 기증 서약까지 했던 치알 신이 민주화의 상징으로 부상하자 미얀마 군부는 총상이라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시신마저 탈취해 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7년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써달라며 아웅산 수치쪽에 1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배경을 설명하며 당시 발표자는 이런 시(노르웨이 시인 군나르 롤드크밤의 ‘마지막 한 방울’)를 낭송했다. ‘옛날 옛적에/물 두 방울이 있었다네/하나는 첫 방울이고/다른 것은 마지막 방울/나는 마지막 방울이 되도록 꿈꿀 수 있었네/첫 방울은 가장 용감했네/~/우리가 우리의 자유를 되찾는 그 방울이라네/그렇다면 누가 첫 방울이기를 바라겠는가'
문재인 대통령도 SNS를 통해 더 이상의 인명의 희생이 없어야 할 것이라며 "미얀마에서 민주주의와 평화가 하루속히 회복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미얀마 국민들의 눈물이 자유를 되찾는 마지막 방울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더 이상의 핏방울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배성민 경제에디터 /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
배성민 기자 baesm1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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