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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코로나19 확진으로 빼앗긴 자유와 인권…"삶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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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록 유엔 시민·정치적권리위 위원의 체험기 '나는 감염되었다'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나의 삶은 코로나19 감염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것 같다. 지금까지의 인생이 인권에 대해 '머리로' 찾는 과정이었다면, 코로나 감염의 경험은 인간다움이란 대체 무엇인지 '마음으로' 깨닫게 해주었다. 앞으로 나의 삶은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일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일 것이다."

유엔 인권이사회 자문위원으로 6년간 일하다가 한국인 최초로 유엔 시민적·정치적권리위원회(자유권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된 서창록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인권전문가인 그는 지난해 3월 유엔 체제학회에 참여키 위해 미국으로 갔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서 교수는 신간 '나는 감염되었다'에서 코로나19 확진의 경험이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인권전문가로서 자신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들려준다. 이 책은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바이러스를 잡는 데만 몰두하고 감염자들의 동선을 집요하게 뒤쫓느라 놓쳐버린 '인간다움'과 '인권'에 대한 깨달음의 이야기다.

연합뉴스

서창록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문학동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코로나19는 내 명함에 새겨진 온갖 직책과 직위를 떼버리고, 그저 확진 순서로 넘버링된 번호로 관리되고 격리되고 처리되는 확진자로서 이 사회의 혐오와 모욕과 부조리를 온몸으로 겪어내 보라고 말하고 있었다. 매 순간 맞닥뜨리는 당혹스럽고 고통스러운 일 앞에서 내가 연구하고 확신을 가졌던 인권에 대한 지식과 신념, 읽고 써온 책들은 한낱 종잇장일 뿐이었다."

코로나19가 '우한 폐렴' '중국 바이러스'로 불리며 서구인들에게 '남의 집 불구경'이었던 그때, 서 교수는 유엔본부가 있는 뉴욕과 제네바로 출장을 떠났다. 서구에서는 아직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을 무렵이었다.

하지만 유엔 내부에서조차 아시아 국가의 유엔 인권위원들에게 은근한 경계의 시선이 꽂히고 있었고, 그는 이런 시선에 묘한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자신은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고 해명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그래서 한국 여권을 은근슬쩍 내보이며 걸어 다니기도 했지만, 이마저 소용이 없었다. 단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난민과 같은 취급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유엔 체제학회 참여차 뉴욕에 갔던 서 교수는 '어디선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다.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이 있다는 현지 의사의 진단에 급거 귀국해 선별진료소로 향한다. 그리고 상상해보지도 않았던 '확진자의 삶'이 시작된다.

"코로나 사태 초기, 우리는 방역을 핑계로 누군가의 동선과 사생활을 속속들이 훔쳐보았다. 한 사람의 소중한 개인정보와 일상이 욕과 비난, 동정과 연민의 탈을 뒤집어쓰고 전시되었다. 코로나19 초기의 확진자는 환자가 아니라 죄인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가족조차 만나지 못하고 홀로 지내는 외로움 속에서 벼락을 맞은 듯이 확진자가 됐지만, 그를 둘러싸고 묘한 소문들이 나돌았다. 귀국 비행기에서 마스크도 쓰지 않고 침을 튀겨가며 떠들고 음식물을 먹으며 방만하게 굴었다는 말들이 지인들을 중심으로 일파만파 퍼진 것이다. 서 교수는 "어이가 없었다. '가짜뉴스라는 것이 이렇게 퍼지는구나' 싶어 등골이 서늘해졌다"며 "잠시 동안 나는 공공질서를 지키지 않는 파렴치한이 되었다"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코로나19와 가짜뉴스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인간을 병들게 하고 사회를 어지럽히는 전염병이라는 점이다. 코로나19는 인간의 육체를, 가짜뉴스는 정신과 사회를 파괴한다. 코로나19 확진자인 동시에 가짜뉴스 피해자가 된 이들을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인포데믹(정보 전염 현상)이었다."

"나는 병원에서 정신질환이 생겼고,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다. 많은 코로나19 환자들이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코로나에 감염되었다가 완치된 사람들 중에도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바깥에서 정신병 얘기는 하지 않는다."

이제 서 교수는 코로나19와 그 후유증으로부터 몸과 마음을 회복했으나, 아직 스스로 '완치'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코로나19에 과연 '완치'가 있겠냐는 거다. 바이러스의 숨통을 끊기 위한 이 전쟁에서, 그리고 K-방역의 강력하고도 집요한 방어막 속에서 끝내 '그냥 그런 사람'이 돼버린 이들에 대한 낙인과 혐오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잃는 게 있다면 얻는 것도 있다. 서 교수는 "코로나19 덕분에 고맙게도 충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마음의 여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충전은 나와 가족을 위해, 그리고 우리 사회를 위해 절실히 필요하다. 인권 감수성을 키우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남을 배려할 때 진정한 자유가 온다는 사실 또한 새롭게 깨달았다고 덧붙인다.

문학동네. 228쪽. 1만4천원.

연합뉴스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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