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춘 부산시장 후보 [사진 제공=김영춘 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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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김영춘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는 1962년 부산 초량에서 삼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초·중·고교 시절을 모두 부산에서 보낸 그는 부산진구에 위치한 성지초등학교, 개성중학교, 부산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학창시절에 대해 "조용하고 온순한 모범생이었지만 학교 공부보다는 잡다한 책 읽기에 몰두했었다"고 회상했다.
성지초등학교 졸업식 사진[사진=김영춘 전 의원 제공] |
부마항쟁과 학생운동
김 전 의원은 정치권에서 대표적인 86운동권 그룹으로 분류된다. 학창시절 접한 부마항쟁과 5·18 광주민주화 운동은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지난해 말 출간한 40년 정치인생을 회고하는 자서전 '고통의 대하여'에서 "(부마항쟁이 일어났던) 고3 하굣길에서 서면로터리에 착검한 채 도열해 있던 한 군인이 왜 째려보냐며 한 중년을 소총 개머리판으로 때리는 걸 목격한 적이 있었다"며 "그 격동의 시기 속에서 저와 우리 국민들이 어떤 고통을 겪어왔는지, 우리 정치는 왜 그 고통들을 해결하지 못했는지 돌아봤다"고 설명했다.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1980년엔 그는 재수생이었기 때문에 그 참상을 잘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듬해 고려대 문과대 영문학과에 입학한다. 원래는 문학이 하고 싶어 국문학과에 진학하려 했으나 부모님은 법대를 권유했고 타협안으로 영문학과에 입학했다고 회고했다. 대학생이 돼서야 광주 민주화운동의 실체를 알게 됐고 부채의식에 휩싸인 그는 운동권의 길로 들어선다.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 [사진=김영춘 전 의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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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김 전 의원은 고려대 총학생회장에 선출된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학생회를 불법화하고 학도호국단을 운영해오고 있었는데 이에 반발한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는 직선제로 총학생회장을 선출한다. 이후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학생들은 '민정당사 점거농성'을 벌인다. 260여 명의 대학생이 여당 당사를 점거한 사건이었다. 김 전 의원은 농성 주도 혐의로 구속됐다 이듬해 풀려났다.
YS와 인연
김 전 의원은 대표적인 상도동계 정치인이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에 의해 정치에 입문했으며 정치인생 초반부는 YS의 행보에 순응하기도, 반대하기도 하면서 움직였다. 첫 인연은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2대 총선에서 YS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이끌던 야당인 신한민주당이 67석을 얻으며 돌풍을 일으킨다.
김 전 의원은 이때 YS로부터 정치권 입성 제안을 받는다. YS는 김 전 의원을 비롯해 민정당사 점거사건으로 구속된 학생들을 불러 점심식사를 했는데 이후 비서실에서 김 전 의원에게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노동운동에 뜻을 가지고 있던 김 전 의원은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나 노동운동에 한계를 느낀 김 전 의원은 1986년 말 YS를 찾아간다. 그는 당시 직선제 개헌에 강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를 위해 YS를 돕기로 결심한 것이다. YS는 다시 찾아온 그를 반겼다. 그렇게 김 전 의원은 26살의 나이로 상도동계 '막내 비서'가 된다. 당시 YS의 아들보다도 나이가 어린 막내였다고 그는 회상했다.
고 김영삼 대통령의 통일민주당 대표 시절 함께 자리하고 있는 김영춘 전 의원 [사진=김영춘 전 의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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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진영은 1987년 대선에서 양김 분열로 정권교체엔 실패했지만 직선제 개헌은 이루어냈다. 김 전 의원은 1988년 대학원 공부를 위해 학교로 돌아갔지만 YS는 13대 총선 출마를 권유한다. 그는 자서전에서 당시 대화를 회고했다. 당시 26살이던 그가 나이를 핑계로 출마를 거절하자 YS는 피선거권은 25살 이상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다며 설득했다.
이에 김 전 의원이 "정치 안한다"고 재차 거절하자 YS는 "니는 나한테 왜 왔노? 정치도 안 할 거면서"라고 물었다고 한다. 김 전 의원은 "직선제 개헌운동에 힘을 보태기 위해 찾아왔던 것"이라며 "제 역할은 다 끝나서 제 자리로 돌아가려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YS와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관계를 유지해갔다.
1990년 이른바 '3당 합당'을 계기로 김 전 의원은 YS를 따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군부독재와 사우면서 만든 정당이 독재자들의 소굴이었던 합당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합당 소식을 듣고 YS를 찾아가 "총재는 마음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저는 따라가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14대 대선을 앞두고 있던 YS는 "마지막 도전"이라며 김 전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김 전 의원은 당시 고려대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학업을 멈추고 YS 곁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문민정부 탄생에 기여한다.
청와대 근무와 국회 입성
YS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김 전 의원은 1993년부터 1년 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으로 일한다. 이후 YS의 권유로 1996년 15대 총선 출마를 위해 신한국당에 입당한다. 그는 당초 고향인 부산에서 출마를 하려고 마음먹었으나 상도동 선배들이 YS의 뜻을 거론하며 막았다고 했다. "대통령께서 김영춘은 서울에서도 경쟁력이 있으니 서울에서 출마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서울 광진갑에 출마해 첫 선거를 치렀으나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였던 김상우 전 의원에게 약 1000표 차이로 낙선한다.
15대 총선에서 낙선에 고배를 마신 김 전 의원은 4년 간의 야인생활을 보낸다. 그 사이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신설 합당으로 한나라당 소속이 된다. 이후 2000년 16대 총선에선 한나라당 후보로 또다시 서울 광진갑에 도전하고 현역이었던 김상우 전 의원과의 리턴 매치에서 약 7000표 차이로 승리를 거둬 당선에 성공한다.
김영춘 전 의원이 상임위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영춘 전 의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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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선 의정활동 동안 발의한 주요 법안으론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있다. 사학비리 근절을 위한 법안으로 학교법인의 이사회 구성과 예·결산 내역을 투명화하는 것이 골자였다. 16대 국회에선 입법에 실패하지만 17대 국회에서 끝내 성공시킨다.
‘독수리 오형제'
김 전 의원이 속했던 한나라당은 2002년 이회창 후보의 대선 패배로 위기를 맞았다. 김 전 의원은 TK세력이 주류가 된 당이 지역주의에 빠져 이른바 '수구 보수'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불만을 품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김부겸, 안영근, 이우재, 이부영 등 10명의 의원들과 함께 당내에 '새정치실천모임'을 결성한다. 지역주의와 낡은 정치를 타파하고 '완전하고 전면적인' 개혁을 주장했다. 그러나 당내 다수는 외면했고 한계에 부딪혔다.
결국 김 전 의원은 그해 7월 탈당을 결정한다. 김부겸, 안영근, 이부영, 이우재 의원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한다. 당시 정치권에선 이들 5명을 '독수리 오형제'라고 불렀다. '철새'가 아닌 정치적 소신을 지키기 위한 탈당 결정이었다는 점에서 그렇게 불렸다.
당 전까지 김 전 의원은 수많은 만류에 부딪혔다. YS 직계이자 상도동계로 당에 남으면 입지가 보장될 수 있는데 왜 굳이 나가느냐는 것이었다. 당에 당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그에게 "당에 있으면 언젠간 대통령 후보가 될 터인데 어째서 탈당하느냐"고 말렸다. 최 대표는 함께 탈당하기로 한 다른 의원들에게 '김영춘은 남기고 가라'고 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YS도 그에게 "니 생각은 다 좋지만 (나가면) 떨어질 것"이라고 만류했다. 이에 김 전 의원은 "'도로 민정당'에서 정치를 할 수 없다. 김영삼 정신으로 돌파해보겠다"고 답했다.
열린우리당에 합류한 그는 2004년 17대 총선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한다. 당시 총선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 바람이 불었던 선거다. 총선 한 달을 앞둔 3월, 탄핵안이 가결되자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크게 올랐다. 그러나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의장이었던 정동영 전 의원의 '노인 폄하' 발언이 논란이 됐다. 김 전 의원은 당의장 비서실장이었다.
그는 정 의장에게 사퇴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그는 임종석, 김부겸 등 초선 의원 7명과 '열린우리당을 살려달라'며 단식 투쟁을 시작했고 결국 정 의장은 총선 불출마로 화답했다. 열린우리당은 과반인 152석을 확보했다.
"지금껏 미안한 마음"
김 전 의원의 재선 시절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건이 있다. 같은 당 동료의원이었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대한 독설이다. 당시 당 의장 선거에 출마한 유 이사장은 인터뷰 등을 통해 동료 의원들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적인 언행을 보였다. '당을 분열시킨다'는 문제의식을 느겼던 김 전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유 이사장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그 중에서도 "저도 '저렇게 옳은 소리를 저토록 X가지 없이(죄송) 말하는 재주는 어디서 배웠을까?' 하고 속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다는 것만은 솔직히 고백합니다"라고 적은 구절이 화제가 됐다.
당시에도 파장이 일었지만 유 이사장에 비판적인 사람들 사이에선 많은 공감을 얻기도 해 그를 수식하는 대표적인 표현으로 굳어지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자서전에서 이 같은 표현에 대해 "후회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상대방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는 언행으로 열린우리당이 불신과 분열에 빠지고 있음을 충언하고 싶었다"면서도 "하지만 내 진심을 전하는 데에는 실패했고 내 말이 그에게 상처가 된 것 같았다"고 했다. 이어 "내가 표현한 문장이 언제나 유시민 선배를 따라다니니 지금껏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야인 생활과 부산시장 후보 양보
2007년 열린민주당의 추락과 함께 김 전 의원에게도 긴 야인 생활이 찾아오게 된다. 2007년 초 의원들의 탈당 러시가 이어졌다. 끝까지 당에 남은 김 전 의원은 당의 마지막 사무총장을 맡아 당을 정리했다. 열린우리당이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당됐지만 김 전 의원은 2008년 18대 총선에 불출마한다.
열린민주당의 실패로 회의감에 휩싸인 그는 야인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다. 2010년 민주당의 대표였던 정세균 국무총리가 정계 복귀를 요구했지만 거절한다.
민주당은 2010년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하고 손학규 전 의원을 대표로 선출한다. 당시 손 대표는 김 전 의원을 찾아와 부산에서 다시 정치를 해보는게 어떻겠냐며 지명직 최고위원을 제안한다. 김 전 의원은 전국정당을 만들겠다는 손 전 의원의 설득을 수락해 정계에 복귀한다. 고향인 부산에 사무실을 차리고 2012년 19대 총선에서 부산진구 갑에 출마했으나 험지의 벽을 넘지 못하고 약 3500표 차이로 당시 새누리당 후보였던 나성린 전 의원에게 패배한다.
김 전 의원은 2014년 지방선거에선 새정치민주연합의 후보로 부산시장에 도전한다. 그러나 경쟁자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무소속 후보로 출마한다. 오 전 시장은 이미 부시장, 시장 권한대행을 경험한 바 있었고 참여정부 시절엔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부산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던 탓에 지지율에서 김 전 의원을 앞섰다. 김 전 의원은 새누리당에 승리를 내줄 수 없다는 마음으로 후보직을 양보했다. 그러나 오 전 시장은 당시 새누리당 후보였던 서병수 의원에게 패배하고 만다.
부산시장 도전
김 전 의원은 결국 2016년 20대 총선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다시 부산진구갑에 도전해 3선 고지에 오른다. 현역 나성린 후보와의 리턴 매치에서 약 3000표 차이로 승리를 거뒀다. 20대 국회 상반기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을 맡았다.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승리를 거두고 김 전 의원은 문 정부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에 오른다. 이후 1년 9개월 동안 해수부를 이끌며 해수부 역대 최장수 장관 타이틀을 쥐게 된다.
김 전 의원은 지난해 21대 총선에서도 부산진구 갑에 출마했으나 서병수 의원과의 맞대결에서 약 4000표 차이로 패배한다. 낙선 후 박병석 국회의장의 지명을 받아 국회 사무총장을 맡게 된다.
한편 총선 직후 터진 ‘성추행' 파문으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시장직에서 사퇴를 하고 보궐선거를 치르게 되자 김 전 의원은 부산시장 유력 후보로 부상한다. 출마설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김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 "민주당이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통과를 약속한다면 당락에 상관없이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같은 달 28일 국회 사무총장직을 내려놓았고 지난 1월 공식 출마 선언을 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지난 번 선거 때(2014년과 2018년) 제가 양보하지 않고 출마했더라면, 그래서 제가 시장으로 선택받았다면 오늘날 이런 고통과 시간적, 경제적 낭비는 없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자책한 것도 사실"이라며 "지금 부산의 상황이 매우 어렵다. 힘들고 어려운 부산시민들의 삶 앞에 맏형이자 선배인 제가 먼저 깃발을 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어록
1. "정권심판으로, 정치 선거로 몰아가는 것은 부산의 어려운 현실과 민생을 외면하는 잘못된 얘기." (2021.03.09,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YTN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서 국민의힘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의 문재인 정권 비판에 대하여)
2. "이번 선거는 (부산이) 삼류 도시로 떨어지느냐, 살리느냐 길이 앞에 놓여 있다." (2021.03.08,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해 부산시의회 기자회견장에서 부산시장 선거 후보로서 각오를 밝히며)
3. "부산에서 시작하는 게 '개이득'이 되도록" (2021.03.05,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블로그 글에서 7호 공약으로 청년 정책을 발표한 것에 대하여)
4. "재난지원금이 매표행위? '선거용 옹알이' 지겹지 않은가." (2021.03.03,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블로그 글에서 정부의 4차 재난지원금에 대한 국민의힘의 '매표행위' 비판에 대하여)
5. "부산시민들은 지금 대부분 희망이 별로 없다. 좌절과 절망이 부산의 시민 정서의 기조인 것 같다." (2021.02.24,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부산BBS(불교방송) '특집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자 대담'에서)
6. "그분들(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도 부산 입장에서 꼼꼼히 따져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021.02.23,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하여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도 과거에 해저터널을 검토했다는 국민의힘 주장에 대하여)
7.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선거에 도움이 되고 안 되고 그런 거 신경 안 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부산에 필요하니까 한다." (2021.02.20,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덕도 신공항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다'는 질문에 대하여)
8. "행정부시장, 경제부시장 중 1명을 여성으로 임명함으로써 시청 조직 내 여성의 사기와 위상을 높이겠다." (2021.02.10,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시의회 브리핑 룸 기자회견에서 부산시청의 유리 천장을 깨겠다며)
9. "만나는 부산시민들께 이렇게 호소 드리고 있다. '지금은 부산에서 정권을 심판할 때가 아니라고요. 부산의 미래를 위해 정권이 밀어줄 때 확실히 땡기자고요.'" (2021.02.08,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신동아> 인터뷰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로 부산이 국제 해양도시로 발돋움해야 한다며)
10. "3무(無) 정당 국민의힘에 부산은 더 이상 잡아놓은 물고기 아니다." (2021.01.27,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블로그에 게재한 논평 중 국민의힘이 무당론, 무반성, 몰염치 정당이라고 비판하며)
11.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을 이어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으로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왔다." (2021.01.15,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부산시장 선거 출마 포부를 밝히며)
12. "국민의힘, 뒤늦게 숟가락 들고 덤벼드는 격" (2021.01.14,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국민의힘 후보들이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
13. "수도 서울과 제2도시의 시장 선거를 외면하는 것은 집권 여당으로 책임 있는 모습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다." (2021.01.12, 김영춘 전 국회사무총장, 부산 영도구 복합문화공간인 '무명일기'에서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을 하며)
14. "(부산 보궐선거는) 몰락하고 있는 부산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경제선거로 치러야 한다"" (2021.01.05, 김영춘 전 국회사무총장,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 집중'에서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대하여)
15. "개혁의 길 멈추지 않겠다.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못다 하신 부산의 꿈, 반드시 이루겠다" (2020.12.29, 김영춘 전 사무총장, 사무총장에서 퇴임한 후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에서)
[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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