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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전쟁과 경영] 성지 탈환전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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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7일(현지시간) 이라크 내전으로 폐허가 된 북부 모술에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오른쪽 첫번째)의 모습. 모술(이라크)=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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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역사적인 이라크 방문으로 모처럼 중동 전체에 평화 메시지가 퍼졌지만 이라크와 중동 전역에서 벌어지는 내전은 코로나19 사태만큼이나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각 종파 간, 군벌 간 전쟁의 주요 동기로 작용하는 ‘성지(聖地)’ 탈환전은 중동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지도를 펴봐도 중동처럼 다양한 종교의 성지가 집중된 지역은 드물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3개 종교의 공동 성지인 예루살렘을 비롯해 이번에 교황이 방문한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 예수의 고향이라는 베들레헴,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 등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고대 도시마다 성지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유독 중동에 성지가 많은 것은 고대부터 성지는 단순히 종교적 기능만 한 것이 아니라 지역 경제에서 막중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성지에 위치한 신전들은 수천 년간 신에게 바칠 헌금용 금화를 발행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다른 지역의 화폐나 물건과 교환하는 환전 비율도 자체적으로 정하며 막대한 주조 수익을 벌어들였다.


성경에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환전상들을 내쫓은 일화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실 물조차 귀한 모래땅에서 농업을 일으킬 수도 없고, 대규모 인구 부양이 불가능하니 상업이 발전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이들 지역은 예부터 성전을 매개로 한 환전업과 성지 순례객을 대상으로 한 관광업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성지 도시들은 명성에 비해 인구는 적은 편이다. 성지 예루살렘의 인구는 이스라엘 제1의 대도시 텔아비브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성지 메카의 인구도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도시 수입의 대부분도 성지 순례객 대상의 관광 수입에서 나온다. 인구 3만명이 채 안 되는 베들레헴에 코로나19 사태 이전 연간 400만명의 순례객이 찾아갔던 것을 고려하면 성지에서 믿음은 곧 수익이자 삶과 직결되는 문제였던 것이다.


이에 비해 종교와 관계없이 석유가 대량생산되거나 상업이 발달한 대도시들은 오늘날 신전 대신 고층 빌딩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고대에 만들어진 성전 건물이 그나마 가장 높은 건물 축에 드는 성지 도시들과는 지평선부터 큰 차이를 보인다. 메카에서는 여성들이 히잡을 벗고 다니면 경찰에 체포되지만 두바이에서는 비키니를 입고 거닐 수 있는 이유도 도시 간 경제력 격차에서 비롯된 신앙심의 차이를 나타낸다. 신이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신다는 성경의 구절은 빈말이 아닌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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