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을 통해서는 현재 미얀마에 체류하시면서 선교활동을 하고 계시는 한 목사님과의 인터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가족은 한국으로 보내고 혼자 남아서 미얀마에 머물기를 택했는데, 미얀마 사람들이 유혈 사태에도 미얀마를 떠나지 않고 있는 한국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에 용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혹시라도 신변에 문제가 있을까 익명으로 대화 내용을 소개합니다.
Q.(카카오톡으로 전화 인터뷰를 진행함) 다행히 인터넷 등 통신망이 차단되지는 않은 것 같다.
A. 자정부터 오전 9시까지는 군부가 인터넷을 차단하고 있다. 아마 그 시간에 미국이나 이런 쪽으로 시위 영상이 송출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Q. 한국 교민들조차 미얀마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원하고 있다고 외친다. 현지에서 어떤 마음으로 사태를 보시는지.
A. 지금은 전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양곤 시내에서 8~9마일 떨어진 곳이다. 차량으로는 40분~1시간 정도 걸리는데, 이 지역은 군부가 가지고 있는 땅이 많아서 그나마 안전한 곳이다. 그런데도 총성을 똑똑히 두 번 정도는 들었다. 현지인들이 입을 모아 말하기를 뉴스에서 나오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죽고 있다고 한다. 들은 얘기로는 양곤에서만 52명이 죽었다고 한다. 미얀마 사람들은 대부분 페이스북을 이용하는데, 출처는 그쪽인 것 같다. 양곤에서만 52명이니 미얀마 전체에서는 얼마가 죽었는지 집계조차 안 되는 실정일 것이다.
Q. 지금 이 시위는 누가 주도하는 것인가. 지휘하는 세력이 있는지.
A. 누가 주도하고 그런 게 없다. 전부 국민이 자발적으로 나와서 하는 시위다. 2월 1일 쿠데타가 벌어진 이후 의사, 간호사들이 먼저 쿠데타에 반대해 파업했다. 여기서부터 촉발돼 국민들이 시위에 나오기 시작했다. 뒤이어 젊은 친구들, 여기서도 Z세대라고 부른다. Z세대가 주가 돼서 시위를 이끌고 있다. 젊은이들이, 대학생들이 내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대학생들, 젊은 친구들의 신념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려주는 단적인 사례가 있다. 많은 친구들이 자신의 혈액형과 자신의 연락처, 여기에 어머니 연락처까지 몸에 지니고 거리로 나온다. 왜냐하면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죽으면 어머니에게 연락해 달라는 뜻이다. 정말 죽음을 각오하고 거리에 나오는 것이다.
Q. 미얀마는 불교 국가로 체제에 순응적인 국가로 알려져 있다. 젊은이들이 이렇게 강경하게 시위에 뛰어들수 있는 배경이 뭔가.
A. 2015년 미얀마 민주화 이후 미얀마의 젊은이들은 5년간 민주주의를 경험했다. 자신의 결정에 의해 나라가 돌아가고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이런 걸 다 안다. 이전 그들의 부모 세대와는 마음가짐이 다르다. 그런데 갑자기 쿠데타가 일어나고 독재정권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소중한 자유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나오는 것이다. 그들은 독재정권으로 돌아가는 건 지옥보다 싫다고 말한다.
Q. 과거 한국의 민주화 운동 때와도 비슷하다. 미얀마 시위대가 얼마 전 양곤 한국대사관 앞에서 '미얀마 군사 쿠데타를 인정해주지 말 것을 부탁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다' 등 피켓을 걸기도 했다.
A. 미얀마 젊은 친구들은 한국을 가장 동경한다. 한국의 아픈 과거를 거의 알고 있고, 한국의 민주화 항쟁을 그들의 롤모델로 생각한다. 한국이 힘든 시기를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이해하고 이걸 따라 하려는 마음도 있다. 한국에서 촛불집회가 한창 유행하지 않았는가. 미얀마에서도 전국적이진 않지만 알음알음 이걸 벤치마킹한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을 정도다. 한국의 아픔을 교훈 삼아 지금 상황을 이겨내려고 한다.
지금 시위가 좀 벽에 부딪힌 측면이 있다. 군부가 예상보다 훨씬 강경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은 죽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군부에서 무작위로 집을 찾아다니며 검열하고 있다. (아웅산 수지가 소속된) 민주주의 민족동맹(NLD)을 지지하는 징표가 있으면 바로 잡아간다. 그러니 골목마다 (경찰이나 군부의) 차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바리케이드를 치고 막고 있다. 군인이 찾아오면 대문을 열어주지 않으려고 기를 쓴다. 하지만 시민들이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총을 들이대는데 방법이 있나. 문이 열리고 사람이 잡혀가면 그저 울부짖는 것이다.
Q. 한국이 미얀마에 해줄 게 있다면 뭐가 있을까. 다른 나라 일이라서 한계가 있을 것 같긴 하다.
A. 이제는 무엇인가 액션이 나와야 할 시기다. 딱 잘라서 어떤 거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인터넷이나 이런 수단으로 지지의 뜻을 전해주는 것도 좋고 이들을 돕기 위한 돈을 모아줘도 좋다. 지금 한국에 거주하는 미얀마 사람들이 조국을 위해 모금을 벌이고 있다. 지금 NLD 소속으로 외국에 나온 공무원은 복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분들도 시위하고 있다. 미얀마를 위한 성금이 2억원 정도 걷혔다고 들었는데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이런 움직임이 확산되는 게 중요하다. 뭔가 액션을 하는 게 중요하다.
여기 있으면서 미얀마 친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한창때는 수십 명 됐는데 지금을 줄어서 10명 정도다. 이들이 입을 모아 절대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주로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 하지만 미얀마 사람들이 한국인이 미얀마를 떠나지 않고 미얀마에 남아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이 된다고 말을 한다.
문 대통령이 미얀마 군부 규탄 발언을 하시고 정세균 국무총리께서 얘기하시는 것들이 여기에 다 번역되어 들어온다. 이걸 보고 미얀마 친구들이 힘을 내고 있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인 도움이 있었으면 좋겠다.
(언론에 이슈가 된 태권소녀 같은) 젊은이들이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시위했다가 총탄이 날아와 관통되어 죽고 있다. 미얀마 현지인들이 '파소'라고 불리는 치마 같은 전통 의상을 입고 슬리퍼를 신고 시위에 나선다. 군경들은 총을 쏘고 있는데 상대가 되겠나.
Q. 현재 아웅산 수지는 어디에 있을까.
A. 소문으로는 어디에 있다 얘기는 나오는데 확인된 바는 없다. 아마 군부는 아웅산 수지를 나쁜 사람으로 몰기 위해 재판을 비롯한 여러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범죄자로 몰아갈 것이다.
Q.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에 전조는 없었나.
A. 전혀 없었다. 쿠데타가 벌어지고 나서 알았다.
Q. 젊은 군인이나 경찰 중에서도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A. 있다. 얼마 전에 경찰 일부가 민주주의 지지를 선언하고 목숨이 위험하니 인도로 도망을 간 케이스가 있다. 군부도 그렇고 경찰도 그렇고 군부에 대적하면 신변 보장이 힘들다. 목숨이 두려워서 숨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Q. 언제까지 미얀마에 계실 것인가. 가족이 걱정할 텐데.
A. 딸이 있는데 19세다. 딸이랑 동갑인 미얀마 아이들이 총에 맞아 죽고 있는데 나만 살겠다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개인적으로 용납이 안 된다. 교민 중에서 자영업하시는 분이 있는데 이분들과 함께 시위대에게 먹을 거라도 좀 나눠 주는 그런 봉사라도 하고 싶다. 시위가 더 격화돼서 정부 차원에서 미얀마를 떠나라는 철수 권고가 나오면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겠지만. 지금 교민이 3500분 정도 계신데 여기서 사업하는 분들은 이곳이 삶이 터전이다. 모든 경제적 기반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기 힘들다.
[하노이드리머(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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