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랫줄 ‘전통 치마’ 아래 지나면
남성성 잃는다는 오래된 믿음
진압 나선 군경 발 묶는 효과
시위 최전선엔 젊은 여성 많아
성불평등 불만도 저항 대의로
군부가 떠받들어야 할 건 미신보다 민심 미얀마 경찰들이 양곤 시내 거리에서 여성들의 옷가지가 걸린 빨랫줄을 제거하려 하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남성이 여성 전통의상인 ‘터메인’ 밑으로 지나갈 경우 남성성을 잃는다는 미신이 있다. 미얀마 시민들은 이 같은 미신을 이용해 군부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거리 곳곳에 터메인을 걸어 놓고 있다. 트위터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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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한창인 미얀마 양곤에서 한 무리의 군경이 빨랫줄이 드리워진 골목을 지나지 못하고 멈춰 선 모습이 포착됐다. 양곤의 한 시민이 4일 트위터를 통해 공유한 사진을 보면, 전신주의 지상 5~6m 지점에 묶인 빨랫줄에는 10여점의 여성 옷가지가 걸려 있고 경찰 한 명이 군용 트럭 위에 올라 이를 자르려 하고 있다.
미얀마의 여성혐오적 미신이 무력진압에 열을 올리는 군경의 발을 묶었다. 미얀마에는 남성이 빨랫줄에 걸려 있는 ‘터메인’(여성들이 허리에 둘러서 입는 전통 치마) 밑으로 지나갈 경우 남성성을 잃는다는 오랜 믿음이 있다. 남성 지배적인 군부에서는 단순히 미신으로 치부되지 않는다. 이에 시민들이 군경의 진입을 막고 시위대를 보호하기 위해 빨랫줄 미신을 역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전략은 효과를 내고 있다.
50년이 넘는 군사독재 기간 고정된 성역할만을 강요받았던 미얀마 여성들이 군부를 상대로 반격에 나섰다. 뉴욕타임스는 4일(현지시간) “미얀마 여성들은 저항운동의 선두에 서서 여성 민간 지도자(아웅산 수지 국가고문)를 축출하고 가부장적 질서를 복원한 군부를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얀마 여성들의 적극적인 저항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모든 가두시위의 최전선에는 Z세대라 불리는 24세 이하 젊은 여성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지난 2월 쿠데타 이후 군경의 강경진압에 처음으로 희생된 시민도 20세 여성이었다. 하루 최대 사망자가 나온 지난 3일 시위에서도 19세 여성 찌아 신 등 최소 3명 이상의 젊은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군부에 항의하는 뜻에서 업무를 거부하는 ‘시민불복종’ 운동에도 여성의 참여는 두드러진다. 쿠데타 이후 처음으로 업무를 거부했던 병원 노동자들과 이후 파업을 선언한 의류·섬유 산업 노동자, 교사들의 공통점은 여성 종사자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미얀마의 여성 노조활동가 틴 틴 뇨는 영국의 정치 웹사이트 오픈데모크라시에 “각계각층의 여성 참여는 전례 없는 일”이라며 “불복종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50% 이상이 여성”이라고 전했다.
여성들의 참여는 미얀마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성불평등에 대한 저항의 의미도 있다. 세계경제포럼이 2018년 149개국을 상대로 성격차 지수를 조사한 결과 미얀마는 88위에 그쳤다. 특히 여성의 정치참여는 133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미얀마 여성들은 군부의 복귀를 겨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성평등의 후퇴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주 초 국영 선전 간행물에 실린 연설에서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은 시위에 참여한 여성의 옷차림을 두고 “미얀마 문화에 반하는 외설적인 옷”이라고 했다. 여성이 바지를 입은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시민들은 흘라잉 총사령관을 조롱하기 위해 빨랫줄에 걸린 터메인에 그의 사진을 붙이기도 했다.
5일 미얀마 시민들은 제2도시 만달레이에서 군부를 향해 “석기시대는 끝났다. 당신들이 우리를 위협해도 두렵지 않다”고 외쳤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시위에서 시민 1명이 총격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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