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경찰들이 양곤의 거리에 멈춰서 여성들의 옷가지가 걸린 빨랫줄을 제거하려 하고 있다. 한 양곤 시민이 4일 해당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출처 트위터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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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한창인 미얀마 양곤에서 한 무리의 군경이 빨랫줄이 드리워진 골목을 지나지 못하고 멈춰선 모습이 포착됐다. 양곤의 한 시민이 4일 트위터를 통해 공유한 사진을 보면, 전신주의 지상 5~6m 지점에 묶인 빨랫줄에는 10여점의 여성 옷가지가 걸려 있고 경찰 한 명이 군용 트럭 위에 올라 이를 자르려 하고 있다.
미얀마의 여성혐오적 미신이 무력진압에 열을 올리는 군경의 발을 묶었다. 미얀마에는 남성이 빨랫줄에 걸려 있는 ‘터메인(여성들이 허리에 둘러서 입는 전통 치마)’ 밑으로 지나갈 경우 남성성을 잃는다는 오랜 믿음이 있다. 남성 지배적인 군부에서는 단순히 미신으로 치부되지 않는다. 2015년 한 여성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군총사령관에게 “아웅산 수지의 터메인을 머리에 두르라”고 했다가 모욕죄로 6개월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민 아웅 흘라잉 군총사령관이 이번 쿠데타를 일으켰고 군부를 지휘하고 있다. 이에 시민들이 군경의 진입을 막고 시위대를 보호하기 위해 빨랫줄 미신을 역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전략은 효과를 내고 있다.
군부 쿠데타에 대한 저항을 이어가고 있는 미얀마 시민들이 군경의 진입을 막기 위해 여성의 옷가지를 빨랫줄에 걸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여성의 빨랫감 아래로 남성이 지나갈 경우 남성성을 잃는다는 미신이 있다. 출처 트위터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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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이 넘는 군사독재 기간 고정된 성역할만을 강요받았던 미얀마 여성들이 군부를 상대로 반격에 나섰다. 뉴욕타임스는 4일(현지시간) “미얀마 여성들은 저항운동의 선두에 서서 여성 민간 지도자(아웅산 수지 국가고문)를 축출하고 가부장적 질서를 복원한 군부를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얀마 여성들의 적극적인 저항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모든 가두 시위의 최전선에는 Z세대라 불리는 24세 이하의 젊은 여성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지난 2월 쿠데타 이후 군경의 강경진압에 처음으로 희생된 시민도 20세 여성이었다. 하루 최대 사망자가 나온 지난 3일 시위에서도 19세 여성 쩨 신 등 최소 3명 이상의 젊은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군부에 항의하는 뜻에서 업무를 거부하는 CDM에도 여성의 참여는 두드러진다. 쿠데타 이후 처음으로 업무를 거부했던 병원노동자들과 이후 파업을 선언한 의류·섬유 산업 노동자들, 교사들의 공통점은 여성 종사자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버마인 여성 노조 활동가 틴 틴 뇨는 영국의 정치 웹사이트 오픈데모크라시에 “각계 각층의 여성 참여는 전례없는 일”이라며 “불복종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50% 이상이 여성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여성들의 참여는 미얀마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성불평등에 대한 저항의 의미도 있다. 세계경제포럼이 2018년 149개국을 상대로 성격차 지수를 조사한 결과 미얀마는 88위에 그쳤다. 특히 여성의 정치참여는 133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실제 군부가 처음으로 민간에 정권을 이양한 2015년 총선에 나선 후보 중 여성은 13%에 불과했다. 지난해 총선에서도 여성 후보 비중은 15.6%로 소폭 증가하는데 그쳤다. 아웅산 수지 고문이 이끄는 민족주의민주동맹(NLD)이 평균보다 높은 20%의 여성 후보 비중으로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지만, 군부는 이를 부정하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미얀마 여성들은 군부의 복귀를 겨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성평등의 후퇴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주 초 국영 선전 간행물에 실린 연설에서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은 시위에 참여한 여성의 옷차림을 두고 “미얀마 문화에 반하는 외설적인 옷”이라고 했다. 여성이 바지를 입은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극히 보수적인 성 고정관념을 가진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을 조롱하기 위해 시민들은 빨랫줄에 걸린 터메인에 그의 사진을 붙이기도 했다.
쿠데타 이후 닷새만에 양곤의 첫 거리 시위를 주도한 27세 여성 마 에이 씬자 마웅은 뉴욕타임스에 “여성들은 우리의 대의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군부와의 싸움에서 최전선에 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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