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위 도중 사망한 19세 여성 쩨 신(Kyal Sin)의 죽음에 미얀마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현재 미얀마의 상황은 전쟁터가 아니다. 명백한 학살이다”라는 문구가 미얀마인들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공유되고 있다.
4일 로이터통신은 쩨 신의 죽음을 보도했다. 전날 미얀마에서는 군경이 시민들의 민주화시위를 유혈진압하면서 38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지난달 1일 군부 쿠데타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이 시작된 이래 하루동안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것이다.
19세 미얀마 여성 쩨 신이 지난 3일 만달레이에서 벌어진 반군부 시위에 참여했다가 군경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시위 당일 그가 입고 있던 티셔츠에 담긴 문구 ‘모든 게 잘 될거야’를 미얀마 시민들이 소셜미디어에서 공유하고 있다. 트위터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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쩨 신은 전날 ‘모든 게 잘 될거야’라는 문구가 쓰여진 티셔츠를 입고 만달레이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 도중 그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되면서, 티셔츠 문구도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이내 쩨 신은 머리에 경찰이 쏜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현재 미얀마 내에서 ‘조준사격’이라는 의혹과 “명백한 학살”이라는 분노가 이는 배경이다.
‘모든 게 잘 될 것’이라는 티셔츠 문구와 달리 쩨 신은 일이 잘못될 가능성도 알고 있었다. 그는 최소 18명의 시민이 유혈진압에 사망한 지난달 28일 페이스북에 자신의 혈액형 등 의료정보와 함께 “만약 내가 사망하면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이 게시물이 생전 마지막 게시물이 됐다.
지난달 1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처음 맞은 주말인 2월7일, 쩨 신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얀마에 정의를”이라는 말과 함께 촛불을 들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 쩨 신 페이스북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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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쩨 신과 시위를 함께한 시민 미야트 뚜는 로이터통신에 그녀가 수도관을 열어 최루탄을 맞은 시위대의 눈을 씻어줬다고 말했다. 미야트 뚜는 “경찰이 사격을 시작하자 그녀는 내게 ‘앉아요! 앉아! 맞을지도 몰라요. (너무 노출돼 있어) 무대에 있는 사람 같아요’라고 말했다”며 “우리는 전쟁 중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실탄을 쏠 어떤 이유도 없다”고 했다.
쩨 신이 태권도를 하는 사진. 트위터 캡처 |
평소 태권도와 춤을 좋아했던 쩨 신은 군부 쿠데타 이후 ‘시민 불복종 운동(CDM)’이 벌어지자 곧장 CDM에 합류했다. 그의 생애 첫 투표가 군부에 의해 부정됐기 때문일지 모른다. 지난해 11월8일 미얀마 총선 날, 그는 페이스북에 보라색 인주가 묻어 있는 새끼손가락 사진을 올리고 “생애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했다”는 글을 올렸다. 가족이 다 함께 보라색 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찍은 투표 인증 사진에는 “레드 패밀리”라고 썼다. 빨간색은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이 이끄는 기존 집권당 민족주의민주동맹(NLD)의 상징색이다. 하지만 군부는 11월 총선에서 NLD가 압승하자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미얀마 총선이 있던 지난해 11월8일, 쩨 신은 생애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하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투표 인증 사진을 올렸다. 쩨 신 페이스북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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쩨 신 이외에도 전날 미얀마에서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자유아시아방송은 군용 트럭을 타고 가던 군인의 사격으로 14세 소년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전날 미성년자 사망자가 4명에 달한다고 로이터통신에 밝혔다. 트위터 등에는 한 무리의 군인들이 평화시위를 하는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영상과 피를 흘리고 쓰러진 시민들의 사진이 다수 공유됐다. 한 영상에서는 수도 양곤의 경찰들이 구급차에서 의료진을 끌어내 총의 개머리판으로 폭행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의료진은 군부 쿠데타 이후 가장 먼저 업무를 거부하고 CDM에 동참한 이들이다. NLD는 논평을 통해 희생자들을 위해 조기를 게양하겠다고 했다. 미얀마 배우 나 포 에 타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것은 국가가 지원하는 테러리스트들이 비무장 시민들을 의도적으로 살해하는 명백한 학살이다”라고 썼다.
유혈진압으로 확산된 공포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이날도 계속됐다. 한 시민은 안전모와 안전조끼 등을 나눠주며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 하지만 다치지말고 돌아온다고 약속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커지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군부는 강경진압을 거듭 강행할 태세다. 크리스틴 슈레너 버기너 유엔 미얀마 특사는 3일 기자회견에서 미얀마 군부 2인자인 소 윈 부사령관과 나눈 대화를 공개했다. 유혈진압이 국제사회의 제재와 미얀마의 고립을 가져올 수 있다는 버기너 특사의 경고에 소 윈 부사령관은 “우리는 제재에 익숙하다. 우리는 살아 남을 수 있다. 우리는 소수의 친구와 함께 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답했다. 제재와 고립이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버기너 특사는 “오늘날 미얀마는 10년 동안 자유를 누리며 살아온 젊은이들이 있고, 그들은 소셜미디어를 가지고 있으며, 잘 연대하고 매우 결연하다”며 “그들은 독재정권과 고립된 상태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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