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에 듣는 사람의 억장은 무너진다. 지속적으로 논란이 됐지만 '갑질'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권위주의 문화를 개선하지 않는 한 직장·학교 등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
"돈도 조금 버는 못 배운 게"…갑질 무기 된 '소득과 학력'
━
/사진 = 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지난달 28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KTX 햄버거 진상녀'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시됐다. 이 영상에는 한 여성이 마스크를 벗고 음식물을 섭취하며 큰 소리로 객실 내에서 통화하는 모습이 담겼다.
글쓴이는 이 여성에게 "방역 수칙을 지켜달라"고 항의했으나 이 여성은 되레 "내가 여기서 먹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냐"며 언성을 높였다. 이 여성은 "천하게 생긴 X가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아느냐.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겠다"며 '막말 갑질'을 했다.
지난달 13일에는 더불어민주당에서 비위 당원을 징계하던 윤리심판원 부위원장 출신의 A 변호사가 술에 만취해 대리기사를 폭행한 혐의로 입건됐다. 경찰이 출동해 A변호사를 제지했으나 A변호사는 "내가 누군지 아느냐" "너네 계급이 뭐냐"고 폭언을 퍼부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A변호사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운전자 폭행과 형법상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입건해 조사 중이다"며 "정확한 수사진행상황은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밝혔다.
지난달 1일에도 동작구의 한 어학원에서 근무하던 셔틀도우미가 배달원에게 "공부를 못하니 할 줄 아는 게 배달밖에 없다"고 막말을 한 것이 공분을 샀다. 이 셔틀도우미는 배달원과 추가 배달료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배달업체 사장까지 직접 전화를 걸어 "인권 비하발언은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으나 셔틀도우미는 계속해서 "내가 일주일에 버는 게 1000만원이 넘는다"며 "남한테 사기 쳐서 3000원(추가 배달료) 벌어가면 부자 되겠다. 하는 꼴이 거지 같다"고 말했다.
━
막말해도 처벌 못한다…'권위주의' '반쪽 규정' 기회로 활개치는 갑질
━
직장갑질119 회원들이 1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갑질금지법 시행 1년 기자회견을 열고 적용범위 확대와 근로기준법 76조의 3(신속조사 피해자보호 등) 불이행 처벌조항 신설 등을 촉구하고 있다. 2020.7.16/ 사진 = 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갑질 사례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권위의식이 원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신보다 소득이나 학력 수준이 낮은 부하직원·감정노동자에게 '막말 갑질'을 퍼붓고도 이를 당연시하는 문화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1월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국민 갑질 인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3.8%가 '우리 사회에 갑질이 심각하다'고 답변했다. 4명 중 1명(26.9%)은 지난 1년간 갑질을 경험했다고 답했으며 가장 큰 원인으로 권위주의 문화(40.7%)를 꼽았다.
그러나 고객·직장상사로부터 갑질을 당하는 감정노동자·부하직원을 보호하는 법 규정은 미비하다. 갑질을 방지하기 위해 시행된 일명 '갑질방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과 '감정노동자보호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도 갑질 가해자를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전문가들은 갑질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갑질 가해자에 대한 처벌 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처벌 없는 '반쪽짜리 법'과 고질적인 권위의식이 되풀이되는 '갑질 문화' 개선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직장갑질119의 최혜인 노무사는 "소득·학력 등을 무기로 모욕적인 갑질을 하는 것은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권위의식 때문"이라며 "단순히 인식 개선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 아니라 관련법에 가해자 처벌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