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규 '전봉준 최시형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 발간
[서울=뉴시스]'전봉준 최시형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 (사진 = 인간과자연사 제공) 2021.02.22.photo@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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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임종명 기자 =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하다가 체포돼 순국한 전봉준과 최시형 등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에게 독립유공 서훈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민족문제연구소 박용규 연구위원은 최근 발간한 '전봉준 최시형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을 통해 "아직도 대한민국은 양반의 나라인가. 독립유공 서훈에서 항일 농민은 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연구위원은 "갑오의병(1894년 8월), 을미의병(1895년) 등 의병 운동 참여자에 대해서는 국가보훈처가 지금까지 2000여 명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했다. 그런데 갑오의병과 을미의병의 사이에 있는 2차 동학농민혁명(1894년 9월)은 국가보훈처가 서훈대상에서 지금까지 누락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갑오의병과 을미의병, 2차 동학농민혁명 모두 국권을 침탈한 일본군에 맞서 벌인 독립운동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박 연구위원은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독립유공 서훈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국가보훈처가 서훈의 형평성과 공정성을 스스로 위반한 것"이라고도 했다.
'미나미 : 너희들이 거병한 대목적을 숨기지 말고 말해보라.
전봉준 : 7월 일본군이 경성에 들어가 왕궁을 포위했다는 것을 듣고 크게 놀라 동지를 모아서 이를 쳐서 없애려고 다시 군대를 일으켰다.' (p. 32)
박 연구위원은 일본의 미나미 고시로가 전봉준을 취조한 공술서 내용도 책에 담았다.
박 연구위원은 "항일 독립운동인 2차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항일 투쟁의 총사령관이 전봉준이었고 최고 지도자가 최시형이었다. 전봉준·최시형과 함께 1894년과 1895년에 걸쳐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일어나 싸운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도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항거했고, 그 반대와 항거로 인해 순국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을미의병, 을사의병, 병오의병, 정미의병 참여자들은 1962년부터 정부의 독립유공 서훈을 받기 시작했다. 양반 유생이 주를 이뤘고 지금까지 2671명 정도다.
박 연구위원은 "이런 불공평과 모순이 시정되기를 역사학자인 저자는 바라고 있다"며 "정부는 2019년 동학농민운동을 국가기념일(5월11일)로 지정해 기념일 행사를 벌이고 있다. 참여자들에 대해 곧바로 대한민국 정부가 '독립유공 훈장'을 추서해 주는 데서 진정한 명예 회복이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jmstal0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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