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도입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가상화폐의 영향력이 커지면 중앙은행의 고유권한인 화폐의 독점적 발행권이 위협받게 되고, 통화정책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CBDC 도입이 본격화할 경우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시장에 미칠 파급력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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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결제은행(BIS)이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BIS가 조사한 전 세계 66개 중앙은행 가운데 86%가 CBDC 도입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BDC와 관련된 실험 또는 기술 도입 전 검증 단계를 진행 중이라는 응답은 2019년 42%에서 2020년 60%로 크게 늘었다.
중앙은행들이 CBDC 도입에 관심을 갖는 배경으로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이 꼽힌다. CBDC 발행 전에 가상화폐가 광범위하게 사용될 경우 법정화폐의 입지가 축소되고 통화정책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 있다. 호주 투자은행 맥쿼리는 “CBDC는 가상화폐 대중화 속도에서 뒤처지고 있다”면서 “가상화폐 규모가 커지고 사용자가 많아지면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해 규제 효력이 감소하고 법정화폐에 대한 수요도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재난 지원금을 신속하게 지급해야 할 필요가 늘어난 것도 CBDC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현금’으로, 현재 도입에 가장 속도를 내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지난해부터 대규모 공개 시험을 하고 있다. 기축통화로서 위안화의 지위를 높이려는 의도와 텐센트와 알리바바가 같은 기업이 지급결제 시장을 독점하는 것에 대한 정부의 우려가 맞물렸다. 일본, 유럽 등 주요 국가들도 연구를 본격화하고, 미국도 디지털 달러 도입 계획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도 관련 연구에 나섰다. 지난 8일 CBDC 도입과 관련된 법적 이슈를 검토한 외부 용역 보고서를 발표해 “CBDC는 기존의 통화법제상 법화 지위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또 한은은 연내에 파일럿 시스템을 구축해 안정성 등을 테스트할 예정이다. 한은은 지급결제 서비스가 잘 발달된 한국의 경우 가까운 시일 내에 CBDC을 발행할 필요성은 크지 않으나 지급결제 환경이 워낙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CBDC가 도입이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가치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입장이 엇갈린다. 대표적인 비트코인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CBDC는 모든 개인들이 중앙은행을 통한 거래를 허용해 현금, 기존 은행계좌, 디지털 결제 서비스 수요를 줄일 것”이라면서 “CBDC가 발행되면 그 즉시 확장성 없고, 저렴하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은 암호화폐를 대체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도 “가상화폐는 가치 저장의 수단, 지급결제 수단, 가치의 척도라는 화폐 본연의 기능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실용화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CBDC가 보편화되면 가상화폐는 힘을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는 인도중앙은행(RBI)에서 공식 디지털화폐를 개발하는 한편 민간 부문의 암호화폐를 모두 금지하는 입법을 추진 중이다.
반면 CBDC와 비트코인은 아예 다른 성격의 자산이라는 의견도 있다. 박수용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비트코인은 지불결제 수단이 아니라 디지털 세상에서의 가치저장 수단이 됐다”면서 “CBDC 발행이 비트코인 가격에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CBDC가 발행되면 디지털 화폐 생태계가 풍부해져 다양한 암호화폐의 출현을 촉진할 것”이라면서 “비트코인이 사기나 투기 대상이 아니라 자산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아가고 있다. 가격도 계속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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